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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률 0.9%' 조국 재판부 기피 신청한 검찰의 속내는

  • 사회 | 2022-01-20 05:00

"기싸움·정치적 제스처" 중론…'사법농단' 임종헌은 두 번이나 신청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재판에서 검찰이 재판부 기피신청을 냈다. 재판부 기피신청의 인용률은 1%를 넘지 않지만, 검찰로서는 인용 여부와 상관없이 핵심 증거를 쓸 수 없게 되자 '정치적 제스처'를 취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달 24일 검찰이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강사 휴게실 PC 등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오면서다. 조 전 장관 부부의 1심 재판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1부(마성영·김상연·장용범 부장판사)는 피의자가 소유·관리하는 정보 저장매체를 제3자가 영장에 의하지 않고 임의 제출한 경우 피의자에게 참여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정 전 교수의 PC 등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이에 검찰은 "재판부가 대법 판결의 취지를 오해하고 있다"며 즉각 반발했다. 대법은 피의자의 소유·관리한 저장매체에 대한 참여권 보장을 판시했는데 강사 휴게실에 방치된 PC는 정 전 교수가 소유·관리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다. 검찰은 14일 이의신청에 이어 '증인에게만 PC 관련 증거를 제시하게 해달라'는 요청까지 반려되자, 재판부 기피 신청을 냈고 재판은 즉각 중단됐다.

법조계에서는 대법 판결에 입각한 재판부의 증거능력 판단을 합당한 기피 사유로 볼 수 없다는 분석이 중론이다. 핵심 증거를 쓸 수 없게 되자 재판부를 압박하기 위해 정치적 제스처를 취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초동의 한 중견 변호사는 "(조 전 장관 부부 재판부의 판단은) 대법 판결에 입각해 위법수집증거(위수증) 여지가 있으니 증거 채택을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불공정한 재판 진행이라 볼 수 없고 기피 사유가 될 수 없다"라며 "세간의 주목을 받는 재판이라 검찰 권력과 법원 권력의 대립으로 비치는 측면도 있으니 재판부를 상대로 일종의 기싸움을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중견 변호사 역시 "(대법 판례와) 사실관계만 조금 다를 뿐 참여권 보장 부족을 이유로 증거신청을 반려한 판단을 불공정한 재판 진행이라 볼 수 없다"라며 "법률적 이유에 따른 신청보다 정치적 제스처"라고 봤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해 5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덕인 기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해 5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덕인 기자

기피 신청에서는 같은 재판장을 상대로 두 번이나 기피 신청을 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사례를 빼놓을 수 없다. 임 전 차장은 2019년부터 자신의 직권남용 혐의 사건을 심리 중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 재판장 윤종섭 부장판사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윤 부장판사가 2017년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태가 터졌을 무렵, 김명수 대법원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사태 연루자를 단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는 것이 임 전 차장 측 주장이다. 첫 번째 기피 신청은 대법에서 최종 기각됐다. 두 번째 기피 신청 역시 재판부에서 소송 지연 목적이 명백하다며 기각했지만, 서울고법에서 이 결정을 파기하면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에서 기피 사유를 살피고 있다.

일선 변호사들은 임 전 차장 측 기피신청 사유에 대해 '피고인이라면 기피할 수밖에 없는 사유'라고 입을 모은다. 인용 여부는 별개의 얘기다. 익명을 요청한 A 변호사는 "임 전 차장 사건 배당을 받으리라 예상도 하기 전, 사법농단이라는 사법부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에 대해 구성원으로서 의견 표명을 한 것을 기피 사유로 봐야 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오로지 법리에 입각해 판단하라는 '당부'로 읽힌다는 의견도 있다. 형사재판 경험이 많은 B 변호사는 "재판 진행에 대한 잡음이 나올수록 재판부로서도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법리만 꼼꼼히 살피게 된다"며 "임 전 차장을 비롯한 사법농단 연루자를 직권남용죄로 형사 처벌하기가 까다로워서 법리만 따질수록 유리해진다"라고 내다봤다.

통계상 재판부 기피 신청은 증가 추세지만 인용률은 '바늘구멍'이다. 사진은 서울중앙지법. /남용희 기자
통계상 재판부 기피 신청은 증가 추세지만 인용률은 '바늘구멍'이다. 사진은 서울중앙지법. /남용희 기자

통계상 기피 신청은 매년 증가 추세다. 최근 3년간 접수 건수를 보면 △2019년 225건 △2020년 287건 △2021년 247건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재판부의 권위를 철옹성으로 여겼지만 최근 신세대 검사·변호사들이 많아지면서 적극적으로 권리 주장을 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1%를 넘기기 힘든 인용률에 일반 시민이 기피 신청이라는 강수를 두기는 쉽지 않다. 2019년에는 225건 가운데 2건이 인용됐다. 최근 3년간 접수 건수가 가장 많았던 2020년에는 한 건도 인용되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247건 가운데 5건이 인용돼 2%를 기록했다. 종합하면 기피 신청이 받아들여질 확률은 0.9%다. 익명을 요청한 변호사는 "현행법상 기피 신청건을 같은 법원의 재판부에서 심리하는데, 한솥밥을 먹는 동료의 공정성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판단하겠느냐. 같은 법원에서 불공정한 재판을 했다고 자인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신청해봤자 높은 확률로 기각될 텐데 괜히 괘씸죄만 적용되지 않을까 걱정돼 기피하고 싶어도 참는 편이다. (지난해) 5건 인용도 많다고 느껴질 정도"라고 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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