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 5.18 인지도 낮아지는 추세
전문가들 "현장체험 늘려야"
[더팩트ㅣ조소현 기자·이장원 인턴기자] "솔직히, 잘 알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알고는 있지만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우리나라가 한 번의 독재를 겪은 게 아니어서 정의까지는 힘드네요."
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 씨는 5.18민주화운동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사죄했다. 할아버지의 잘못된 교육으로 5.18에 그릇된 인식을 가졌다는 이유다. 전 씨는 "집에서 '5.18은 폭동이었고, 우리 가족은 피해자다' 이렇게 교육을 받았다"며 "비극을 겪으신 분들의 증언을 듣고 깨달았다. 가족의 죄가 크고, 가족이 사실을 숨겨왔다는 것을. 이기적이고 나약한 인간이었기에 진실을 외면하고 도망쳐 왔던 것"이라고 고백했다.
전 씨를 의심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피해자와 유가족 다수는 위로의 손을 내밀었다. 5.18 총상 피해자 김태수 씨는 MBC라디오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에서 "전우원 씨는 진실된 이야기를 하시고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씨의 사죄가 피해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5.18의 진실을 알고 무지를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5.18 피해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할 방법은 5.18을 정확히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5.18이 일어난 지 43년이 지나며 5.18을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이 늘고 있다. 전 씨도 그렇다. 5.18에 대해 잘못된 교육을 받은 건 비단 전 씨뿐일까. <더팩트>는 미래세대의 역사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봤다.
◆5.18 인지도↓…전문가들 "암기 위주 교육이 문제"
<더팩트>가 만난 10대 청소년, 2030 청년들 대부분은 5.18을 알고 있었다. 다만 '스스로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알고는 있어도 '특별한 감정'이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고백도 있었다.
5.18기념재단이 실시한 '2022년 5.18 인식 조사(일반국민)'에 따르면 국민의 10명 중 9명꼴(88.7%)로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20대(3.3%)와 30대(4.2%)에서는 5.18 인지도가 전년보다 감소했다. '최근 1년간 5.18 관련 정보 접촉 경험이 있냐'는 질문에도 응답자의 76.4%가 있다고 응답해 전년 대비 7%p 감소했다.
10대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지난 2021년 5.18 청소년인식지수는 66.5점으로 일반 국민(71.4)과 비교해 다소 낮았다. 지난 2019년에는 73.2점, 2020년에는 67.0점으로 5.18 인지도는 하락 추세였다.
전문가들은 젊은세대의 5.18 인지도 하락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교육이 제 역할을 못 한다는 지적이다. 오제연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현대사 교육이 체계적이고 깊이 있게 다뤄지지 않으니 (인지도가 떨어지는) 자연스러운 경향을 막을 수는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암기·입시 위주의 교육도 문제다. 그는 "(한국의 역사교육이) 입시 교육이다 보니 5.18도 여러 역사 사건 중 N분의 1로 취급되는 것 같다"며 "5.18의 의미와 중요성이 제대로 부각되지 못하고 시험용 암기과목이 돼버린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초중고 교과과정에서도 5.18은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았다. 경기도 수원시에서 31년 동안 중학생을 가르쳐 온 역사교사 김모 씨는 "교과 내용이 너무 많고 근현대사 부분은 간략하게 소개하는 정도이기 때문에 (5.18을) 충분히 다루진 못한다"고 토로했다. 강원지역 초등학교 교사인 유모 씨도 "세세한 내용을 가르치기보다는 어떻게 지금의 민주주의로 발전했는지를 가르친다. 교과서 내용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당시 상황의 심각성을 상상하고 깨닫는 것을 어려워해 사진 자료나 동영상 자료가 필수"라며 "암기량이 많은 수업이라 학생들이 어려워한다"고 했다.
◆청년들 "자세히 배우지 못해"…SNS 통한 왜곡도
일부 교사들은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전이 때로는 교육에 방해가 된다고 한다. 초등학교 교사 구모 씨는 "요즘 학생들은 유튜브에 노출이 많이 돼 공부하기도 전에 이상한 사상이 들어온다"며 "정작 학교에서 (5.18에 대해) 배우면 삐딱하게 바라본다"고 털어놨다.
2030 청년들은 학창시절 5.18에 대해 짧게 배운 게 전부라고 입을 모은다. 공무원 최모(28) 씨는 "근현대사가 (교육과정) 맨 끝에 있었다. 자세한 내용보다는 원인과 결과 한 문단 정도로 짧게 배운 기억이 있다"고 했다. 장모(27) 씨도 "보수정권 때 학창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짧게 배웠다"며 "'민주화운동'으로 정치적 판단이 끝난 사건임에도 몇몇 선생님들이 정치적 발언을 의식해 말을 아낀 것 같다"고 회상했다.
교과서 외 다른 매체를 통해 5.18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경우도 있었다. 윤모(29) 씨는 "영화 '화려한 휴가'와 '26년'이라는 만화책을 통해 5.18을 알고 군부정권에 반감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전우원 사과로 5.18 관련 현장 방문↑…전문가들 "체험 늘려야"
전 씨의 사죄를 두고 평가는 엇갈린다. 그러나 긍정적인 효과는 있다.
5.18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청소년·청년들이 늘었다는 점이다. 5.18민주화운동 기록관과 국립5.18민주묘지 등에 따르면 전 씨가 사죄한 후 지난 3월 31일부터 기록관과 민주묘지 등에 방문객이 크게 늘었다.
5.18민주화운동 기록관과 전일빌딩245의 3월 중 일일 평균 방문객은 약 166명이었다. 그러나 전 씨가 광주를 방문한 후 3월 31일 방문객은 459명이었다. 증가세는 4월과 5월까지 이어졌다. 4월 일일 평균 방문객은 325명, 5월 일일 평균 방문객은 집계가 이뤄진 7일까지 513명이다.
민주묘지 참배객도 늘었다. 3월 참배객은 6440명이었으나 4월에는 11920명이 민주묘지에 다녀갔다. 학생들의 경우 3월까지는 약 1500명 정도가 민주묘지에 방문했으나 4월에는 4000명 이상이 방문했다.
홍인화 5.18기록관장은 "전 씨가 다녀간 후 (방문객이) 늘었다"며 "피해자 입장에서는 5.18의 진실을 알리는 게 매우 중요한데, (방문객이 늘었다는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말했다.
오제연 교수도 "역사교육이 입시 위주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며 "5.18의 의미를 깊이 있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광주로 답사·현장체험 등을 가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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