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미지급 부모 신상공개' 주도한 구본창 대표
[더팩트ㅣ정용석 기자] "배드파더스 웹사이트를 시작할 때부터 양육비를 지급하는 법을 만들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이제 사라져야죠."
3년여 만에 사이트 운영을 중단하는 구본창(58) 배드파더스 대표는 지난 10월 7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웹사이트 ‘배드파더스’는 오는 20일 문을 닫는다. 정부가 양육비 미지급자 제재를 시작하면서 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구 대표는 아직 마음을 놓지 못 했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 공론화한 배드파더스
구 대표는 배드파더스 활동 전부터 양육비 문제 ‘해결사’를 자임했다. 2015년 시작한 단체 WLK(We Love Kopino)의 설립자가 구 대표다. 이 단체는 코피노(한국인과 필리핀인 사이에서 태어난 2세)의 양육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6년간 매년 100건가량의 양육비 청구 소송을 진행했다.
구 대표가 WLK 활동을 하며 전해들은 "한국에서도 양육비를 못 받는 부모가 많다"는 한마디가 배드파더스 탄생 계기가 됐다. 구 대표는 "코피노들의 양육비 문제도 결국 한국의 법이 바뀌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해 ‘총대’를 맸다"고 했다.
그렇게 배드파더스는 지난 2018년 7월 탄생했다. 2018년 말 기준 양육비 이행이 이뤄진 비율은 32.3%에 그쳤다.
지난 3년간 배드파더스는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얼굴, 이름, 주소를 사이트에서 게시했다.
효과가 컸다. 배드파더스가 신상공개를 한 양육비 채무자는 2000여명. 양육비 문제가 해결된 사례는 900건이 넘는다. 신상공개 사전통보만 해도 부모들은 양육비를 지급했다.
이후 양육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간 양육비 갈등을 단순한 개인 간 채무 관계로 여기던 이들도 '아동학대'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구 대표는 "사람들은 부모가 형편이 못 돼 양육비를 주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며 "하지만 월 소득 8000만 원이 넘는 대형 로펌 변호사가 양육비 500만 원을 지급하지 않았던 사례도 있다. 없어서 안 주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전화나 문자 테러는 일상이었고 살해 협박도 종종 받아요."
구 대표는 활동 소회를 묻는 질문에 고충부터 털어놨다. 배더파더스에 사진이 걸린 양육비 미지급자들의 협박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소송전과 경찰조사, 법원 출석 과정도 고통이다. 고소만 24번, 경찰조사에는 그 이상 불려다녀야 했다. 혼자서는 버거운 싸움이다.
구 대표는 다시 법의 심판을 앞두고 있다. 배드파더스에 신상이 공개된 부모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구 대표는 "1심에서는 국민참여재판으로 공익성을 인정받아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검찰이 항소를 했다"며 "오는 29일부터 2심 재판을 받게 된다. 저처럼 평범한 사람 입장에서는 굉장히 괴로운 일"이라고 털어놨다.
다만 헛된 일은 아니었다. 배드파더스가 해오던 일을 이제 정부가 하게 됐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에 대한 운전면허 정지, 출국금지, 명단공개 등의 조치가 지난 7월13일부터 시행됐다.
이로써 배드파더스는 명예로운 퇴직을 앞뒀다. 법안 시행은 7월부터지만, 실제 명단이 공개되는 시기는 11월이라 10월20일까지 사이트는 유지된다.
하지만 새 제도가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양육비 해결을 위한 법이 만들어져 다행이다. 그러나 불완전하다." 구 대표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양육비이행법)’ 시행령 개정안을 두고 이같이 평가했다.
양육비이행법 시행으로 법원의 감치명령(채무자를 경찰서 유치장·교도소·구치소 등에 가두는 것)을 받고도 양육비를 주지 않는 채무자에게는 양육비이행심의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운전면허 정지, 출국금지, 명단공개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
구 대표는 명단공개만으로는 효과가 없다고 지적한다. 양육비 채무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정부는 사진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공개되는 정보는 이름, 나이, 직업, 주소다. 배드파더스는 사진까지 밝힌다.
운전면허 정지 조치에도 예외를 뒀다. 생계 유지 목적으로 차량을 운전하는 양육비 미지급자는 신상공개 외에는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는다.
◆허술한 시행령 채울 '정부 대지급 제도' 도입 고려해야
출국금지 조건도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정부는 출국금지 대상자로 양육비 채무가 50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상이면서 최근 1년 동안 국외 출입횟수가 3차례 이상 혹은 국외 체류일수가 6개월 이상인 경우로 한정했다. 월 50만 원의 양육비가 책정됐다고 가정하면 5000만 원 이상 채무를 지려면 8년 이상 지급이 밀려야 한다.
'감치판결 이후에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을 경우'라는 조건이 붙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정부 대지급 제도 도입도 대안이다.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양해연) 대표는 "양육비 피해자들은 감치소송을 통해 감치판결을 반드시 받아야 하지만 양육비 미지급자들이 위장전입의 꼼수로 소송절차를 피하고 있다"고 "소송 준비 시간과 비용 소모가 큰 양육자에 비해, 미지급자의 위장주민등록은 너무나 쉽고 간단하다"고 지적했다.
박복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젠더폭력·안전연구센터장은 "양육비는 양육자가 필요할 때 지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정부가 양육비를 먼저 지급한 뒤 채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대지급 제도 도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럽 상당수 국가들은 대지급 제도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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