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수도권 대학정원 규제완화 추진…총장 시위까지 나서
[더팩트ㅣ안정호 기자] 정부의 반도체 인력 양성 주문에 교육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지난달 "전 부처가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을 위해 특단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에 교육부는 수도권 대학 학부 정원을 제한하는 수도권정비계획법 규제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 지방과 수도권 대학 간 격차가 계속되는 가운데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 완화는 비수도권 대학에 ‘직격탄’인 셈이다.
이에 비수도권 7개 권역의 대학 총장들이 나섰다. 127개 대학 총장으로 구성된 총장협의회는 수도권 반도체 관련 학과 증원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수도권 대학 정원의 총량 규제는 지역인재 유출을 막을 ‘최후의 보루’라는 것이다.
총장협의회는 반도체 인력을 수도권을 제외한 9개 광역지자체에 속한 국·공·사립대 10여개를 선정해 대학별로 평균 60여 명씩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부는 최근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을 예고하며 대학의 생존에 힘을 보태겠다는 입장이지만 비수도권 대학들은 교육재정 확대와 수도권 정원 규제 완화는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긋고 있다. 결국 수도권의 반도체 관련 학과 증원에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한 것이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8일 총장협의회와 간담회를 갖고 총장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날 간담회에서 박 부총리는 수도권 정원 규제 완화 계획 철회 여부를 묻는 총장들의 질의에 확답하지 않았다.
이날 간담회 전 1인 피케팅에 나선 박맹수 원광대 총장은 "고교와 대학 졸업 수준의 인력은 지방대학도 얼마든지 양성 가능하다는 것이 반도체 전문가 공통 의견"이라며 "(교육부가) 심각한 지방대학의 현실을 안이하게 인식했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정부의 반도체학과 증원 드라이브에 지방대 문제가 다시금 주목을 받게 됐지만 지방대 기피 현상은 정부에겐 오랜 기간 숙제였다. 지난 1989년에는 지방대 기피 현상 해소를 위해 정부 투자기관에 지방대 인재 50% 채용 의무화를 시행하기도 했고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지방대학 혁신역량 강화사업인 ‘누리사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정부발 지방대 육성 정책들은 계속됐지만 지방대의 ‘부활’은 여전히 난제로 남아있다.
입시업체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전국 16개 대학 중 비수도권 반도체 관련 학과를 다니다 그만 둔 학생은 수도권 학생보다 2.5배가량 높았다. 전국의 반도체 관련 16개 대학 중 비수도권 대학의 중도탈락률은 7.63%, 수도권 대학의 중도탈락률은 3.71%로 나타났다. 또한 반도체학과 충원률은 비수도권 78.2%에 그쳤다.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 대학의 충원률은 98.0%였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반도체학과가 유망하더라도 인지도 높은 대학들이 나서면 현격하게 차이가 날 것"이라면서 "각 지역에 분포된 반도체 산업과 인근 지역 대학의 취업 연계를 통해 사람들에게 왜 지역에 반도체학과가 생기고 인접 기업과 얼마나 연계돼 있는지 명확히 이해시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반도체 분야 부족인원은 약 1600명으로 고졸인력과 전문대졸 인력의 비중은 70% 정도다. 거점 국립대 등 지역 대학에서 매년 배출되는 반도체 관련학과 졸업생을 포함하면 전국 대학에서 양성 가능한 반도체 관련 학생 정원은 연간 약 1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전문가들은 지역 국립대에 먼저 반도체 관련 학과를 설립해 지역 산업과 연계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국립대학법 제정을 통해 교육부 소속인 국립대의 자율성과 재정 지원 근거를 확보하면 수도권 대학과 같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한다.
김정호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지난달 열린 반도체 인력 양성 방안 정책토론회에서 "수도권 정원 조정을 해서 (반도체 인력 양성을) 한다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면서 "국립대에 관련 학과를 설립하고 지역 산업과 연계해서 인력을 배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방 거점 대학에 반도체 관련 학과를 만들고 그 다음으로 수도권 규제를 풀어 인력난을 해소하는 것이 단계"라고 짚었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도 "정부가 반도체학과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면 지역의 국·공립대학을 위주로 접근하는 게 맞다"면서 "국립대학법을 만들어 국립대에 대한 재정 지원을 명시화해 법적인 테두리를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vividocu@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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