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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의 눈] '일러바치는' 국회에 소환된 태극기와 사람들

  • 오피니언 | 2019-12-26 10:51
국회가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으로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정치권은
국회가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으로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정치권은 "함께 싸워달라"고 말하지만 협상하고 경쟁해 성과를 내는 건 이들의 '일'이다. 지난 18일 국회 앞 공수처법·선거법 반대 규탄 집회. /국회=문혜현 기자

정치력 상실·대화 실종에 시민 동원 의지하는 정치권

[더팩트|국회=문혜현 기자] 요즘 출근길 '지옥철'을 타고 나서 해야할 일 한 가지가 더 생겼다. 출입증을 얼굴 가까이 들고 다섯, 여섯 겹으로 서 있는 전경들을 뚫고 지나가는 일.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나선 사람들 사이를 조용히 지나오는 일이 출입처인 국회로 가는 일상에 비집고 들어섰다,

퇴근길 국회를 빠져나오는 중 '어린 X이 여기서 왜 나오냐'라며 욕설과 고성을 들은 보좌진과 취재진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보수 정당 지지자들의 선거법 반대 집회가 지난 16일부터 이어지면서 여의도는 온통 태극기와 성조기로 덮였고 애국가가 울려퍼진다.

지난 16일 열린 공수처법·선거법 반대 규탄 집회로 국회 경내에는 출입통제조치가 내려졌고 한 두개 문을 제외한 모든 경내 출입문, 국회 본관 출입문이 막혔다. 이날 집회를 주최한 한국당은 4만 명이 모였다고 주장했다. 본관 근처에 있던 정의당과 민주평화당 당원과 당직자가 욕설을 듣거나 침을 맞는 등 폭력사태가 있었다.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집회가 열릴 때마다 국회 앞 교통 상황 통제를 위한 경찰이 동원됐다.

올해 초부터 10살짜리 초등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한 친구가 가장 자주 털어놓는 고민은 '일러바치는'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거다. 이른바 '고자질쟁이'가 된 아이들인데, 자신의 일을 비롯해 다른 친구들의 일까지 모두 일러바치며 해결을 바라는 아이들을 따라다니느라 힘들다는 것이다.

지난 18일 국회의사당 역 앞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 /문혜현 기자
지난 18일 국회의사당 역 앞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 /문혜현 기자

그는 이들에 대해 "보통 그런 친구들이 이기적인 면이 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자기가 한 건 생각 못하고 남이 잘못한 것만 이른다"며 "한꺼번에 열 명의 아이들이 오기도 한다. 마치 화산이 몇 군데서 동시에 분출하는 기분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그러면 '뭐부터 잠재워야하나' 생각한다"면서 "(내용을 들어보면) 별 게 아니고, 상대방과 충분히 이야기해보고 한 번만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본다면 이를 문제가 아니고 싸울 일도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내가 아이들에게 매일 말하는 건, '선생님한테 이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와서 이야기하기 전에 너의 마음을 직접 친구에게 예쁘게 말해보자'라는 거다"라고 말했다.

분명히 어리고 서툰 10살 아이들의 이야기인데 지금 국회의 모습이 저절로 생각났다. 평균연령 56.2세로 매 총선마다 늙어가는 국회지만, 대화와 협상은 묻어둔 채 국민에게 와서 해결해달라는 모습이 10살의 그것과 꼭 닮았다.

친구에게 '정치권이 더 한다'는 푸념을 늘어놓자 그는 "아이들은 '이해'라는 걸 잘 모르니까 알아가는 중인 건데, 어른들이 왜 그러느냐"고 반문했다.

이해. 이해(理解)와 이해(利害)의 사전상 뜻은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임', '이익과 손해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우리 국회는 이해(理解)는 하지 않은 채 이해(利害)만을 따지고 있는 건 아닐까.

친구에게 대답할 말이 없어 가만히 뉴스 링크를 보내줬다. 2019년 12월의 어느날, 정치권은 정치력을 상실한 채 '싸워주십시오'라며 국민을 거리로 나오게 했다.

moon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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