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권'에 울고 웃은 재판…'공범' 최서원은 징역18년 확정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마지막 대법원 판단을 받는다. 지난 2016년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진 지 꼭 4년 만이다.
4년간 박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최초로 파면된 전직 대통령에서 피의자로, 피고인으로 살아왔다. 파기환송심 판결에 불복한 검찰의 재상고 결과에 따라 형이 확정되면 '기결수'가 된다.
같은 사건으로 이미 두 번의 대법원 판단을 받은 최서원(개명 전 이름 최순실) 씨는 이미 형이 확정됐다.
사상 초유 대통령 탄핵을 부른 국정농단 사태의 사법적 판단이 종착역을 향해 달려간다. 태블릿PC 특종부터 검찰의 재상고까지 45개월 1362일의 기록을 되짚어봤다.
◆탄핵에서 구속 기소까지 '운명의 한 달'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 사유였던 국정농단 의혹이 모습을 드러낸 건 2016년 7월이다. 삼성과 현대 등 국내 굴지 기업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사실상 강제로 돈을 냈고, 이 재단은 약 2개월 만에 500억 원의 자금을 모았다고 TV조선이 첫 보도했다. 이러한 '강제모금'의 내막에는 안종범 당시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 수석이 있었다.
'비선 실세' 최서원 씨의 이름이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이후 스포츠재단 설립과 인사에 최 씨가 깊이 관여했다는 의혹 제기가 잇따르며 청와대와 최 씨의 관계에 이목이 쏠렸다. 같은 해 10월 최 씨의 태블릿 PC를 입수한 JTBC가 대통령 연설문과 각종 정책 등에 최 씨가 개입했다는 사실을 보도하며 불이 붙었다.
같은 달 검찰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해 수사에 착수했고 해외에 있던 최 씨는 귀국해 검찰 수사를 받았다. 2016년 11월 최 씨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됐다.
사태의 공범인 최 씨가 구속기소 되며 박 전 대통령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2016년 말 국회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을 가결했고, 이듬해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헌정사상 최초로 파면 결정을 내렸다. 같은 달 31일 박 전 대통령 역시 구속됐고 한 달 뒤 재판에 넘겨졌다. 최 씨와 박 전 대통령 모두 한 달 남짓한 기간 만에 '청와대 주인'에서 피고인이 됐다.
◆피고인이 된 대통령, 재판을 '보이콧'하다
2017년 5월부터 시작된 박 전 대통령의 재판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뉘어 진행됐다. 최 씨 등과의 국정농단 사건과 2013년 5월~2016년 9월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가정보원장 등에게 36억5000만 원 상당의 특별활동비를 받았다는 이른바 '국정원 특활비' 사건, 옛 새누리당 공천 개입 사건 등이다.
국정농단 사건 1심 재판부는 2018년 4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18개 혐의 중 16개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24년에 벌금 180억 원을 선고했다. 기소 354일 만에 첫 결론을 내린 재판부는 "국민에게 위임받은 대통령 권한을 남용해 국정에 혼란을 가져왔다"고 판시했다. 애초 검찰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결심 공판에서 요청한 형량은 징역 30년에 벌금 1185억 원이었다. 13개 혐의가 겹치는 최 씨도 앞서 징역 20년, 벌금 180억 원을 선고받았다.
같은 달 검찰의 불복으로 항소심 재판 절차를 밟게 됐다. 박 전 대통령 측 역시 항소장을 제출했으나, "동생(박근령 씨)이 본인 의사에 반한 것임을 명백히 밝힌다"는 자필 서면을 다시 법원에 보내 항소를 포기했다. 2018년 8월 2심 재판부는 원심이 무죄로 판단한 삼성의 영재센터 후원 방식으로 뇌물을 받은 혐의까지 유죄로 인정하며, 1년 늘어난 징역 25년에 벌금 200억 원을 선고했다. 청와대와 삼성 간의 청탁 행위가 없었다고 판단한 1심과 달리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 등을 염두에 두고 '묵시적 청탁'을 받았다는 판시가 골자였다.
법원은 국정원 특활비 사건으로도 27억 원의 국고손실 혐의를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하고 27억 원을 추징했다. 새누리당 공천 개입 사건에서도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로써 하급심 판결상 박 전 대통령이 선고받은 형량은 총 징역 32년, 벌금 200억 원, 추징금 27억 원 이었다. 최 씨 역시 항소심에서 징역 20년에 벌금 200억 원으로 원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아직 1심 재판 중이던 2017년 10월부터 재판에 나오지 않았다. 형사소송법상 구속된 피고인이 자신의 의사로 불출석하고, 교도관이 강제로 데려오기 힘든 사정이 있을 때만 피고인 없이 재판 진행이 가능하다.
◆'직권'에 웃은 파기환송심…마지막 대법원 판단은
박 전 대통령은 사실상 모든 재판을 보이콧했지만, 검찰의 상고로 국정농단·국정원 특활비 사건은 대법원까지 넘어갔다.
지난해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뇌물죄를 분리 선고해야 한다"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공직선거법상 뇌물 분리선고 원칙에 따라, 대통령 재임 중 저지른 뇌물 범죄 형량은 별도로 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같은 해 11월 대법원은 국정원 특활비 사건도 원심이 인정한 혐의액 27억보다 늘어난 34억5000만 원을 추가로 인정하고, 나머지 2억 원은 뇌물죄로 의율해야 한다는 취지로 파기환송 했다.
서울고법은 두 사건을 병합해 심리하기로 했다. 뇌물 혐의의 경우 각각 형량을 정해야 하고, 국고손실액 역시 인정 범위가 넓어졌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의 형량을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올해 초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대법원 판단을 그대로 수용하되, 직권남용죄에 관한 최근 대법원 판례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 직권남용 혐의 등을 '직권'으로 재심리하며 예상은 비켜 갔다.
앞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에서 박 전 대통령과 공범 관계인 김기춘 전 실장의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김 전 실장 사건에 대해 " 심리미진의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파기환송 했다. 직무 권한을 남용해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해야 한다는 성립 요건 중 '의무 없는 일'을 더 자세히 판단해야 하는데, 원심의 심리가 다소 부족했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무죄 취지는 아니다"라고 못 박았지만, 상관 지시대로 업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는 공무원들이 명단과 진행 상황 등을 보고한 행위를 '의무 없는 일'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을 표했다.
당시 공공기관 공무원 등을 증인으로 불러 신문하기도 했던 재판부는 지난 10일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를 포함한 일부 직권남용·강요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문예 기금 부당 지원과 특정 영화산업에 대한 지원 배제 혐의에 대해서는 "명단 송부 행위 등이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한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힘들다"며 사실상 대법원 판례와 같은 논리를 적용했다. 그 결과 국고손실 혐의액이 늘어났는데도 박 전 대통령의 형량은 10년이 감경됐다. 파기환송심 선고 형량은 징역 20년에 벌금 180억 원, 추징금 35억 원이다.
검찰은 이러한 판결에 정면으로 불복했다. 지난 16일 서울중앙지검은 "특정 문화예술인 지원을 배제했다는 '블랙리스트' 사안 중 직권남용 혐의를 무죄로 선고한 건 잘못됐다"며 대법원에 재상고했다. 새누리당 공천 개입 사건은 검찰과 박 전 대통령 모두 상고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기 때문에, 최후의 판단을 기다리게 됐다.
앞서 최 씨 역시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징역 18년에 벌금 200억 원을 선고받고 재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단을 유지하며 형량이 확정됐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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