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장우성 기자] 의사의 정신과적 소견이 없더라도 심신상실에 따른 사망을 인정해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A 씨와 자녀가 보험사들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법에 돌려보냈다.
A 씨의 배우자 B 씨는 한 항공기업체에 근무하다가 사망했다. 유족은 B 씨가 극심한 업무·육아 스트레스에 따른 심신상실로 자유로운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에 이르렀다며 보험회사들에 보험금 지급을 청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이들이 맺은 보험계약 약관은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명시한다. 보험사들은 B 씨가 고의로 자신을 해쳤다고 봤다.
유족은 보험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했으나 2심은 원고 패소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의학적 소견을 중시했다. 고인이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고있었다는 의사의 진단서나 소견서가 없다는 것이다. 정신보건임상심리사가 작성한 심리학적 의견서는 있지만 생전 B 씨를 직접 상담한 결과가 아니라 의학적 소견과는 다르다고 판단했다.
B 씨의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 근로복지공단 판단도 업무상 이유로 사망했는지 인과관계 판단에 중점을 뒀을 뿐 당시 정신적 상태는 의학적 소견이나 구체적 설명이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고인이 생전 주요 우울장애 진단이나 치료를 받지 않았더라도 경위나 정황 등을 통해 심신장애로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는지 판단할 수 있다고 봤다.
B 씨는 당시 연장근무시간이 533시간에 이르고 사망 직전 1주일간은 44시간에 달했다. 고유 업무인 경리 외에도 전산시스템 개발 업무도 맡았고 시스템 오픈이 지연되면서 문책을 받는 등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자녀를 위해 육아휴직을 계획했으나 업무 때문에 연기하다가 결국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고인은 평소 "업무 때문에 가족에게 미안하고 머릿 속에서 일이 떠나지 않으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결정할 수 없는 스스로의 모습에 화가 나 충동을 느낀다"고 동료들에게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B 씨는 업무를 이유로 육아휴직계를 철회한 다음날 새벽에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대법원은 "고인은 사망 전 극심한 업무스트레스를 호소했고 주요우울장애 증상과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했다"며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사망에 이르게 됐을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원심이 보험계약 약관의 면책 예외사유 해석 등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며 재판을 다시 하도록 했다.
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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