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구조대 3인 동행 인터뷰
절정 폭염에도 40분 만에 정상 등반
[더팩트ㅣ김세정 기자·이장원 인턴기자] 맑은 빛깔의 하늘에 점차 회색빛이 칠해지던 주말. 서울 도봉산 초입의 2층짜리 건물에는 적막감이 감돈다. 산새와 개울소리만 잔잔히 들려오던 그곳의 고요가 깨진 건 오후 2시38분이었다.
"우이암 보문능선 사이 지점 구조자 발생. 즉시 출동 요망."
'딩동' 소리와 함께 울리는 알람에 건장한 체격의 남성 3명이 급히 뛰쳐나와 빨간 차에 오른다.
산세를 훤히 꿰고 있는 듯 이현정(40) 소방장이 "우이암은 돌아가야 하니 보문능선 쪽으로 가자"고 말한다. 긴장한 기색의 김지암(30) 소방교는 운전대를 잡고 거친 표면의 산길을 오른다. 노련한 김동주(41) 소방장은 요동치는 차 안에서 침착히 등산화 끈을 묶는다.
등산로 입구에 차를 댄 후 서둘러 내린다. 배낭을 어깨에 둘러메고 스틱을 손에 쥐었다. 이내 거침없이 험준한 산을 탄다. 절정의 폭염에도 지치지 않고 나아간다. 도봉산을 책임지는 119산악구조대 세 남자의 이야기다.
서울에서 접근성도 좋고 그다지 높지도 않은 도봉산은 무더운 여름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 몰리는 곳에는 안전사고가 뒤따른다. 더운 날씨에 탈수 현상으로 쓰러지거나 발을 헛디뎌 접질리는 등산객들이 적지 않다. 도심과 달리 산 중턱의 부상은 응급처치가 쉽지 않다.
이에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2012년 북한산·도봉산·관악산 3개 지역에 산악구조대를 창설했다. 관할 소방서의 일반 구조대가 전담했던 업무를 분화시켜 산악구조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탄생한 도봉산119산악구조대(도봉산 구조대)는 지휘관인 구조대장을 제외하고 총 8명의 구조대원으로 구성된다. 근무 형태는 4조 2교대 근무다. <더팩트>가 찾은 날에는 '베테랑' 이현정 소방장, 김동주 소방장과 풋풋한 신참 김지암 소방교의 근무일이었다.
올해로 산악구조대 5년 차인 이현정 소방장.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과 구수한 남도 말투가 묘하게 잘 어울린다. 대학에서 응급구조학을 전공한 이 소방장은 구급특채로 소방관이 됐다. 산악구조대에 근무하던 친구의 제안에 덜컥 도봉산과 인연을 맺었다.
"친구가 여기 좋다고 추천하더라고요. 일단 응급처치 능력만 있으면 된다, 나머지는 와서 하면 된다면서. 산 타는 것도 한 40분이면 다 올라간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너무 힘들었어요. 저는 처음에 배낭도 안 줬다니까요. 너는 그냥 올라오라고 했는데 못 따라가니까 버리고 가더라고요. 아무 생각도 안 들고 그냥 힘들었어요. 하하."
살아남기 위해 몸을 단련했다. 운동과는 거리를 두며 살았지만, 근력을 키우고, 무거운 배낭을 일부러 짊어지고 산을 올랐다. 5년간 강도 높은 훈련과 반복된 실전 업무 끝에 이 소방장은 탄탄한 체력에 정신력까지 얻었다.
"폐활량이 좋아졌다기보다는 정신력이 많이 좋아졌어요. 너무 고통스러운 건 똑같은데, 그걸 참고 올라갈 수 있게 된 거죠."
고된 업무지만 산악구조대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다.
훤칠한 외모의 김지암 소방교는 산을 사랑하는 산악인이다. 영화 '엑시트' 이용남(조정석)의 현실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소방교는 지난달 14일 도봉산에 배치됐다. 대학 시절 산악부 출신인 김 소방교는 3산의 구조대원 중 가장 어리지만 산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선배들 못지않다.
고향 대구에서 소방관으로 근무하며 취미로만 산을 찾던 김 소방교는 도봉산 구조대를 보고 산악구조대의 꿈을 품게 됐다.
2020년 도봉산에서 함께 클라이밍을 하던 중 친구의 발목이 부러졌다. 구조대는 한달음에 달려왔다. 김 소방교는 "한창 코로나가 심할 때였다. 친구 체온이 39도가 나왔다. 갑자기 다치니까 체온이 올라간 건데, 워낙 코로나가 심각했다 보니 헬기 이송도 안 됐다"고 말했다. 결국 대원들은 방호복으로 무장한 채 친구를 들고 산을 내려갔다. 그 순간 김 소방교는 산악구조대에 들어가겠다는 결심이 섰다.
이후 김 소방교는 시·도 교류제도를 통해 서울로 올라왔다. 정예로 운영되는 산악구조대 특성상 빈자리가 생겨야 지원할 수 있다. 김 소방교는 포기하지 않고 매일 구조대 문을 두드렸다.
"집도 일부러 여기 근처에 구했어요. 퇴근하고 와서 같이 훈련받고, 거의 매일 같이 찾았죠."
김 소방교는 2년6개월 만에 산악구조대에 합격했다. 취재진이 찾은 날, 공교롭게도 김 소방교는 첫 출동을 앞두고 있었다.
우이암 전망대에서 보문능선으로 등반하던 60대 남성이 다리에 심한 쥐가 나 움직일 수 없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친근하게 인터뷰를 진행하던 대원들은 알람 소리에 곧장 미소를 거뒀다. 이들이 장비와 구조품을 챙기고 구급차에 타기까지 걸린 시간은 3분 안팎이다.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도 이 소방장은 신고자의 상태와 위치를 꼼꼼히 파악한다.
"보문능선 진입로를 통해 이동할 겁니다. 신고 지점이 정상 부근이라 아마 기자님들 못 따라오실 수도 있어요."
'에이, 저희도 산 올라가 봤어요'라며 호기롭게 발걸음을 옮겼지만, 곧 후회가 밀려왔다. 등산 시작 단 5분 만에 대원들은 시야에서 멀어졌다. 숨이 막힐 정도로 무더위가 밀려오는데도 이들은 무서운 속도로 산을 뛰어 올라갔다. 신고자 위치인 정상까지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40여 분이었다.
구조대는 신고자에게 파스로 응급처치를 했다. 물과 음료 등을 건네고 다시 하산했다. 위험에 처한 등산객들의 무사히 구조했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밀려온다.
하루 최대 7번 출동 경험이 있다는 김동주 소방장은 바쁠 땐 식사 시간조차 여유롭지 못하다고 귀띔했다. 그는 "신고를 처리하고 내려오는 길에 다른 신고가 접수되면 그 길로 바로 능선을 따라 이동한다. 그럴 땐 짬을 내서 간단히 식사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며 미소를 지었다.
신고식을 치른 김지암 소방교는 앞으로도 훌륭한 구조대원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훈련도, 근무도 열심히 해서 도봉산 오시는 분들 모두 저희가 안전하게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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