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 수사, 객관적 시선이 필요하다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차라리 지옥이 낫지. 지옥은 그래도 지은 죄만큼만 벌 받잖아."(영화 '재심' 中)
지난 2017년 2월 '약촌 오거리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 '재심'에서 나온 대사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10년을 감옥에서 보낸 주인공의 사연에 울분이 터지는 감정이야 당연한 반응일 테지만, 더 나아가 근본적으로 '벌'을 내리는 기준이 되는 '지은 죄'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지난 20일 서울중앙지법은 검찰이 분식회계 혐의로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성바이오) 대표에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벌써 세 번째다. 기각 사유는 간단하다. '범죄 혐의가 성립되는지 다툼의 소지가 있다'는 게 그 이유다.
검찰 주장대로라면 김 대표는 삼성바이오의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위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해 장부상 회사 가치를 '뻥튀기'한 핵심 인물이다. 물론 이 같은 고의 분식회계 목적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제일모직의 기업가치를 부풀리는 데 있다는 게 검찰 측 주장의 핵심이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무죄 추정 원칙에 대한 설명은 뒤로하더라도 과연 유죄를 입증해야 하는 사정 당국이 '분식회계 혐의'를 입증할 만한 명확한 증거나 근거를 제시했는지다. '삼성바이오가 분식회계를 했느냐'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찾지 못 한다면, 검찰이 시종일관 주장하는 '범죄 혐의'는 성립할 수 없다. 적어도 '증거재판주의' 원칙과 같은 법치주의 정신이 이 나라에 남아 있다면 말이다.
회사 가치 산정 방식의 적법성 문제는 경제계는 물론 법조계와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지난 1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사단법인 시장경제제도연구소와 자유경제포럼 주최로 열린 '논란의 분식회계, 삼성바이오 재판을 말한다' 정책토론회 참석자들(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교수, 이동기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헌 변호사)도 한목소리로 금융감독원과 검찰의 주장에 논리적 모순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11월 한국회계학회와 한국회계기준원 주최로 열린 '원칙중심 회계기준과 회계' 특별세미나에서도 삼성바이오의 회계 처리 방식과 관련해 '고의적 분식회계'로 판단한 금융 당국의 해석을 두고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우리나라가 지난 2011년 도입한 IFRS는 모든 회계 처리를 정해진 규정대로 처리해야 하는 방식이 아닌 회계기준에선 기본 원칙만 정하되 원칙 안에서 기업에 판단 재량과 책임을 주는 '원칙 중심'의 회계 처리 기준을 채택하고 있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기 전부터 각계에서 '형법상 유무죄를 가늠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던 문제를 두고 밀어붙이기식 수사를 강행하는 사이 '삼성'이라는 브랜드의 대내외 이미지는 말 그대로 땅으로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2월부터 사정 당국이 삼성전자 수원 본사와 삼성바이오·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물산 등 그룹 계열사를 상대로 벌인 압수수색 횟수만 하더라도 19차례에 달한다. 일본 수출 규제 조치로 반도체 수급에 비상등이 켜진 상황에서 '적폐' 꼬리표를 달게 된 대기업 총수가 나라밖에서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어떤 사람도 '지은 죄'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른 채 '적폐의 온상'이라는 낙인이 찍혀서는 안 된다. 나라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대기업 총수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권리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환경에서 미중무역 갈등, 일본 수출 규제 초치 등 경제 불확실성 해소를 위한 대기업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과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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