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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초점] "한국 재판 피고 못 선다"던 일본…자국 법은 달랐다

  • 사회 | 2021-01-13 05:00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에 불응한 근거였던 국가면제 원칙의 예외 사유를 국내법으로 규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남윤호 기자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에 불응한 근거였던 국가면제 원칙의 예외 사유를 국내법으로 규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남윤호 기자

국가면제 원칙 예외사유 인정"고정적 가치 아냐"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국가는 다른 국가 재판에 피고로 서지 않는다' '국가면제 원칙'을 이유로 위안부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 재판에 불응했던 일본이 정작 자국 국내법에서는 국가면제 원칙의 예외사유를 인정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 배춘희 할머니 등 모두 12명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1심 판결문에 따르면, 법원은 일본을 상대로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로 국가면제 원칙의 예외를 인정한 해외 입법 동향을 들었다.

국가면제 이론을 고수한 일본 역시 국내법으로 국가면제 원칙이 배제되는 예외 사유를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외국 등에 대한 우리나라의 민사재판권에 관한 법률'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미국과 영국, 싱가포르,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 캐나다, 아르헨티나 등이 국가면제의 예외 사유를 규정한 법률을 제정한 상태다.

이 사건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정곤 부장판사)는 "국가면제 이론은 국제 질서 변동에 따라 계속 수정되고 있으며 여러 국가의 국내법에서 국가면제가 인정되지 않는 예외사유를 정하고 있는 점에 비춰 보면, 국가면제 이론은 항구적이고 고정적 가치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런 변화가 일어난 이유로 '국제법 체계가 국가보다는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옮겨진 현상을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즉 일본을 비롯한 해외 각국에서 국가면제 이론이 어느 때나 적용되는 '불변의 진리'는 아니라는 취지다.

또 '위안부' 피해자들이 본 피해는 국가면제 원칙상 '무력분쟁(전쟁) 수행 중'에 발생한 손해가 아니라고 판시했다. 국가면제 이론은 무력분쟁 수행 중 예측할 수 없는 손해 발생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이 사안과 관련한 재판권은 면제돼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재판부는 "태평양 전쟁의 전선은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으로 당시 한반도는 전쟁 장소가 아니었다"며 "일본 제국이 '위안부' 동원을 위해 원고 등을 기망, 납치, 유괴한 행위는 무력분쟁 수행 과정 중에 발생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국 법원은 국가면제 원칙을 적용해 또 다른 전범 국가 독일의 손을 들어준 8년전 국제사법재판소 판결을 정면 반박했다. /이새롬 기자
한국 법원은 국가면제 원칙을 적용해 또 다른 전범 국가 독일의 손을 들어준 8년전 국제사법재판소 판결을 정면 반박했다. /이새롬 기자

피고 패소 판결이 선고된 뒤 일본은 국가면제 원칙 위반을 이유로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2012년 ICJ는 국가면제 이론을 이유로 또 다른 세계대전 전범국인 독일의 손을 들어줬다.

독일 군수공장에서 강제노역을 한 이탈리아인이 독일을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 사건에서 이탈리아 대법원은 "국제 범죄에 해당하는 국가 행위에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이후 이탈리아 법원에서 같은 취지의 판결이 거듭 나오자 독일은 국제법상 의무 위반을 이유로 이탈리아를 ICJ에 제소했다. ICJ는 "독일에 대한 재판권 면제를 부인한 이탈리아 법원의 결정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ICJ 판결 이후에도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근간으로 하는 이탈리아 헌법 질서의 기본 가치를 침해한 것으로 국내법 질서에 수용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리며 맞섰다.

한국 법원 역시 '인간의 존엄성'을 최우선으로 두고 8년전 ICJ의 판결을 정면 반박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행위는 일본에 의한 계획적,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이자, 일본에 의해 불법 점령 중이던 한반도 내 우리 국민에 대해 자행된 행위"라며 "비록 이 사건 행위가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고 할지라도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고 예외적으로 한국 법원에 피고에 대한 재판권이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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