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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현장] "대법원장께 보고해야겠네요" 어느 판사의 긴 하루

  • 사회 | 2019-10-17 05:00
박병대 대법관이 2017년 6월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으로부터 기념품을 전달받은 후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박병대 대법관이 2017년 6월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으로부터 기념품을 전달받은 후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사법농단' 제 36회 공판…현직 판사, '위헌제청 직권취소' 증언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서울남부지법 민사11부는 2015년 4월 이모 씨가 낸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 사건에서 위헌법률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제청하기로 결정했다. 법률 해석에 따라 위헌이 될 수 있는 '한정위헌'인지 판단을 구하기 위해서다.

남부지법의 이 결정문이 문모 당시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 심의관(판사)의 눈에 들어왔다. 순간 고민이 됐다. 한정위헌은 대법원이 가장 반대하는 헌재의 결정 형태다. 법의 최종 해석 권한은 대법원이 갖는데, 헌재가 이를 위헌으로 규정한다? 헌재가 대법원 위에 있다는 얘기다. 헌재와 최고 사법기관 지위를 놓고 오랜 반목을 겪어온 대법원에게는 민감한 이슈다.

'보고를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그대로 헌재에 넘어가도 한정위헌 결정이 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법관의 양심으로 보면 그냥 송부되도록 두는 게 맞다. 헌재 이슈를 담당하는 사법정책실 심의관으로서는 상부 보고가 원칙이다. 결국 직속 상관인 한승 사법정책실장과 이규진 기획조정실장에게 말했다.

"그대로 보내면 안되겠네요. (양승태 대법)원장님께 보고해야 겠네요."

4월10일 금요일 오전. 박병대 법원행정처장이 주재하는 실장회의가 열렸다. 오후 이규진 기조실장이 그 결정문을 헌재에 보내지 않고 직권취소하기로 결정했다며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남부지법 해당 재판장과도 통화가 끝난 모양이었다. 보고서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대법원장에게 보고하겠다는 뜻이었다.

망설임 끝에 보고했는데 일이 순식간에 너무 커져버렸다. 차라리 그냥 헌재에 송부되도록 놔둘 걸 그랬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문 판사는 지시대로 보고서를 썼다. 제목은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 결정 확인 및 확인대책'(2015.4.12)이었다.

보고서로 끝나지 않았다. 이 사실을 남부지법 재판부, 법원행정처, 신청대리인을 빼고 아무도 몰라야 했다. 그러려면 위헌법률심판 제청 결정문이 법원 전산망 '코트넷'에서 검색되지 않아야 했다. 이규진 실장이 전산상 조치를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정보화 심의관에게 물어보니 '블라인드' 처리가 가능하다고 했다.

문 판사는 4월14일 블라인드 처리를 협조해준 심의관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사태수습에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마무리를 향해 치닫는 느낌입니다.'

2019년 10월16일 서울중앙지법 제417호 대법정. 문 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대법관, 고영한 전 대법관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제36회 공판 증인석에 앉아있다.

검사가 물었다. "위헌제청 직권취소는 법률적, 윤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인가요?" 대답은 금세 나왔다. "네."

"왜 그렇습니까?"

"제가 아는 법지식에서는 안 되는 걸로 압니다."

"윤리적으로 불가능한 이유는요?"

"재판에 개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법원 전경/ 사진=대법원 제공
대법원 전경/ 사진=대법원 제공

2014년 12월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후 전 의원 5명이 낸 국회의원 지위 확인 행정소송 대응도 문 판사의 일이었다.

법원행정처에 발령이 난 뒤, 전임자가 인수인계를 하면서 다양한 보고서를 넘겨줬다. 통진당TF에서 쓴 문건 '통진당 행정소송 검토보고(대외비)'를 읽었다.

"증인(문판사)은 검찰 조사에서 당시 보고서를 읽고 '간담이 서늘했다'고 했는데 왜 그랬습니까."

"재판에 개입하는 보고서가 아닌가 해서 그랬습니다."

문 판사는 이후 이규진 실장의 지시로 '통진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결과보고'라는 보고서를 썼다. 1심(서울행정법원)에서는 각하 결정이 났는데 이를 분석하는 내용이었다. 각하 결정은 헌재의 해산 결정에 대한 소송이라 법원이 판단할 수 없다는 의미였지만 책임을 회피하는 판결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실장은 향후대책을 추가해서 보고서를 재작성하라고 했다.

문 판사는 "이 문서를 상부에 보고한 분은 따로 있지만, 제가 관여한 문서이니까 부적절한 기재가 후회스럽고 마음이 좋지않다"고 했다.

통진당 전 의원들은 당시 2심(서울고등법원)에서는 항소 기각으로 패소했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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