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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비혼여성은 한국 정자은행 이용할 수 없다?

  • 사회 | 2023-07-14 00:00

불법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워
주요 선진국은 비혼여성도 시술 가능


2023 제24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1일 오후 서울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가운데 참가자들이 도심 행진을 하고 있다./임영무 기자
2023 제24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1일 오후 서울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가운데 참가자들이 도심 행진을 하고 있다./임영무 기자

[더팩트ㅣ황지향 인턴기자] #1. 일본 국적의 방송인 사유리가 배우자 없이 일본의 정자은행을 통해 임신했다. 2020년 11월 건강한 아들을 얻은 사유리는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아들과의 행복한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2. 최근 국내 레즈비언 커플이 임신 소식을 알렸다. 이들은 벨기에 정자은행을 통해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했다. 오는 9월 출산을 앞두고 있다.

정자를 기증받기 위해 한국에 거주하던 일본 여성 사유리는 고향으로 돌아갔고, 한국 여성은 외국의 정자은행 문을 두드렸다. 일각에선 "한국에서 미혼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는 것이 불법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한다. <더팩트>는 비혼 여성이 한국에서 정말 정자은행을 이용할 수 없는지 알아봤다.

[검증 대상] 비혼 여성도 국내 정자은행을 이용할 수 있는지 여부.

[검증 방법] 1. 박남철 한국공공정자은행연구원 이사장(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전 교수)의 논문 <한국형 공공정자은행 설립과 운영> (2016) 및 인터뷰

2.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 및 대한산부인과 보조생식술 윤리지침

3.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위원회 '비혼여성에 대한 시험관 시술 제한 차별' 결정문

4.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비혼출산지원법 개정안

5. '가족구성권 3법 연속토론회 - 비혼출산지원법을 통해 본 비혼여성의 임신 및 출산 그리고 가족구성권' 토론회 자료집

[검증내용]

◆ 정자은행, 한국에도 있긴 있어요?…"YES but NO"

정자은행이란 정자를 채취한 뒤 -196도의 액체질소 탱크 속에 동결해 보관하다 필요할 때 녹여 보조생식술(인공수정, 시험관 등)에 이용하는 보관시설과 방법을 뜻한다.

한국에도 1997년 부산대병원에서 설립한 재단법인 한국공공정자은행연구원 등의 정자은행이 있다. 현재 전국 곳곳 병원에서 기증받은 정자로 시술을 하지만, 대부분 난임부부 대상이다.

한 정자은행 홈페이지에는 무정자증으로 인한 남성 불임, 심각한 유전질환 또는 염색체 이상을 갖고 있는 경우 등에 한해 기증 정자를 이용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대부분 병원이 비슷하다.

사유리나 동성커플 사례로 떠올릴 수 있는 정자은행 형태와는 다르다.

◆ 비혼 여성도 이용할 수 있어요?…"YES or NO"

엄밀히 말해서 불법은 아니다. 그러나 어렵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24조에 따르면 배아생성의료기관은 배아를 생성하기 위해 난자 또는 정자를 채취할 때 △난자 기증자 △정자 기증자 △체외수정 시술대상자 △기증자·시술대상자의 배우자가 있는 경우 그 배우자의 서면동의를 받아야 한다.

배우자가 없는 경우는 규정이 없다. 복지부는 비혼여성이 정자를 기증받아 시험관 시술을 하는 것은 법적 금지사항이 아니고, 별도의 제한 규정도 없다는 입장이다. 서면 동의서의 '배우자' 부분도 공란으로 두면 된다고 한다.

다만 생명윤리법 위반은 아니지만 시술을 받으려면 '대한산부인과학회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이 발목을 잡는다.

모자보건법은 '난임'을 법적 또는 사실혼 관계의 부부 중 정상적 성생활에도 1년이 지나도 임신이 되지 않는 상태로 규정한다. 이같은 난임 부부만 보조생식술을 받을 수 있다. 산부인과학회는 모자보건법을 근거로 해석해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을 만들었다.

2021년 개정된 지침에 따르면 모자보건법과 마찬가지로 체외수정시술은 원칙적으로 법적 부부와 사실혼 관계만 할 수 있다. 정자 공여 시술도 원칙적으로 부부와 사실혼 관계를 대상으로 시행한다. 학회 윤리지침과 관련 법률, 시술 과정과 합병증을 충분히 설명한 후, 시술 대상 부부가 동의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일선 병원은 이같은 지침을 따를 수 밖에 없다. 비혼 여성인 A씨가 그랬다. A씨는 41세에 한국에서 난자를 냉동했다. 국내에서는 체외수정 시술이 불가능해 바다를 건넜다. 미국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시험관 시술을 받았지만 임신에 실패했다. 9년 뒤인 50세에 다시 난자를 채취하고, 3회에 걸쳐 시술을 받았지만 또다시 실패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냉동해뒀던 난자를 해동해 시술을 받으려 했지만 병원은 윤리지침 때문에 거절했다. 복지부에 문의해 "미혼여성 시험관 시술을 금지하는 규정이 없다"는 답변도 받았으나 또 거절당했다. A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방송인 사유리는 정자를 기증받아 2020년 아들을 출산했다. /이새롬 기자
방송인 사유리는 정자를 기증받아 2020년 아들을 출산했다. /이새롬 기자

이에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지난해 5월 대한산부인과학회장에게 비혼여성 시험관 시술을 제한하는 윤리지침 개정을 권고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학회는 인권위에 "보조생식술로 출산하는 것은 정자 기증자 및 출생아의 권리 보호를 포함해 논의해야 하는 중대한 문제다. 사회적 합의와 관련 법률 개정이 우선돼야 한다"며 "독신자의 보조생식술을 허용하는 국가들은 동성 커플의 보조생식술도 허용하고 있다. 독신자뿐만 아니라 동성 커플의 보조생식술 허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선행돼야 한다"고 회신했다.

◆ 해외를 가야 할까요?…"YES"

인권위 결정문에 따르면 미국은 혼인 여부에 관계없이 출산 관련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불임치료 지원 대상은 주마다 다르지만 원칙적으로 비혼 여성도 보조생식술 시술을 받을 수 있다.

영국은 저출산 문제때문에 1990년 생명윤리 관련 법률을 정비하면서 비혼여성도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할 수 있게 됐다. 23~39세 비혼여성만 시술이 가능하다.

일본은 법·제도는 한국과 비슷하지만, 비혼 여성도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이 가능하다. 시술 대상을 부부로 제한한다는 산부인과학회의 지침이 있지만 병원 자율성을 인정한다. 실제 이 지침을 따르는 병원은 극소수다. 개인간 정자 기증도 가능하다. 사유리가 출산을 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이외 호주와 스웨덴, 덴마크, 프랑스, 독일 등 여러 서구권 국가에서 정자 기증을 통한 비혼 여성의 출산이 가능하다.

박남철 한국공공정자은행연구원 이사장은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한국에 공공형 정자은행 체계가 없으며 국가의 지원도 열악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한국에선 사실상 (비혼여성의 정자 기증이) 아무것도 안 되니까 여성들이 외국에 간다. 어떤 사회적 부작용이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지난달 31일 모자보건법에서 '난임' 정의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남윤호 기자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지난달 31일 모자보건법에서 '난임' 정의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남윤호 기자

◆ 모자보건법서 '난임' 정의 삭제 법안 발의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지난달 31일 모자보건법에서 '난임' 정의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장 의원은 지난달 28일 열린 가족구성권 연속토론회에서 "비혼출산지원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은 임신을 원하는 여성이라면 혼인 여부에 관계없이 누구나 보조생식술 등의 출산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법적인 가족 프레임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임신·출산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인식은 우리 사회의 부정할 수 없는 흐름이다. 그러나 현행법은 보조생식술의 시술지원대상을 법률혼 관계인 부부의 난임 극복으로 한정하고 있어, 혼인 관계 또는 파트너 없이 임신·출산을 희망하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가로막고 있다"며 "달라지는 가족 현실을 법·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저출생 해소를 위해 비혼 출산의 법적 보호를 시작으로 인구정책의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ya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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