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당연히 영장 기각 돼야" vs 유가족 "선의의 피해자인 척 하지마"
[더팩트 | 서울남부지법=김소희 기자] "감염 원인은 수액줄에 보험 수가를 적용하지 않아 더러운 수액줄을 사용하게 만든 정부에 있습니다."(의료계)
"진실은 죽인 자와 죽음을 당한 자만 알겠죠. 저희는 협박 당하는 기분이에요."(유가족)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해당 의료진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남부지검이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의료계는 이를 규탄하고 나섰다. 반면 법정을 찾았던 유가족은 의료진의 구속을 규탄하는 의료계 인사, 변호인들을 보고 항의해 한차례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서울남부지법 이환승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10시30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받고 있는 신생아중환자실 주치의 조수진(45) 교수와 신생아중환자실 소속 박은애 교수, 수간호사 심모 씨와 당직 간호사 나모 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했다.
법원 앞에서는 의료진의 구속을 반대하는 의료계 기자회견이 잇달아 열렸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협회장 당선인은 이날 오전 8시 30분 서울남부지법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 교수 등 교수 2인이 의도적으로 감염을 일으켜 환자를 죽게 했느냐"며 영장심사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최 당선인은 "이번 사건으로 사망한 신생아들과 그 유족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면서도 "구속영장이 청구되기 위해서는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어야 하는데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전혀 없는 만큼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명백하게 부당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구속영장 발부를 반대하는 것은 법적 책임이 없다는 게 아니라 (신생아 사망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이 분명하게 밝혀져 비극적 사태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의미"라고 부연했다.
간호사 측은 감염 책임이 간호사에게 없다고 주장했다. 간호사연대 이대목동사건 대책위원회 간호사(대책위)도 이날 오전 10시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균의 감염원인을 간호사의 손이라고 단정한 수사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실질적인 책임은 이대목동병원과 보건복지부에 있다"고 강조했다.
대책위는 경찰의 수사를 "문제의 본질은 덮어둔 꼬리자르기식 수사"로 규정했다. 이어 "이대목동병원은 보건복지부의 의료기관평가 1등급을 받은 병원이었지만 감염 관리가 엉망이었음이 이번 사건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났다"며 "경찰도 정부도 침묵하고 있지만 이 죽음의 책임은 그동안 병원들의 이런 부실한 감염관리 체계를 방조하고 부추겨 온 보건복지부에 있다"고 비판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간호사연대는 수간호사와 당직 간호사의 영장심사 철회를 요청하는 내용의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법정 앞에서는 의료진의 변호인과 의료계 인사들이 취재진을 만나 구속의 부당함과 수사기관의 표적수사 의혹을 주장하기도 했다.
조 교수의 법률대리인 이성희 변호사는 "경찰과 검찰, 식약처와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정부가 나서서 100일 넘게 신생아들의 사망 원인을 규명하려고 했지만 검찰은 끝까지 범죄소명조차 하지 못했다"면서 "수사기관은 결국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안치현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수사 100일이 지나서야 증거인멸과 도주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검찰을 이해할 수 없다"며 "이는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수사대상을 정한 뒤 근거를 찾아가는 잘못된 수사"라고 강조했다.
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도 "검찰이 제출한 구속영장 청구서에 의료진의 과실이 전혀 소명돼 있지 않다"며 준비해온 설명서를 들고 당시 신생아들에게 주입된 지질영양제의 투입과정을 재연하기도 했다.
임 회장은 "200원 밖에 하지 않는 수액줄에 대해 정부는 전혀 지원해주지 않았다"며 "필리핀, 베트남 등 더운 지역의 국가에서 비교적 저렴한 값에 가져오고 있지만, 그 지역들은 로타가 감염되기 쉬운 지역이다. 부패균에 오염된 수액줄이 그대로 사용되는 게 정부의 책임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강조했다.
임 회장의 설명이 한창 이어지던 중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던 유가족의 거센 항의가 이어졌다. 유가족은 "이쪽을 보고 말하라"며 "우리 아이들은 의료진도 없는 상황에서 심폐소생술(CPR)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사망했다. 의료사고가 아니라 살해당했다"고 소리쳤다.
임 회장이 "사건의 질실에 대해서"라며 설명을 이어가려고 하자, 유가족은 "진실은 밝혀진 후에 얘기하라"며 "진실은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한다. 죽인 자와 죽임을 당한 자만 알고 있다"며 입술을 파르르 떨며 분노하기도 했다. 이후 유가족 측 변호인의 안내를 받고 법원으로 들어갔다.
한참 동안 의료계는 언론인에게 부당 수사를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짧은 시간 영장실질심사에 참관하고 법원을 나선 유가족은 "의료계 관계자는 우리 아이들이 감염으로 죽었다고 하는데, 이는 마지막 사실일 뿐 감염되기까지 우리 아이들이 방치되고 가혹행위를 당했던 부분들에 대해서는 드러나지 않았다"며 "(의료계가) 마치 모든 사실을 알고 자신들이 선의의 피해자인 척 하는 것은 틀렸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유가족 역시 "(의료진이) 고군분투 했다고 하는데, CPR 할 때 제대로된 의료진이 없었다"며 담당 주치의들도 아이들이 죽은 후에 나타났는데, 대체 어떤 제대로 된 선의의 치료를 했다고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의료계의 구속 반대 기자회견 등 반대 행동에 대해 "저희를 협박하고 있다고 느껴진다"고도 말했다.
앞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의료사고전담팀으로부터 구속영장 신청을 받은 서울남부지검 환경보건범죄전담부(부장검사 위성국)는 지난달 30일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했다.
검찰에 따르면 조 교수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 실장(주치의)으로 원내 감염관리의 책임이 있으면서도 병원 내에 '시트로박터 프룬디(Citrobacter freundii)'균이 감염되는 것을 막지 못해 신생아 4명이 동시다발적으로 사망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혐의를 받는다.
박 교수와 수간호사 심 씨도 조 교수와 함께 신생아중환자실을 총괄·관리하면서 원내 감염을 예방할 책임이 있지만, 숨진 신생아 4명에게 시트로박터균이 감염되는 사태를 막지 못한 지휘감독 책임을 진다. 간호사 나씨는 사건 발생 하루 전인 지난해 12월 15일 신생아 5명에게 지질영양제 '스모프리피드'(SMOF lipid)'를 투약하는 과정에서 지질영양제를 상온에 장시간 방치하는 등 감염관리를 소홀히 해 숨진 신생아 4명에게 '시트로박터 프룬디균을 감염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ks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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