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반대' '검찰 수사권-기소권 분리' 주장…공론장 열까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세계에서 유례없이 검찰이 독점하는 일반적인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고, 검찰은 기소권과 함께 기소와 공소유지를 위한 2차적, 보충적 수사권만 갖도록 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2017년 4월 국회에서 열린 ‘청와대·검찰·국정원 등 권력적폐 청산을 위한 긴급좌담회’ 기조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 '검찰 수사권-기소권 분리'는 검찰 개혁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2018년 6월 발표된 정부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보면 검찰은 비리부패 범죄, 경제·금융범죄, 공직자 범죄, 선거 범죄 등 특수 사건 직접 수사권을 갖는다. 경찰이 송치한 사건의 공소유지를 위한 수사도 할 수 있다. 웬만한 중요한 사건은 여전히 검찰의 수사영역에 남았다. 검찰 수사권-기소권 분리 원칙에서 크게 뒷걸음질친 셈이다. 당장 "이대로 가면 검찰개혁은 실패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당은 이 조정안을 바탕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검경수사권 조정 입법을 서두르지만 법안 신속처리대상(패스트트랙) 지정에 캐스팅보트를 쥔 바른미래당을 설득하기가 쉽지않다. 검찰개혁의 키를 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야댱과 보수언론의 십자포화를 받는 것도 부담이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의 중간평가 성격을 띈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검찰개혁의 골든타임이 임박했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문제제기는 이처럼 문재인정부의 핵심공약인 검찰개혁이 기우뚱 거리는 상황에서 나왔다. 금 의원은 지난 11일 자신의 SNS에 '공수처 설치에 반대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뼈대는 "공수처 설치가 검찰개혁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고, 만일 설치에 성공한다면 오히려 개혁과는 반대방향으로 갈 위험성이 크다"는 것이다. 공수처를 반대하는 이유로는 ▲기존 권력기관의 권한을 축소해야 하는 마당에 새로운 권력기관 신설은 모순 ▲전세계에 유례가 없는 기구로 글로벌 스탠다드에 어긋남 ▲대통령중심제 아래 악용 우려 등을 들었다.
정부여당이 사활을 걸고 공수처를 추진하는데 안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오자 '소신파가 나왔다' '여당에 균열이 생겼다' 는 등 야당과 보수언론은 쌍수를 드는 분위기다.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도 나서 "금태섭 의원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이라며 "공수처법은 '북한 보위부법'이자 '반대파 숙청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전부터 공수처에 회의적이었던 금태섭 의원 주장의 핵심은 '공수처 반대'보다는 '검찰 기소권-수사권 분리'에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개혁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공수처에 본말전도식으로 집착하지 말고 검찰개혁의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금 의원도 "공수처 설치에 검찰개혁의 성패가 달린 것처럼 오해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이같은 주장을 펼친 이유를 밝혔다.
금 의원의 주장을 좀더 들여다보자. 공수처를 반대한다면 대안이 있을 것이다. 그는 "검찰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라고 정리한다. 공수처가 세계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것처럼 한국 검찰같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는 예도 희귀하다. 검찰의 모든 문제는 전면적인 직접 수사권을 갖기 때문에 발생한다. 금 의원은 "대한민국 검찰에서 수사권을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하면 바로 개혁이 이뤄진다"며 "모든 선진국이 이런 방식으로 검찰 권력을 통제하고 있는데 왜 우리만 안 된다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공수처 설치에 긍정적인 쪽도 금 의원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평가한다. 검찰 수사권-기소권 분리가 검찰개혁의 정석이라는데 동의한다. 검찰이 기소권, 경찰이 수사권을 맡는 식으로 깔끔하게 검경 수사권이 조정되면 공수처는 사실 필요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다만 현실 인식에 차이가 있다. 검찰에서 수사권을 떼어내자니 저항이 아직 크고, 수사권을 받을 경찰도 준비가 아직 덜 됐다. 특히 헌법에 명시된 검찰의 영장청구 독점권은 검찰 권력을 제어하기 힘든 근본적 한계로 지적된다. 그래서 나온 게 공수처다.
경찰대학개혁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인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완벽한 수사권 조정이 쉽지않은 환경에서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으로 나온 게 '제2의 검찰'인 공수처"라며 "검찰 수사권 폐지가 실현될 가능성이 적다는 점에서 금 의원의 주장은 현재로서는 이상주의적"이라고 풀이했다.
공수처가 과연 금 의원 우려대로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될는지에도 시각차가 있다. 공수처는 검찰이나 경찰에 견줘 조직규모도 훨씬 작고 수사역량도 한계가 예상된다. 전국 검사가 2000여명, 검찰수사관이 4000여명, 경찰이 12만여명에 이르지만 공수처법안에 따르면 공수처에 근무하는 검사는 30~50명, 수사관은 50~70명 수준이다. 검찰과 경찰이 자랑하는 과학수사력 면에서도 열세가 불가피하다. 만약 공수처가 출범하더라도 당장 '수퍼파워'가 되기는 역부족이라는 이야기다.
박찬운 교수는 "검찰 수사권-기소권 분리는 꼭 필요하지만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라며 "공수처는 여러 한계에도 수사권 조정이 궁극적 결실을 맺을 때까지 잠정적으로 검찰을 견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금태섭 의원은 "공수처와 같은 권력기관의 설치는 매우 중대한 문제고 찬반론의 치열한 논쟁이 필요하다"며 공론장을 가동하자고 제안했다. 바른미래당의 '기소권 없는 공수처' 주장으로 교착상태에 빠진 검찰개혁 논의의 향방에 금 의원이 '쏘아올린 작은 공'이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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