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강일홍 기자] 나훈아의 대한가수협회(이하 가수협회) '3000만원 후원금' 소식이 전해진 뒤 가요계 안팎에서 잔잔한 반향이 일었다. 그가 오랜 침묵을 깨고 후배가수들과 '깜짝 교감'한 일은 '역시 나훈아답다'는 호평으로 이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나훈아는 가수협회와 거리를 두는 듯한 행보를 보여온 데다 동료 가수들조차도 얼굴을 보기 힘들 만큼 독자행보를 걸어왔기 때문이다.
나훈아는 남진과 함께 70년대 이후 남자가수로 대한민국 가요계를 양분해온 양대 축이다. 당사자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둘의 행보는 비교될 수밖에 없다. 남진이 친근감 있는 '젊은 오빠' 이미지로 방송에 자주 출연한 것과 달리 나훈아는 줄곧 신비주의를 고수하며 단독공연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더구나 2017년 11월 컴백무대로 돌아오기까지 11년간 공백을 가지면서 베일에 가려졌다.
그런 그가 모처럼 동료가수들과 자리를 함께하며 가요계에 보낸 살뜰한 애정표현과 메시지는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훈아는 가수협회에 3000만 원을 기탁한 뒤 외부발설을 하지 않도록 당부했다. 가수협회가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선뜻 마음을 쓴 것이지만, 순수한 뜻이 퇴색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식사를 함께한 9명의 후배가수들도 처음엔 알지 못했다.
◆ 가요계, "반목 갈등의 역사 끝내려면 단합된 결속력 보여줘야" 한 목소리
가수협회는 지난 2006년 가수들의 권익을 주창하며 새롭게 탄생한 친목단체다. 남진이 초대회장을 맡은 이후 송대관 태진아가 뒤를 이었다. 이때까지는 모두 가요계 원로와 중진들이 합의 추대하는 모양새로 자리를 맡겼다. 합의추대라는 의미를 통해 가수들의 화합과 단합을 넘어 가족의 의미를 부각했지만 부작용도 없지 않았다. 강력한 리더십이나 책임감보다는 얼굴마담 성격이 짙었다.
남진(초대) 송대관(2대) 태진아(3대~4대)의 바통을 이어받은 5대 가수협회장 선출은 비교적 젊은 가수들이 주축이 된 선거로 치러졌다. 2015년 방송회관에서 진행된 투표는 협회 출범 후 처음으로 후보간 경쟁 구도(김흥국vs인순이)로 진행돼 이목을 끌었다. 양측 모두 다양한 공약을 앞세우고 각각 지지하는 동료가수들이 찬조연설까지 나서는 등 새로운 선출직 회장에 대한 기대가 컸다.
첫 선거로 당선된 김흥국은 불행하게도 가장 중요한 덕목이어야할 회원들간의 결속력을 하나로 묶는데 실패했다. 오히려 임기 기간 내내 반대세력의 입김에 흔들렸다. 회원 간 고소고발의 불명예도 기록했다. 김흥국은 "누굴 탓하기 전에 역량 부족을 먼저 통감한다"고 전제한 뒤 "다만 믿고 기다려주기는커녕 매 사안마다 대안 없이 무조건 반대만 하는 풍토가 아쉬웠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 '이자연호' 가수협회, 여전히 싸늘한 시선 속 나훈아 후원금 마저 빛바래
가수협회는 회원들끼리 숱한 갈등과 내홍을 겪은 뒤 비대위가 꾸려지는 등 최악의 부끄러운 상황이 연출되다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칼자루를 쥔 원로들이 나섰지만, 기대한 만큼 덕망있는 대상자를 찾지 못하자 가수 이자연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자천타천 거론돼온 일부 가수들은 이전투구 싸움에 끼고 싶지 않다며 고사하기도 했다. 비영리단체인 가수협회의 수장은 무보수 명예직이다.
비대위가 이자연을 단일후보로 추대한 데는 협회에 특별한 색깔이 없다는 게 오히려 더 크게 작용했다. 개인의 능력이나 리더십보다는 논란이나 분란을 최소화하는 쪽을 택한 셈이다. 오래 임원으로 협회에 몸을 담았다는 점 외에 사상 첫 '여가수 회장'이라는 상징성이 그나마 한몫을 했다. 가수협회는 지난해 10월 이후 출범 6개월째를 맞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협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엇갈린다.
59년 사단법인으로 인가받은 가수협회는 61년 한국연예협회의 분과로 배치됐다가 47년만에 새로운 기치를 걸고 뛰쳐나와 재탄생했다. 그동안 수차례 알력과 반목을 거듭한 역사가 말해주듯, 무엇보다 동료 가수들의 마음부터 하나로 통합이 돼야 권익보호를 위한 발걸음을 내딪을 수 있다. 거듭나려면 이제라도 누군가 안팎으로 상처입은 가수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필요는 있다.
◆ '반쪽' 후원회, 전임 회장 김흥국이 개인 자격으로 보낸 화환만 덩그러니
가수협회는 지난해 연말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후원회를 겸한 화합모임을 가졌다. 이자연 신임 회장 출범 후 첫 공식행사로 기대를 모았지만 대다수 가수들이 외면하면서 '반쪽'이란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이자연을 추대한 비대위 출신 외에 가수들이래 봐야 집행부 임원들이 대부분이어서 사실상 지인모임 성격이 짙었다. 전임 회장 중엔 남진 송대관이 겨우 자리를 빛냈을 뿐이다.
테이블 하나(500만원)를 통째로 후원한 한 일반인 참석자는 "진정한 화해의 모습을 보여주려면 밉든 곱든 직전 회장과 악수를 나누는 장면은 있어야 했다"고 일갈했다. 필자도 참석한 이날 후원회장 입구에는 '초대받지 못한' 김흥국이 개인 자격으로 보낸 화환만 초라하게 놓여 있었다. 이자연호 역시 내부의 갈등과 반목의 역사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 대목이다.
2019년도 벌써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을 맞고 있다. 가요계의 거목인 나훈아가 '영원한 라이벌' 남진이 초대회장으로 활약한 가수협회에 후원금을 기탁하며 가요계 발전과 화합을 위한 손길을 내밀었다. 반목과 갈등의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 하고 있는 가요계도 오랜 '외면의 시선'을 거두고 '통큰 행보'로 후배들을 감싸안은 나훈아의 깊은 뜻을 한번 헤아렸으면 한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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