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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도 낯선 혼인신고서의 비밀…'엄마 성 따르기' 문은 좁다

  • 사회 | 2023-01-22 00:00

자녀에게 엄마 성 물려주려는 부모들
혼인신고 때 놓치면 법원에 청구해야
"민법 개정해 자녀 성 선택 자유도 높여야"


민법 제781조는 '자녀는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라야 한다'고 규정한다. 다만 예외적으로 혼인신고시 엄마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엄마의 성을 쓸 수 있도록 했다. 사진은 혼인신고서. /김세정 기자
민법 제781조는 '자녀는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라야 한다'고 규정한다. 다만 예외적으로 혼인신고시 엄마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엄마의 성을 쓸 수 있도록 했다. 사진은 혼인신고서. /김세정 기자

[더팩트ㅣ김세정 기자·조소현 인턴기자] 강일찬(30) 씨 아이의 성(姓)은 법적으로 '박씨'다. 부부의 성을 모두 넣은 '박강'을 쓰고 있지만, 호적에는 아내의 성인 박씨로 올라가 있다.

어린 시절 일찬 씨의 아내는 깔끔한 생선구이는 남자들 밥상에, 부서진 생선구이는 여자들 밥상에 오르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린 남동생은 장손이라는 이유로, 해맑은 표정으로 할아버지의 영정을 안고 걸어갔다. '박씨 가족'이라고 생각했지만 중요한 순간 항상 남동생이 첫 번째가 됐다. 가족을 이루게 된다면 아이에게 자신의 성도 물려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찬 씨는 반려자의 뜻을 존중했다. 어감상 '강박'보다는 '박강'이 나은 것 같았다. 부부는 아내의 성을 사용하기로 했다. 일찬 씨는 "보통 남자 쪽에서는 당연히 자기의 성을 물려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내의 말을 들어보니까 맞는 말 같았다. 우리 아이인데 성이 박씨가 되든, 강씨가 되든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엄마 성, 아빠 성 모두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 출생신고서 아닌 혼인신고서에 '자녀의 성'

호주제가 폐지된 지 15년이 지났다. 한국 사회에서도 일찬 씨 부부처럼 아이에게 엄마성도 물려주고 싶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민법 제781조는 '자녀는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라야 한다'고 규정한다. 아버지의 성을 우선적으로 따르는 '부성우선주의' 원칙이다. 다만 예외적으로 혼인신고시 엄마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하면 엄마의 성을 쓸 수 있도록 했다. 아이에게 엄마의 성을 물려주기 위해선 혼인신고 전 미리 자녀계획을 세우고 부부가 협의해야 한다.

일찬 씨 부부는 아이를 가진 상태에서 혼인신고를 한 사례다. 일찬 씨는 "아이가 먼저 생기고 나서 혼인신고를 했기 때문에 이름에 관해서 결정한 이후였다. 혼인신고서 양식 가운데에 표시하는 게 있었다. 흔치 않은 케이스라서 공무원이 행정 절차를 잘 모른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여성인권위원회와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는 권리 모임 등 참석자들이 지난 2021년 11월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 앞에서 '엄마의 성·본 쓰기' 성본변경청구 허가 결정 환영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여성인권위원회와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는 권리 모임 등 참석자들이 지난 2021년 11월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 앞에서 '엄마의 성·본 쓰기' 성본변경청구 허가 결정 환영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반면 결혼 후 4년 뒤 아이를 가진 윤다미(33) 씨의 사정은 달랐다. 아이에게 남편의 성만 물려줄 수 있다는 걸 임신 후에야 알게 됐다. 혼인신고 당시 신고서에 '성·본의 협의'라고 한 줄 쓰인 확인란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나쳤기 때문이다. 출생신고 때 변경이 가능한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엄마 성, 아빠 성 두 개의 성을 쓰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결국 아이의 성은 남편 성 '권'을 따랐다.

다미 씨는 엄마 성이 됐든, 아빠 성이 됐든, 양성을 따르든, 성 선택의 자유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꼭 아빠 성을 따라야 하는지 당위성을 느낄 수 없어서다. 그는 "혼인신고가 아닌 출생신고로 아이의 성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며 "'부부가 결혼하면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구시대적인 생각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상태에서 혼인신고를 하러 오시는 분들에게 충분히 설명이라도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미 씨의 말처럼 구청 민원실에 구비된 혼인신고서 4번 항목에는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라고 적혀 있었다. 다만 자세한 설명은 어디에도 없었으며 비치된 혼인신고서 예시에는 '아니오' 항목에 표기돼 있었다.

◆뒤늦게 엄마성 따르려면 이혼하거나 법원가거나

혼인한 부부가 아이의 성을 바꾸기 위해선 실질적으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이혼 후 다시 혼인신고를 하거나 아이 출생 뒤 법원에 성·본 변경 청구를 하는 것이다.

민법 제781조 6항은 '자녀의 복리를 위해 자녀의 성·본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혼 또는 재혼 가정 등에서 청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엄마의 성으로 바꾸려면 자녀의 복리를 위해서라는 이유가 증명돼야 한다.

구지혜 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는 "엄마 성을 따르려고 할 때 법적 절차 때문에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국가가 정한 시기에만 해야 한다는 건 소모적"이라고 지적했다.

구청 민원실에 구비된 혼인신고서 4번 항목에는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라고 적혀 있었다. 다만 자세한 설명은 어디에도 없었으며 비치된 혼인신고서 예시에는 '아니오' 항목에 표기돼 있었다. /김세정 기자
구청 민원실에 구비된 혼인신고서 4번 항목에는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라고 적혀 있었다. 다만 자세한 설명은 어디에도 없었으며 비치된 혼인신고서 예시에는 '아니오' 항목에 표기돼 있었다. /김세정 기자

'성평등한 가정을 꾸려나갈 권리'를 근거로 2021년 한 부부의 성본변경청구를 대리해 허가 결정을 이끌어냈던 신윤경 변호사는 입법 필요성을 강조한다.

부모는 혼인신고 이후에야 자녀 성 문제를 자각할 수도 있다. 딩크족이었는데 후에 아이를 낳게 되거나 막상 임신과 출산을 겪은 뒤 마음이 변할 수도 있다. 문제는 마음이 변했을 때 뒷받침할 제도가 마땅치 않은 현실이다. 신 변호사는 "성본변경 신청을 다른 지역에서 했을 때는 다 기각이 됐지만 서울가정법원에서는 인용이 됐다. 법적 안정성을 담보 못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입법이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민법 규정을 모르는 국민도 대부분이다. 서혜진 변호사는 "혼인신고 때 출산 후 미래를 생각하고 체크하라는 것인데 '왜 그렇지' 의문을 갖는 분들이 있지 않을까"라며 "원칙과 예외를 바꾸거나 아니면 예외 규정을 어떻게 현실적으로 수정할 것인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sejungki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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