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발주처일 뿐", 박용갑 "시, 사과해야"

[더팩트ㅣ설상미·이윤경 기자] 서울 강동구 땅꺼짐(싱크홀) 사고 발생 지점인 지하철 9호선 연장 공사 현장에 설치된 계측기 대다수가 과거 정부기관에서 부적격·결함 평가를 받은 회사 제품인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는 지하철 공사를 발주했을 뿐 계측기 문제는 시공사 업무라는 입장이지만 책임 회피라는 지적도 나온다.
14일 박용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서울시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사고 지역 반경 500m 내 설치된 9호선 4단계 연장사업 공사 관련 계측기는 총 179개로 집계됐다. 이 중 A사 계측기는 167개로 전체의 93%를 차지했다. 계측기는 터널 착굴시 지반안전성을 미리 점검할 수 있는 측량기구로, 지반침하 등과 같은 사고 예방에 필수다.
문제는 지난 2020~2024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정부출연기관인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실시한 국내 계측기 현황 조사에서 A사 제품은 여러 부문에서 부적격·결함 평가를 받았다는 점이다. 앞서 시는 사고 지점 인근 주유소 바닥 균열 등에 따른 민원에도 '계측 결과 이상 없음' 입장을 내놨다. 시는 "9호선 공사 현장과 인접함에 따라 지난 3월 14일 민원인과 협의해 주유소 내 계측기 2개소를 추가 설치 후 주기적 검측을 시행했으나 사고 당일까지 계측 결과는 이상이 없었다"고 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락볼트 축력계 점검 결과 A사 계측기는 5톤(50kN)의 하중을 3.3톤(33kN)으로 감지했다. 또 9톤(90kN)의 하중에도 실제 하중에 훨씬 덜 미치는 6.7톤(67kN)의 계측값이 나와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락볼트 축력계는 터널 보강재인 락볼트에 받는 힘을 확인해 위험 신호를 감지하는 것이다. 예컨대 1톤의 하중을 공사시 '위험 신호'로 가정했을 경우 A사 계측기로는 1톤에 훨씬 못 미치는 하중을 감지하기 때문에 위험 신호를 알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터널 굴착에 따른 지반 이완 정도를 확인하는 지중 변위계 시험에서도 A사 계측기는 '결함' 판정을 받았다. A사 계측기는 5mm 변위에도 1.79mm, 30mm 변위에도 25.71mm의 계측값이 나왔다. 굴착기 현장에서 기준치 이상으로 변위가 생길 경우에는 공사를 중지하고 보강 등의 조치를 할 수 있지만, 이 계측기로서는 변위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터널 숏크리트 응력계 시험에서도 A사 계측기는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이 계측기는 10MPa의 하중이 가해질 경우 기준치보다 42% 초과한 14.24MPa를 기록했다. 반면 B사 계측기는 10MPa의 하중이 가해질 경우 10.01MPa를 기록하면서 적격 판정을 받았다.
숏크리트 응력계는 터널 주변 변위에 수반해 발생하는 콘크리트 응력(원래 상태를 유지하려는 능력)을 측정한다. 콘크리트에 발생하는 응력과 배면 토압(흙이 누르는 힘)의 크기를 파악해 터널 안전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계측기를 제작한 A사 측은 "락볼트 축력계의 파이프 센서는 건기연 조사 후인 2023년 6월 내구성과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 보완했다"고 해명했다

시는 사고가 발생한 9호선 4단계 1공구 공사의 발주처일 뿐, 하도급은 시공사에서 계약하기 때문에 계측기 적격 여부까지는 확인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계측기에 문제가 있다면 설치되면 안 된다"라면서도 "지금은 책임 감리 제도가 생겼기 때문에 계측기 하자는 시가 확인하기 어렵고, 시공사 측에 문의해달라"고 했다.
이를 두고 시가 1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시공사에 책임을 돌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4년 석촌지하차도 싱크홀 조사단장을 맡았던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학과 교수는 "발주처인 서울시는 공사 현장에서 막강한 힘을 가지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시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어떤 허가도 나지 않는다"라며 "시가 책임 감리를 감독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1차적인 책임은 서울시에 있다"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지반침하 사고 가능성을 예측하려면 정상 계측기 사용이 필수적이나, 지하철 9호선 사업에는 불량 계측기가 사용됐는데도 국토교통부, 서울시 모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계측기 사용에 관리 감독을 하지 않은 서울시와 국토부 모두 이번 사고에 책임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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