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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죽어가는 장애인…"무관심보다 비난이 낫다"

  • 사회 | 2022-08-07 00:00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숭동 전장연 사무실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이새롬 기자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숭동 전장연 사무실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이새롬 기자

[더팩트ㅣ김이현 기자] 2001년 1월 서울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 70대 노부부가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해 한 명이 사망했다. 설을 맞아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이듬해엔 발산역, 3년 뒤엔 이수역, 신길역과 양천향교역까지. 비슷한 사고가 반복될 때마다 장애인들은 사고 현장에서 추모제를 열었고, 목소리를 높였다.

21년이 지난 지금, 시위는 더욱 과격해졌다. 쇠사슬을 몸에 감고, 철장 안에 몸을 욱여넣고 시민들의 지하철 출근길을 방해한다. 장애인 권리와 관련된 법안들이 주검 위에 제정됐지만, 이행 속도가 더딘 탓이다. 시위에 앞장선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어느덧 ‘전과 27범’이 됐다.

덕분에 ‘전장연’이란 이름은 낯설지 않다. 지난해 12월 6일부터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벌이고 있는 박 대표는 5일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시위를) 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오죽하면 "욕을 너무 먹어서 불로장생할 정도"라며 우스갯소리도 했다.

시위 현장에선 온갖 욕설이 날아드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일반인’에게 왜 피해를 주느냐", "그냥 죽으라", "왜 지하철에서 난리냐. 국회나 청와대로 가라" 등. 전장연 활동가들을 향해 침을 뱉거나 사무실 앞까지 찾아와 협박하기도 한다.

하지만 박 대표는 ‘차라리 비난이 낫다’고 말한다. "장애인에게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비장애인들은 무관심하다"며 "인식하지 못하거나 그저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보는 것보단 관심을 주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는 "(무관심으로) 이렇게 죽으나 (욕설로)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부연했다.

박 대표는
박 대표는 "구조적 차별이 가장 심각한 폭력"이라며 "시민권이 보장되지 않는 차원에서 본다면 우리는 너무 억울하다. 그것에 저항하기 위한 상징으로 오히려 가장 평화적인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새롬 기자

시위가 다소 폭력적으로 비칠 수 있다는 질문에는 단호했다. 박 대표는 "구조적 차별이 가장 심각한 폭력"이라며 "시민권이 보장되지 않는 차원에서 본다면 우리는 너무 억울하다. 그것에 저항하기 위한 상징으로 오히려 가장 평화적인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가 말한 구조적 차별의 출발점은 ‘이동권’이다. 노동권, 교육권까지 갈 것도 없이 우선 이동권이 보장돼야 장애인들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대중교통을 타고 출근하는 ‘같은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리기 위한 첫 단추인 셈이다.

변화는 21년의 세월만큼 더뎠다. 서울시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평균 저상버스 보급률은 28%다. 계획상으론 42%였다. 장애인콜택시를 부를 경우 대기 시간만 50분가량이다. 지하철역 내 엘리베이터가 94% 가까이 설치됐지만, 서울 지역 환승역 절반은 역사 내 환승이 불가능해 나갔다 다시 들어와야 한다. 이마저도 투쟁의 결실이다.

<더팩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 공동대표. /이새롬 기자
<더팩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 공동대표. /이새롬 기자

문제는 ‘돈’이라고 한다. 박 대표는 "저상버스 등 장애인 편의시설은 돈이 많이 드는데, 이 돈을 들여야 할 사회적 투자 가치가 있는지를 따져봤을 것"이라며 "우리나라가 장애인들에게 지원하는 예산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중 꼴찌"라고 지적했다.

실제 OECD 회원국의 평균 국내총생산(GDP) 대비 장애인 복지예산 비율은 1.9%다. 우리나라는 0.6%로 1/3 수준이다. 장애인에게 지급하는 장애 및 질병 현금 급여의 공적지출의 경우 1/5에 불과하다. 전장연이 요구하는 장애인 권리예산 증액분(1조3000억 원)을 온전히 반영해도 장애인 복지예산 비율은 GDP의 1%가 채 안 된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김광호 서울경찰청의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이새롬 기자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김광호 서울경찰청의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이새롬 기자

그렇기에 박 대표는 ‘예산’에 매달린다. 그는 "지금 장애인의 환경을 숫자로 나타내면 –70 정도다. 더도 아니고 0의 수준으로만 맞춰달라. 이 요구를 추경호 기재부 장관한테 했다"며 "이런저런 부처, 단체의 요구를 다 들어주다가 나라 망한다는 게 추 장관의 대답"이라고 했다.

현재 서울 경찰서 10곳 중 3곳은 승강기가 없다. 이 역시 돈 문제일 확률이 높다. 공공기관은 편의시설 설치 등 교통약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하지만, ‘과도한 비용’이 들 경우는 예외로 한다.

이에 박 대표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게 모의재판을 제안했다. 관리 책임이 있는 김 청장의 편의증진법을 위반을 놓고 법률적 논쟁을 하자는 것이다. 그는 "단지 불법이 아니라는 말만 하는 건 무책임하다"며 "예산 비용이 왜 과도한지를 증명하라"고 촉구했다.

박 대표는 "시민의 권리를 놓고 돈을 달라며 예산 얘기를 하는 게 달갑지 않지만, 효용가치가 없으면 버려지는 게 인간적인 사회는 아니지 않나"라며 "향후 대다수 사람도 차별된 구조의 피해자 위치가 될 수 있다. 중요한 메시지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spe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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