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외과 전문의가 의료선교로 선택한 곳은 마다가스카라
-여우원숭이, 바오밥 나무로 유명한 아프리카 남동부 섬나라
그는 이제 50대 중반의 나이가 됐다. 그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아프리카 수단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고 이태석 신부 때문이다. 이 신부가 소천하기 전 둘은 만난 적이 없다. 천주교 이태석 기념재단은 마타가스카르에 있는 그에게 ‘제1회 이태석 신부상’을 수여했다.‘ 이재훈 선교사 겸 의사’. 바로 그다. 이재훈 선교사 명함에는 부인 박재연 선교사 이름도 나란히 있다. 부부가 하나의 명함을 쓰고 있다. 마다가스카르의 의사 이재훈 선교사가 지난 11월 말 마다가스카르 보건부 차관과 함께 모처럼 고국 땅을 밟았다. 물론 부인도 동행했다. 이 선교사가 마다가스카르로 돌아가기 전 <더팩트>와 만났다. 그의 꿈(삶)의 이야기를 커피 한잔에 담았다. 소설 형식으로① 3편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주>
[더팩트 | 전주=이경민 기자] 고려대 의대 졸업, 연세대 세브란스 외과 전문의. 30대 중반. 그는 모든 것을 던지고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로 갔다. 그곳은 세계 8대 빈국의 섬나라. 그 손엔 ‘선교사-의사’라고 적힌 명함이 사실상 전부였다. 잘나가는 의사의 부인은 그의 선택을 응원했다. 아니 오히려 아프리카 행을 재촉했다. 3명의 어린아이들(아들-딸-아들)은 사실 영문도 모르고 부모를 따랐다. 그때가 2003년. 그는 ‘꿈의 시작이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19년. 그는 동안(童顔)이었다. 50대 중반(1967년생)을 넘겼지만 보이는 것은 40대 중반처럼 보였다. 아프리카에서 사는 사람이라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하얀 피부다. 커피숍 조명에 비친 그의 눈가엔 푸르스름한 멍의 기운이 있다.
"모처럼 한국에 와 눈꺼풀을 손댔는데(처짐교정 수술) 멍이 쉽게 안 가시네요."
의아한 눈으로 빤히 보는 기자의 눈길에 대한 답이다.
"아니 고려대 의대를 나와 연세대 세브란스에서 박사(외과)를 받았는데 아프리카로 간다. 신부나 목사도 아니고."
질문은 극히 세속적이다. 그래도 이 문제를 풀지 않으면 잘 대화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꿈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꿈’(Dream)이었다는 것이다. 꿈 앞에 ‘아프리카’와 ‘오지’라는 수식을 붙였다.‘오지인 아프리카 선교 아니 의료 봉사’가 끔이었단다. ‘오지 봉사’가 꿈인 사람. ‘의료 봉사’를 위해 의대에 간사람.
"아니, 가족들도 동의했습니까." 한국의 의사 부인(여자)들이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란 내심이 숨었다.
"안 사람이 더 적극적이었습니다".
(고려대) 학창시절 대학 캠퍼스에서 만난 커플. 그러고 보니 명함에 두 명의 이름이 있어 다시 꺼내 들었다.
"명함의 ‘박재연 선교사’가 부인입니까."
"예". 전북 전주에 사시는 부모님은 당시 잠시(2~4년) 봉사하고 돌아오는 줄 알고 계셨단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열기가 채 가시기 전 그는 부인과 함께 ‘아프리카 오지(奧地) 선교단’(대한예수교장로회)에 가입했다.나이 36세. 그는 당시 산능교회(경기도)를 다녔다. 오지 선교의 뜻에 교회의 지원과 함께 연세대 세브란스도 적극 호응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한 사람.
‘올리버 에비슨’(Oliver R Avison).
한국의 최초 서양식 의료 대학과 병원이라 할 수 있는 연세대 세브란스의대와 병원을 만든 사람. 토론토 대학교수와 의사인 에비슨은 연세대 설립자 언더우드의 말 한마디에 조선 반도(당시로선 아프리카 보다 오지)로 넘어온 인물 에비슨. 그렇게 조선에 와 ‘의료선교’의 문을 연 ‘에비슨’을 그는 삶의 모토로 삼았다.
‘나라의 리더십(주권과 경영권)은 해당 국가(당시 조선)으로 넘겨야 한다.’
그는 에비슨의 이 말을 경구처럼 외었다. 의료선교가 제국주의 식민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의식한 말이다.
"의료선교사들은 담당 국가의 리더십을 소유하지 말고 ‘컨텐츠’(기술과 장비, 교육)만 전달해야 합니다."
에비슨에게 배운 ‘의료선교’의 본질을 그는 꿈의 기준으로 삼았다. 실제 에비슨은 조선에서 병원을 설립하고 학교를 세우면서 모든 소유는 학교 재단과 정부에 맡겼다.
그리고 조선시대 전라감영이었던 전북 전주. 조선시대 연세대 보다도 앞서 의료 선교가 진행됐던 곳. 미국의 선교사들이 세운 전주예수병원은 125년 된 역사를 자랑하는 종합병원이다.
전주에서 기독교 신앙생활을 해온 그에게 이 같은 전주의 정서는 의료선교의 꿈을 키우게 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그렇다고 그는 의사였지 기독교 선교사가 아니었다. 오지로 가려면 ‘선교사’가 돼야 했다.
교회(주요 후원은 ‘산능교회’, ‘큰은혜교회’)와 연세대는 그를 영국으로 보냈다. 2003년과 2004년 2년 동안 그는 영국에서 선교사 교육을 받았다.
그가 당초 아프리카 의료선교지로 배정받은 곳은 ‘케냐’. 케냐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오지 의료 선교에 가장 앞선 지역으로 이미 기본적 기틀이 잡힌 곳. 특히 선교자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외국인 학교)가 설립돼 있고 병원도 말라리아 프리존(Free Zone-말라리아는 아프리카 사망 원인 1위병)이라는 곳에 있다.
이런 이유로 케냐엔 이미 ‘외과 의사’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프리카 오지 선교단이 추천한 곳이 외과 의사가 없는 ‘마다가스카르’.
그는 주저 없이 ‘마다가스카르’를 선택했다. 그리고 2005년 초 ‘마다가스카르’ 안타나리보 이바트 국제공항(Ivato International Airport, Antananarivo)에 내렸다.
꿈의 시작이다. 삶의 모토 에비슨이 조선땅을 밟은지(1893년) 112년째 되는 때이다.그렇게 마다카스카르의 제2의 에비슨. 이재훈 의료 선교사의 꿈이 시작된다.
/scoop@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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