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농민회총연맹, 전남·전북 이어 경남서 세 번째 투쟁
[더팩트ㅣ함안=강보금 기자] 경남 함안군에서 쌀농사를 짓는 곽진영(58)씨의 이마에 맺힌 구슬땀이 추수를 기다리며 인고의 시간을 버틴 벼 위로 눈물처럼 떨어진다.
한 톨의 쌀을 얻기까지 농부의 손길이 88번 간다는 말이 있다. 곽씨는 수천, 수만, 수억의 쌀알을 키워내기 위해 발바닥이 돌덩이처럼 굳어가는 것도, 손이 부르터 더는 뼈마디와 살의 경계를 찾을 수 없는 것도 모르고 온 정성을 쏟았다.
하지만 오늘, 봄부터 땀과 눈물로 함께 키운 벼들을 이리도 슬프게 바라보는 곽씨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15일, 황금빛으로 물들 논을 바랐지만 아직 여물지 않아 푸릇한 벼들은 미처 고개를 숙이기도 전에 영문도 모르고 파헤쳐졌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이하 전농부연)은 15일 오전 10시 경남 함안 가야읍 묘사리에 있는 600여 평의 논에서 투쟁을 선포하면서 벼가 익어가는 논을 갈아엎었다. 이는 전남, 전북에 이은 세 번째 투쟁 시위다.
본격적인 수확기는 오는 10월 초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45년 만에 최대로 폭락한 쌀값 앞에 농민들은 "사람이 살기 위해 벼를 죽여야 한다"며 그동안 공을 쏟은 모든 것을 힘겹게 목구멍 뒤로 밀어 넣고 트랙터의 시동을 켰다.
트랙터는 푸릇한 벼를 집어삼키고 이내 거뭇한 흙을 토악질하듯 게워냈다. 애지중지 키운 벼가 무참히 쓰러지는 모습에, 농민들의 얼굴은 단단한 결의 뒤로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파리한 슬픔이 뒤섞여 있었다.
600여 평의 논이 쑥대밭이 됐다. 농민들은 갈아엎은 논 앞에서 일제히 구호가 적힌 깃발과 손팻말을 흔들었다. 깃발에는 '쌀값 빼고 다 올랐다. 농민생존권 보장하라', '농민 천시 농업 무시, 윤석열 정부 규탄한다' 등이 적혀 있었다.
이날 자신의 논을 갈아엎은 곽씨는 "쌀값이 하락해 인건비와 비룟값도 나오지 않는 가격으로 팔려 농사지어서 살기 힘들어졌다. 이런 농민의 어려움을 알리기 위해 오늘 저의 논을 갈아엎었다"고 설명했다.
윤동영(48) 거창군농민회 회장은 "쌀값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누가 농사를 짓겠는가. 결국, 우리 국민은 국내산 쌀을 먹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 세상 올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조병옥 전농부연 의장은 "지난달 29일 전국 농민들이 서울에 모여 쌀값 대책을 촉구했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오히려 관세를 없애거나 저율할당관세(TRQ) 물량을 크게 늘리면서 외국 농산물을 무차별 수입해 인위적으로 농산물 가격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우리 농민들은 오늘의 투쟁을 시작으로 하반기 나락적재 투쟁, 시군 농민대회, 경남농민대회, 농기계 대행진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싸울 것"이라며 "또한 압도적 규모로 오는 11월 16일 전국농민대회를 성사시킬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들은 오늘의 투쟁으로 ‘2021년 재고미 전량 격리’, ‘밥 한 공기 300원 보장’, ‘쌀 수입 전면 중단’, ‘WTO 쌀 협상 폐기’, ‘양곡관리법 개정 및 예산 마련’, ‘관세할당제도(TRQ) 수입,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추진 중단’을 요구했다.
한편, 전농부연에 따르면 연도별 수확기(10~12월, 20kg) 평균 쌀값은 2018년 4만8392원, 2020년 5만4121원, 2021년 5만1254원이었다가 올해 8월 말경 4만1836원으로 떨어졌다. 1년 사이 쌀값이 1만 원가량 폭락한 것이다.
hcmedia@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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