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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현장] 양승태 대법원이 발끈한 '민주노총·민변의 숙원'

  • 사회 | 2019-10-26 06:00
25일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39회 공판에서는 '정운호 게이트' 사건이 다시 거론됐다. 사진은 2016년 9월6일 열린 전국 법원장 긴급회의에서 정운호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는 양 대법원장./뉴시스
25일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39회 공판에서는 '정운호 게이트' 사건이 다시 거론됐다. 사진은 2016년 9월6일 열린 전국 법원장 긴급회의에서 정운호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는 양 대법원장./뉴시스

'사법농단' 39회 공판…'헌재 비판 문건' 최누림 판사 증언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사법농단' 공판에 들어가다 보면 '최누림'(대구지법 포항지원 판사)이라는 이름을 종종 듣게된다. 한 번 들어도 기억에 남는 이름이어서인지 절로 외우게 된다. 그는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기소된 박병대 전 대법관(전 법원행정처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아래서 2015~2017년 사법정책심의관으로 일했다.

당시 그의 직속상관이었던 심준보 서울고법 부장판사(전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도 최근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그를 호명했다. 검찰이 2016년 최누림 판사에게 정운호 게이트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정리한 문건을 작성하라고 지시했냐고 캐묻자 적극 부인했다.

검찰이 되물었다. "그럼 격무에 시달리던 최 판사가 자발적으로 문건을 썼다는 겁니까." 심 부장판사는 "최 판사는 별종에 속하니 그를 아시면 이해하실 것"이라고 답했다. '별종'이라는 표현이 무슨 의미인지는 정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대단한 '워커홀릭'이라는 뉘앙스로 들렸다.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39회 공판에 증인석에 앉은 최 판사는 웬만한 건 기억이 나지않는다고 일관하는 대부분 증인과 달랐다. 최소한 모호하게 얼버무리지 않았다. 맞으면 맞다, 아니면 아니다 무 자르듯 했다.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은 2015년 11월 최 판사에게 '업무방해죄 관련 한정위헌 판단의 위험성'이라는 보고서를 쓰도록 지시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회사의 정리해고 방침에 항의해 특근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대법원에서 업무방해죄 벌금형이 확정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낸 헌법소원을 검토했다. 재판관 평의 과정에서 이 사건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내용의 '한정위헌' 결정을 내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었다. 헌재 파견 판사에게 평의 정보를 수집한 법원행정처는 발끈했다. 헌재가 한정위헌으로 결론을 굳힌다면 대법원 판결을 '물먹이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임종헌 차장이 당시 박병대 처장-양승태 대법원장과 함께 청와대에 보고할 목적으로 이 문건 작성을 지시했다고 본다. 실제 이 문건은 검찰이 압수한 '임종헌 USB'의 'BH'(청와대의 영문 이니셜) 폴더에서 발견됐다.

최누림 판사는 4년 전 임종헌 차장이 지시하던 순간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임 차장님이 상당한 분량의 기초자료를 주며 요약해 문건을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법률용어는 대폭 줄이고 최근 파업통계를 넣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나라 파업일수가 최근 10년 연평균 47일이라는 통계도 들어갔다. 지시받은 당일 1시간도 걸리지 않아 다 썼다."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에 경계심을 증폭시키는 이 문건에는 과격한 용어가 많이 쓰였다. '대법-헌재 정면 충돌', '파업공화국 초래', '불법파업 폭증', '민주노총과 민변의 숙원 달성' 등 한정위헌 결정 후 악영향을 강조하는 표현이 넘쳐났다.

그중 '국정안정의 저해요소'라는 말이 나온다. 최 판사는 "임 차장이 이 표현을 넣으라고 추가로 지시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보고용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는 임 차장에게 이 문건이 청와대에 전달된다는 말은 듣지 못 했다고 잘라 말했다. 당황한 검찰은 "검찰 조사 때 진술과 다르다. 조서를 한 번 보시겠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최 판사는 거듭 "여당, 여권이라는 표현을 썼지 청와대, BH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청와대 전달된 것은 검찰 조사 때 알았다"는 입장을 지켰다. 문건의 파일 이름에도 청와대가 들어가 있지만 파일명은 자신이 붙이지 않았다고 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헌재의 한정위헌 판단 위험성' 문건 작성을 지시했다. 2018년 10월 검찰 조사에 출석하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임세준 기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헌재의 한정위헌 판단 위험성' 문건 작성을 지시했다. 2018년 10월 검찰 조사에 출석하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임세준 기자

최 판사가 또 자주 거론되는 일은 '정운호 게이트'다. 2016년 고액 원정도박을 벌이다 구속된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부장판사를 지낸 최유정 변호사에게 50억원을 주고 석방을 추진하다 현직 법관을 포함한 14명이 구속된 대형 법조비리 사건이다.

그는 심준보 사법정책실장, 김민수 기획조정심의관 등과 '정운호 TF'에서 정운호 사건 대응방안, 검찰 수사의 문제점 분석 등을 수행했다. 2016년 5월에는 심준보 실장의 지시로 대법원에 있는 정운호 사건의 기록을 열람했다. 이는 대법관의 허가 등 정식 절차를 밟지 않은 '편법'이라는 지적도 받았다.

특히 당시 양승태 대법원은 '정운호 게이트'로 여론이 나빠져 숙원인 상고법원 추진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 염려했다. 검찰 수사에도 '먼지털이'식이라는 불만이 많았다. 이 때문에 '정운호 TF'에서 작성한 문건에는 여론의 관심을 최대한 검찰로 바꿔야 한다는 전략이 제시됐다. 정운호 게이트에 개입된 검찰 출신 홍만표 변호사 비리 건 등 검찰 비리를 '진보매체'에 제보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하지만 최 판사는 철저하게 선을 그었다. 당시 TF에서 작성한 문건 내용은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이 대부분이었다고 반박했다. 검찰 비판을 위한 언론 활용 등 문제가 된 내용은 극히 일부에 그쳤고 자신은 이 부분 작성에는 참여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정운호 TF 문건이 박병대 법원행정처장, 양승태 대법원장까지 보고됐느냐는 검찰의 신문에도 "토의용으로 쓰인다고 알았을 뿐 대법원장까지 보고된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 했다"고 했다.

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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