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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난리에 코로나까지…갈 곳 없는 반지하 사람들

  • 사회 | 2022-08-23 05:00

거주자 대부분 취약계층…집 곳곳에서 곰팡이·악취

80대 노부부가 사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침수 피해로 아직까지 바닥에 물기가 남아 있다./김이현 기자
80대 노부부가 사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침수 피해로 아직까지 바닥에 물기가 남아 있다./김이현 기자

[더팩트ㅣ김이현 기자] "이제 여기서 살 수는 없는데, 마땅히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80대 노부부의 요양보호사 김모(56) 씨는 침수된 반지하를 둘러보며 한숨을 쉬었다. 기록적 폭우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일가족 3명에게 참변이 벌어질 당시 인근 노부부의 집에도 물이 차올랐다. 다행히 불상사는 없었지만, 웬만한 가재도구와 생활용품 등은 폐기해야 하는 처지다.

김 씨는 "두 분 다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 같은 이동보조기기로만 움직이는데, 반지하에 물이 콸콸 넘친다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며 "지금도 벽지를 누르면 물이 새어 나온다"고 말했다. 22일 현재 노부부는 집주인의 배려로 일단 공실인 해당 건물 1층에 거주 중이다.

반지하엔 총 4개 세대가 있고, 모두 침수 피해를 당했다. 노부부의 옆집엔 90대 노인이 홀로 살고 있었다. 이 노인의 아들은 "집이 침수되면서 어머니는 몸만 빠져나왔고, 딸의 집에서 잠깐 묵고 있다"며 "집 곳곳에 곰팡이가 피고 악취가 나서 다시 들어갈 순 없다"고 했다.

다른 건물 반지하도 상황은 비슷했다. 총 2세대 구성된 반지하는 모두 70~80세 노인이 거주하면서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았다. 요양보호사 이모(58) 씨는 "지금도 장판에 흙탕물이 안 빠졌다"며 "이 동네는 대부분 주거 취약계층이 산다. 이사를 가더라도 옥탑은 못 올라가니까 또 반지하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록적 폭우로 침수 피해가 심했던 신림동 인근에 각종 생활용품과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다./김이현 기자
기록적 폭우로 침수 피해가 심했던 신림동 인근에 각종 생활용품과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다./김이현 기자

침수 피해가 크지만 당장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은 임시대피소에서 머무르고 있다. 서울시 내 각 관할구청은 폭우 피해 사후 조치를 담당하고 있다. 관악구는 동 주민센터 강의실, 강당 등에 임시 이재민 대피소를 구성해 운영 중이다.

신사동주민센터에서 만난 최모(63) 씨는 "한순간에 삶의 터전이 다 떠내려갔다"며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방을 다시 잡았다. 반지하에서 표현도 못 할 경험을 했기 때문에 다시 반지하는 못 가고, 봉천동 인근 먼 곳에다가 집을 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씨는 불만을 터뜨렸다. 신사동주민센터는 오는 30일까지만 이재민 대피소를 운영한다고 공지했는데, 최 씨의 월세방 입주일은 9월5일이다. 구청은 피해 이주민에게 민간숙박시설 비용(최대 7만 원)을 후불제로 지원한다. 숙박업소가 대란인 상황인데 "일단 나가라"고 떠민다는 게 최 씨의 주장이다.

최 씨는 "이재민 대피소에 온 대부분이 힘든 상황에서 떠밀려온 서민들"이라며 "현재 침수된 반지하 집주인과도 협의할 부분이 남아있다. 월세나 계약기간 등 부분도 머리가 아픈데, 아직 나오지도 않은 정부 보상금을 또 집주인과 나누라고 하니 한숨부터 나온다"고 강조했다.

행정안전부는 이번 침수로 피해를 본 가구에 200만 원씩 우선 지급하기로 했다. 집을 수리해야 하는 집주인 입장에선 세입자의 지원금을 '반반'으로 나눠야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온다. 서로 손해를 본 상황에서 지원금을 나눌 명확한 규정이 없지만, 주민센터에서는 "잘 합의하라"는 식이다.

사당동 극동아파트는 지난 8일 폭우로 약 20m 높이의 옹벽이 붕괴되면서 주민 500여 명이 대피한 바 있다. 사진은 사당종합체육관 이재민 대피소./김이현 기자
사당동 극동아파트는 지난 8일 폭우로 약 20m 높이의 옹벽이 붕괴되면서 주민 500여 명이 대피한 바 있다. 사진은 사당종합체육관 이재민 대피소./김이현 기자

코로나 또한 불안감을 키운다. 이날 기준 이재민 대피소에서 코로나19 확진자는 1명 추가돼 누적 37명이 됐다. 자치구별로 구로구 3명, 영등포구 2명, 동작구 17명, 관악구 7명, 강남구 3명, 송파구 5명 등이다. 사당1동주민센터의 경우 지난 12일 확진자가 나와 대피소를 폐쇄했다.

사당종합체육관 이재민 대피소에 2주째 지내고 있는 강모(38) 씨는 "다음 달 초 다시 아파트로 돌아갈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도 "대피소에 지내는 게 불편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무더기로 코로나에 확진될까 불안하다"고 말했다. 사당동 극동아파트는 지난 8일 폭우로 약 20m 높이의 옹벽이 붕괴하면서 주민 500여 명이 대피한 바 있다.

남성사계시장 인근 반지하에 거주하다 침수 피해를 당한 이모(68) 씨는 "집에 물이 허리 넘어까지 찼는데 겨우 살아났다. 오갈 곳이 없어졌는데, 구청에서 여러가지를 지원해주고 있다"며 "다만 내가 기저질환이 있기 때문에 (코로나를) 극도로 조심하고 있다"고 했다.

spe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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