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으로 분향소 설치…추모 메시지 수백개 몰려
[더팩트ㅣ송주원 인턴기자] 고 선 모(60) 씨는 20여년간 홍익대에서 24시간 2교대로 일했던 경비노동자다. 열악한 근무환경과 박봉에 평생을 가난에 시달렸다.
지난해 연로한 부모에 이어 올해 초 희귀병을 앓던 큰딸을 꽃다운 나이에 먼저 보냈다. 그는 영정 사진을 가슴에 끌어안고 흐느꼈다. "아빠가 낳아주기만 했지 아무 것도 못해줘서 미안하다." 사진 속 딸은 미소지을 뿐 대답이 없었다.
홍익대 서울캠퍼스의 정문처럼 서있는 건물 '홍문관'. 지난달 27일 오전 6시40분쯤 출근길이었던 선 씨는 이 건물 출입구에 쓰러진 채 발견됐다. 학생 2명이 그를 병원으로 옮겼으나 같은 날 오후 결국 사망했다. 심근경색이었다.
홍익대 캠퍼스 곳곳에는 생전 선씨도 근무했을 빈 경비초소가 눈에 띈다. 지난해 12월부터 단행된 학교의 인원 감축 때문이다. 홍익대는 모 보안업체와 협약을 맺고 무인경비시스템을 도입했다. 경비 초소를 줄이고 정년퇴임으로 경비원 결원이 발생해도 충원하지 않았다. 노조와 학생들의 반대로 초소 폐쇄 조치는 취소됐으나 인력이 줄어든 만큼 노동강도는 올라갔다.
박진국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홍익대분회장은 "고인이 부모님과 딸을 연이어 떠나보내고 인원 감축으로 업무량 과중까지 겹치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20년간 학교를 위해 일했던 경비노동자의 죽음에 학교측은 냉담했다. 고인이 외주업체 소속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빈소에 찾아온 것도 관제과 평직원 두명 뿐이었다. 박진국 분회장은 "고인을 발견해 병원으로 옮긴 것도, 분향소를 꾸리고 빈소에 근조화를 보낸 것도 학생들이다. 교내 분향소 추모객도 다 학생들이었다"며 "학교 고위 관계자는 분향소를 보더니 흘낏 쳐다볼 뿐 그냥 올라가더라"고 한숨을 쉬었다.
'영정사진을 보니 아침마다 인사를 나눴던 분.', '점심시간에 같이 담배도 폈었는데 하늘에서 편히 쉬시길 바란다.', '도서관에 갈 때마다 뵀던 분이다. 항상 감사했다.' 홍익대분회 사무실 책상 위에는 학생들이 포스트잇에 적은 추모 메시지 746개가 빼곡했다.
지난달 30일부터 3일간 운영된 교내 분향소는 홍익대 경비·청소노동자와 연대활동을 펼쳐온 홍익대생 모임 '모닥불'이 설치했다. 유족들도 분향소를 찾아 "학생들에게 감사하다"며 50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모닥불'은 열악한 경비초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직접 돈을 모아 에어컨과 냉장고를 장만해주기도 했다.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경비원 서비스에 불평하는 글이 올라오면 직접 해명하며 학생과 노동자 사이 오해를 풀었다. 이를테면 학생이 "지나가다 봤는데 경비원이 초소에서 잠만 자고 있더라"고 게시글을 쓰면 법적으로 보장된 24시간 근무자의 수면시간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열악한 업무환경을 설명했다.
김민석 모닥불 운영위원장은 학교의 무인경비시스템 도입은 학생의 실생활을 고려하지않은 예산낭비라고 비판했다. 그는 "무인 CCTV는 학생이 이미 피해를 입은 후 수사할 때 쓰는 자료밖에 더 되겠냐. 학교는 24시간 열람실 경비초소까지 없애려고 했다"며 "학교당국이 무인시스템 도입을 결정한 지난 연말 여학생 기숙사에 외부 남성이 들어와 잠을 잔 일이 있었다. 이럴 때 당장 달려올 수 있는 경비노동자가 없다면 누가 학생을 지켜줄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김민석 위원장은 "고인은 어려운 형편의 가족들이 200만 원에 달하는 MRI 촬영비용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던 찰나에 돌아가셨다고 한다"며 "돈 때문에 사람을 살릴 수 없는 세상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같은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더팩트는 홍익대 당국의 입장을 듣기위해 담당 처장에게 여러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출장 중이라 대답할 수 없다"고 밝혔다.
ilraoh_@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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