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강정숙 여사 등 유족과 전국 각지에서 모인 50여명 문인 참여 고인 생전 업적 기려
[더팩트 ㅣ 광주=박호재 기자] 황지우 시인이 ‘민족문학의 독전관’으로 일컬었던 고 채광석 시인(한국 작가회의 명예 사무총장)의 유해가 경기도 양평 ‘자하연팔당공원묘원’에서 이장,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 새롭게 안장됐다.
이날 안장식에는 고인의 유족과 전국 각지에서 모인 문인 등 50여명이 참여, 헌화와 분향으로 고인의 생전의 업적을 기렸다.
민족문학 독전관이라는 별칭을 얻었을 정도로 채 시인은 1980년대 민족문학을 말할 때 그 첫 페이지에 이름이 새겨질 정도로 한국 민족문학의 맥통을 계승했고, 그 재창조 작업에 헌신한 민족민중운동권의 대표적인 활동가였다.
또한 채 시인은 민주투사로서도 치열한 삶을 살았다.
고인은 1975년 5월 22일, 민주화를 외치며 할복자살한 서울대 ‘김상진열사 장례식 사건’을 주도, 2년 1개월간 공주교도소에서 수형생활을 했다. 이후 서울대 사대 4학년생으로 복학한 채 시인은 80년 5월 17일 계엄포고령 위반혐의로 예비검속돼 40여일간 고문에 시달리는 등 모진 고초를 겪고 3개월만에 기소유예 조치로 풀려났다.
채 시인은 전두환 5공정권의 폭압적 군사독재와 맞서 싸운 실천문학 운동을 앞장서서 이끌었다. 그는 ‘민통련’ 중앙위원과 ‘민문협’ 실행위원, ‘자유실천문인협의회’(자실, 현 한국작가회의 전신) 총무간사·실행위원으로, 그리고 ‘풀빛출판사’의 편집주간으로 활동하며 반체제 저항문학 운동의 선봉에 섰다.
고인은 출판문화운동 영역에서도 혁혁한 공적을 남겼다. 광주 5월 민중항쟁에 대한 최초의 기록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등과 1980년대 민중시 운동을 주도한 ‘풀빛 판화시선’ 발간을 주도했다. 김지하의 첫시집 ‘황토’가 그의 손을 통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으며, 박노해의 첫 시집 ‘노동의 새벽’도 빛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발자취에서 알 수 있듯이 80년대 민족문학운동의 최전선에 서있던 고인은 1987년 7월 12일,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서른아홉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안장식에서 추모시를 바친 이승철 시인은 "그의 문단활동은 5년 남짓에 불과했지만, 채광석은 ‘운동으로서의 문학’에 적극 매진하면서,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민중문학’ 혹은 ‘민중적 민족문학’을 1980년대 문학의 주류로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고 밝혔다.
채 시인의 아내 강정숙씨는 추모객들을 위한 답사에서 "몇 년만이라도 더 살았으면 훌륭한 작품들을 남겼을텐데…하는 생각이 늘 사무쳤을 정도로 너무 짧은 삶을 살다 갔다. 세월이 가면 잊혀지리니 했지만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돌아가신지 33년이 됐지만 이렇게 많은 분들이 안장식에 참여해주신 것을 보면서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시인 김정한은 고인의 죽음 앞에서 ‘채광석’ 이라는 실명시를 이렇게 헌사했었다.
"그가 없는 우리들의 모임, 그가 없는 우리들의 운동/그가 없는 우리들의 사랑, 그가 없는 우리들의 투쟁/그가 없는 우리들의 죽음, 그가 없는 우리들의 부활/그가 없는 우리들의 건설은 상상할 수 없다"
forthetru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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