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 우려에 '머뭇'…"누가 쏘겠나"
구상권 청구 드물지만 확신 못 가져
[더팩트ㅣ조소현 기자·이장원 이턴기자] "절대 안 쏜다. 도박이다. 만약 중상이라도 입히면 돌변할 게 뻔하다."
"실탄사격 했다가 잘못되면 손해배상해야 한다. 소송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거 생각하면..."
서울 신림동과 분당 서현역 등 무차별 흉기난동 사건이 잇따르자 윤희근 경찰청장이 '실탄사격'을 꺼내들었다. 윤 청장은 "면책규정을 적극 적용하겠다"며 급박한 상황에선 경고사격 없이 실탄 사용을 허용하겠다고 했지만 현장 반응은 차갑다. 민사 소송 부담감 때문이다.
◆민사책임 우려…청구소송 대부분은 '국가 대상'
경남권에 근무하는 A경찰관은 "총은 쏘는 게 아니라 범인의 머리를 향해 던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며 "형사 쪽으로는 면책조항이 있지만 민사소송에서는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해 (실탄사격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2월 개정된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르면 경찰은 범죄 예방 또는 진압 과정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줬을 때 정상 참작을 통해 형을 감경받거나 면제받을 수 있다.
민사는 다르다. 경찰은 형사 절차에서 정당행위·정당방위가 인정돼 불기소되거나 무죄가 선고되더라도 민사재판에서는 불법행위로 판단될 수 있다.
지난 2008년 2월 대법원 2부(당시 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경찰관이 쏜 총에 맞아 숨진 B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유족에게 모두 1억1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실탄을 발사할 만한 급박한 상황이 인정돼 해당 경찰관 형사책임은 무죄로 판단됐지만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은 별도로 검토돼야 한다"며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다만 손해배상 책임은 대부분 국가 몫이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학부 교수는 "(총기 사용 관련 손해배상청구소송은) 주로 국가배상소송"이라며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을 저지른 경우가 아니라면 (국가가 경찰관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설명했다.
일선 경찰관들은 개인 손해배상 책임 인정은 드물더라도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우려한다. 인천 지역에서 근무하는 C경찰관은 "민사소송에서는 사안의 세부적 특성 때문에 손해배상 책임 인정 여부가 제각각이 될 수 있다"며 "위험을 무릅쓰고 총기 사용을 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에 근무하는 D경찰관도 "면책규정을 강화해도 '해야 한다'는 강행규정도 아니고 '할 수 있다'는 자율적 판단이 가능한 규정이다. 총을 쏴도 면책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지 않는 이상 실탄사격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 "면책 강화해야" vs "현실 반영 훈련부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경찰관의 손해배상 면책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의견과 물리력 강화 훈련부터 앞서야 한다는 의견이 맞선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공무집행법에서 실탄사격을 규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민형사상 책임이 따르는 상황"이라며 "책임 범위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에 경찰은 (실탄사격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민사적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지지 않도록) 면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실화된 훈련 도입이 우선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김영식 교수는 "총기 사용 등 사람에 위해를 가하는 물리력 사용에는 당연히 책임이 따라야 한다"며 "중요한 것은 면책 강화가 아닌 경찰이 물리력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실제 상황에서 정확히 사격할 수 있게 훈련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경찰은 연 2회 권총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1회 훈련 때 35발을 쏜다. 영점 사격 5발을 제외하면 사실상 30발(완사 10발, 속사 20발)이다. 다만 고정된 표적지에 사격 훈련을 진행하다 보니 범인이 움직이는 상황인 실제 사건 현장과는 동떨어진 환경이다.
익명을 요청한 경찰관은 "반기마다 정기적으로 정례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면서도 "정지된 표적지에 훈련하는데 실전에서는 범인이 가만히 있지는 않기 때문에 과연 표적지 사격이 실제 현장에서 의미가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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