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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후원 줄고 물가는 오르고…'위기의 연말' 무료급식소

  • 사회 | 2023-12-30 00:00

후원 15% 감소·식대 33% 급증
취약계층, 전기세 인상에 부담
경기 불황에 연탄 후원도 '뚝'


지난 20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인근 밥퍼나눔운동본부 무료급식소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사람들 모습. /김영봉 기자
지난 20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인근 밥퍼나눔운동본부 무료급식소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사람들 모습. /김영봉 기자

[더팩트ㅣ김영봉 기자·이윤경 인턴기자] "많이 어려워요. 물가와 공과금은 치솟고, 기업 후원도 줄었습니다."

체감온도 영하 10도의 한파가 몰아친 지난 20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인근에서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는 '다일공동체 밥퍼나눔운동본부'(밥퍼)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 고물가에 후원 부족까지…이중고 겪는 무료급식소

이날 오전 10시30분 청량리역 6번 출구에서 약 500m 떨어진 밥퍼 무료급식소는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60~80대로 가득했다. 한 번에 약 13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식당 내부는 이미 만석이었다.

식당 밖에도 오전 11시부터 시작되는 점심 배식을 기다리는 이들로 줄이 길게 늘어섰다. 추위에 연신 시린 손을 비벼대면서도 차분히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다일공동체 밥퍼나눔운동본부가 20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부근 무료급식소에서 사람들에게 따뜻한 점심을 제공하고 있다./김영봉 기자
다일공동체 밥퍼나눔운동본부가 20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부근 무료급식소에서 사람들에게 따뜻한 점심을 제공하고 있다./김영봉 기자

지난 36년 동안 배고픈 취약계층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제공하고 있는 밥퍼는 올해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물가에 기업 후원까지 줄어 운영에 애로사항이 많다. 현장에서 만난 한 밥퍼 자원봉사자는 "작년에 비해 어려운 상태"라고 털어놨다. 밥퍼 측은 "기업 후원이 전년 대비 15%나 감소했고, 물가가 올라 식대도 1년 전에 비해 33.3% 급증했다"고 전했다.

인상된 공과금도 부담이다. 가스·전기요금 등도 무료급식소 운영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는 셈이다. 다른 예산을 줄여서라도 식사 제공에는 지장이 없도록 하고 있다는 게 밥퍼 측 설명이다.

밥퍼 관계자는 "개인 후원은 줄지 않았지만, 기업이나 단체들의 경우 경제 불황 여파로 줄었다"며 "고물가로 재료 부담이 크고, 공과금도 다 올라 부담이 전년에 비해 2배나 된다. NGO 민간단체인데 차감 혜택은 전혀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날 점심 메뉴는 계란찜, 콩나물무침, 김치 등과 부대찌개, 쌀밥이었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온 김모(81) 씨는 "각박한 세상에 이런 급식소가 있어서 너무 고맙다"며 "자주 와서 맛있게 먹고 간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 원각사 무료급식소 앞에서 사람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이윤경 기자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 원각사 무료급식소 앞에서 사람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이윤경 기자

고물가와 경기 불황에 따른 후원 부족은 밥퍼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부 지원 없이 순수 민간지원으로 운영되는 서울 종로구 원각사 무료급식소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날 원각사 무료급식소 점심 배식은 음식이 동이 나면서 낮 12시30분 끊겼다. 이후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많을 때는 400명까지 음식을 대접하는데 이날은 300여명만 배고픔을 달랠 수 있었다.

자광명 보살은 "경제가 어려울 때일수록 (식사하러 오는) 사람 수가 늘어난다"면서 "하지만 후원이 줄어들면서 (운영이) 어렵고, 이 상태가 이어질 경우 더욱 힘들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도움 주고 신경 써주면 감사하겠다"고 당부했다.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서 한 주민이 연탄을 교체하고 있다./김영봉 기자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서 한 주민이 연탄을 교체하고 있다./김영봉 기자

◆ 구룡마을 주민들 추위에 '덜덜'…전기세 부담에 연탄에만 의존

같은 날 오후 4시 서울의 대표적 판자촌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주민들도 고물가로 강추위에 떠는 모습이었다. 전기요금 부담에 전기난로 대신 연탄 보일러를 사용하는 세대가 다수였다.

주민 김모 씨의 3평 남짓한 방은 외풍을 막기 위한 단열시트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바닥만 미지근할 뿐 찬 공기가 돌고 있어 코끝이 시렸다. 김 씨는 "올겨울 너무 추워서 걱정"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연탄은 지원받았지만 바람이 많이 불고 춥다"면서 "전기난로가 있지만 약하고 또 전기세도 부담돼 잘 틀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김모(84) 씨 집 내부 모습. /김영봉 기자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김모(84) 씨 집 내부 모습. /김영봉 기자

한 달 전기세를 묻는 질문에는 "작년보다 두 배 가까이 오른 4만원 이상 나온다"며 "물가도 많이 올라 걱정이다. 나가면 다 돈이니까 그냥 집에만 있게 된다"고 했다.

구룡마을에서 40년을 살았다는 80대 주민 이모 씨도 "물가가 너무 올라서 시장에서 뭘 사려고 해도 비싸서 손이 가지 않는다"며 "기름값도 많이 올라서 주로 연탄으로 난방을 한다"고 말했다.

연탄나눔 전문기관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에 따르면 올해 후원된 연탄은 246만4504장으로 2021년 527만8193장보다 53%나 감소했다./김영봉 기자
연탄나눔 전문기관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에 따르면 올해 후원된 연탄은 246만4504장으로 2021년 527만8193장보다 53%나 감소했다./김영봉 기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탄 후원도 줄고 있다. 연탄나눔 전문기관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에 따르면 올해 후원된 연탄은 246만4504장으로 2021년 527만8193장에 비해 53%나 감소했다.

연탄은행 관계자는 "고유가·고물가 등 겹쳐오는 사회적 악조건 속 주위 이웃을 살피기에 어려운 현실이 됐다"며 "연탄 사용 가구가 전국에 7만4000여가구인데, 추위가 가시는 4월 말까지 연탄을 때야 하기에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kyb@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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