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과 다른 사진에 '머그샷' 요구 목소리↑
"형벌은 사법부가 내려야" 마녀사냥 지적도
[더팩트ㅣ조소현 기자] 지난 12일 '강남 납치·살해' 사건 배후 의혹을 받는 부부의 신상이 공개됐다. 지난 5일 이경우(35), 황대한(35), 연지호(29)의 신상이 공개된 지 일주일만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과거 증명사진이 공개돼 실물과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의자 신상공개 실효성 논란이 이어지는 이유다.
◆'증명사진' 공개…"실물과 달라 의미 없어"
경찰은 지난 5일과 12일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신상공개위)를 열고 '강남 납치·살해' 사건 피의자 3명과 배후 의혹을 받는 피의자 2명의 신상을 각각 공개했다. 피의자 신상공개는 지난 2010년 시행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을 근거로 한다.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있는 사건 피의자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 신상을 공개할 수 있다.
당사자 동의가 있다면 수의를 입은 상태의 일명 '머그샷'을 공개할 수 있지만 거부 시에는 신분증 증명사진을 공개해야 한다.
이번 사건 피의자들은 모두 신분증 증명사진이 공개됐다. 촬영 시점을 알 수 없고, 보정이 들어가 실물과 달랐다. 사진 공개 후 신상공개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학생 최모(23) 씨는 "증명사진은 보정이 많이 들어가 실물과 차이가 크다"며 "피의자가 앞에 있어도 알아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택시기사와 동거녀를 살해하고 시신을 숨긴 이기영도 운전면허증 사진이 배포됐다. '신당역 스토킹 사건' 피의자 전주환 역시 증명사진이 배포됐으나, 이송 과정에서 드러난 실물이 크게 달라 논란이 일었다.
◆'알권리'라는 피의자 신상공개…전문가들 "구체적인 정보 공개해야"
경찰이 신상을 공개하는 이유는 국민의 알권리와 범죄예방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신상공개에 관한 구체적 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한쪽에서는 인권침해라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공공의 이익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제도는 (각 주장의) 단점만 가지고 있다"며 "인권문제가 크다면 아예 제도를 없애야 할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되는 구체적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사진도 과거 사진을 사용하고 포토라인에선 마스크나 모자로 (얼굴을) 다 가린다"며 "신상공개 결정이 났다는 것은 그 자체가 기본권을 제한해도 된다고 법에서 권한을 부여한 것인데, 지금은 이를 강제할 수 없으니 정보가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포토라인에 선 피의자들이 마스크, 옷, 모자 등으로 얼굴을 가리면 이를 막을 수 없다. 피의자들은 취재진 앞에서 얼굴 공개를 거부할 수 있다.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고유정은 머리카락을 이용해 얼굴을 가렸고, 남성 1300명의 알몸 영상을 불법 촬영한 김영준도 마스크를 벗어달라는 취재진의 요구를 거부한 채 호송차에 올랐다.
김영식 교수는 "최근 사진이나 '머그샷'을 공개하고 포토라인에 선 피의자가 얼굴을 가리는 행위 등을 제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피의자의 인권침해 우려에도 미국이나 유럽과 같이 머그샷 공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미국은 범죄 현장에서 검거되면 얼굴을 다 공개한다"며 "(우리나라)는 공적 사건인 범죄 사건을 저지른 피의자의 경우에도 인권을 과잉 보장하는 것 같다. 국제 표준을 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죄추정 원칙에 반해"…경찰 인권위도 회의 안건 상정
다만 피의자 신상공개가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나고 피의자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여론도 만만찮다.
대학원생 권모(27) 씨는 "국민의 알권리는 중요하지만 그게 피의자 신상공개로 이어진다면 헌법적 가치를 흔드는 일이 될 수 있다.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된 뒤에 신상을 공개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며 "징벌적 성격으로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중세시대 마녀사냥 같다. 형벌을 내리는 일은 사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28) 씨도 "신상공개를 통해 알게 된 정보가 범죄를 예방하는 데 의미 있는 정보인지 모르겠다"며 "당장의 가십거리로 소비되는 것 같다. 경찰 수사의 문제점을 가리는 등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지난달 17일 경찰청 인권위원회 안건으로 '신상공개 지침 관련 자문'을 올렸다. 경찰청 인권위원장인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신상은 한번 공개가 되면 회복될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한다"며 "인권위원회로선 신상공개에 관해 엄격한 요건을 마련하고 절차에 따라서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경찰청에) 권고했다"고 밝혔다.
sohyu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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