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 성폭력 가해자 64%는 한국인 고용인…"제도적 문제 해결 선행돼야"
[더팩트 | 김소희 기자]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문제와 외국인이기에 겪는 차별이 교차하는 거죠."
최근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폭로가 정치권·문화계 등에서 쏟아지고 있지만, 성폭력 피해를 입어도 폭로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결혼과 일자리, 유학 등으로 한국에 들어와 사는 100만여 명의 이주여성들이다.
이주여성들은 말 그대로 성폭력 무방비 상태에 놓여져 있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발을 내디뎠지만, 노골적으로 성관계 요구를 당해도 한국어를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이들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만 본국에 소문이 날까 두려워 성폭력의 그늘에서 홀로 신음한다.
지난 9일 국회의원회관 제4간담회실에서 만난 강혜숙·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이하 센터) 공동대표는 "이주여성이 경험하는 차별과 폭력은 다양하지만 한국인에 비해 정보도 부족하고 의사소통을 잘 할 수 없는 이들의 피해를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사례를 발표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도 그래서다. 사회의 무관심으로 '미투'도 외칠 수 없는 이주여성들. 그들이 경험한 각종 성폭력 피해 사례들은 센터에 지속적으로 접수된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았다. 알릴 수조차 없었다.
허오 대표는 "센터를 비롯해 전국이주여성쉼터협의회 등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단체들은 그동안 상담을 통해 여러 사례를 들어왔다"며 "이주여성이 처한 위치를 말함으로써 이를 공론화하는 것이 제도를 바꾸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었던 것"이라고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센터 측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와 대구이주여성상담센터 2곳에 접수된 성폭력 관련 상담 건수는 456건에 달한다. 2년 전 센터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을 받아 2016년 5~8월 베트남·캄보디아 출신 이주여성 농업노동자 20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대상자의 12.4%가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64%는 한국인 고용주와 관리자를 가해자로 지목했다.
피해를 당하고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던 이유로는 ▲ 한국말을 잘하지 못해서(64.4%) ▲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몰라서(52.6%) ▲ 일터에서 불이익을 당할까 봐(15.8%) ▲ 가해자가 두려워서(10.5%) ▲ 한국에서 추방될까 봐(5.3%) 등으로 나타났다.
강 대표는 "수년전부터 이주여성이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등 젠더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현장에서 들어 잘 알고 있었다"면서도 "이주여성은 소수자 중 소수자로서 말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고 했다. 이어 "전세계에서 끓고 있는 '미투' 운동을 이주여성은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있다"며 "항상 묻혀져 있는 상태"라고 강조했다.
성폭력 피해 사실이 본국에 알려지는 것도 이주여성에겐 '2차 가해'로 작용한다. 허오 대표는 "상담 현장에서 보면 한국어를 잘하는 이주여성들은 본국 상담원과 상담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혹시 상담원이 자신의 비밀을 지켜주지 않을까봐 두려워 하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그 부분은 민감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성희롱과 성추행은 만연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희롱·성추행 사례는 통계로 집계되기도 힘들다. 강간에 이르러서야 이주여성은 센터를 찾는다고 했다.
한국의 인식도 원인이 될 수 있다. 허오 대표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미투' 운동이 일어나기 전만 해도 성폭력 피해 사실을 사회에 말했을 때 지지와 지원을 받는 게 아니라 '꽃뱀'이라는 비난을 받기 일쑤였다. 이주여성도 마찬가지"라며 "가해자 측은 합의에 의한 일이었다거나 돈을 줬다는 식으로 무마하려 한다. 성폭력을 언급했을 때 약자는 또 다시 피해를 입게 되는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용허가제'는 미투를 가로막는 가장 큰 족쇄로 작용한다. 2004년 8월 외국인의 국내 고용을 지원하고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을 개선해 불법 체류자를 줄인다는 취지로 시행된 고용허가제 때문에 이주여성은 성폭력 피해를 입어도 사업주 동의 없이 사업주를 이탈할 수 없다. 이주노동자는 국내에서 체류하는 3년 동안 사업장을 3번만 바꿀 수 있고,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할 때 사업주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불법체류자' 신세가 돼버릴 수 있어서다. 이주여성이 미투에 나설 수 없는 가장 큰 걸림돌은 '신분 불안' 때문이라는 것이다.
허오 대표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그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스스로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자신의 체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협박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 대표는 "현재 다문화 정책과 관련해서는 결혼으로 온 이주여성에 대한 것밖에 없다"며 "모든 비자 유형을 포괄하는 이주 여성 젠더폭력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주 여성 폭력 피해자들에게는 체류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며 "젠더폭력 피해 여성들에게는 체류권을 보장하라는 게 저희 주장의 핵심이다"라고 했다.
센터는 ▲체류 지위와 관계없이 국내 체류 모든 이주여성의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피해 종합적인 대책과 창구 마련 ▲체류 불안 없이 폭력 피해를 호소하고 폭력 피해 이주여성의 인권보호를 위한 지원 체계 마련 ▲이주여성 노동자의 인권보호와 성폭력 대책 마련 ▲선주민에 대한 다문화 감수성에 기초한 폭력 예방 교육과 인권 교육 등을 정부에 요구사항으로 제시하고 있다.
허오 대표는 "저희의 요구안은 주로 제도적인 문제에 많이 초점을 맞췄다"며 "성폭력은 해결됐는데 자신이 추방돼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지 않나. 피해자의 체류 안전을 보장해줘야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여성 폭력 피해자에 대한 체류 보장을 하는 제도들는 다른 나라에도 있다. 우리나라만 특수하게 요구하는 게 아니다"면서 "사업장 변경 이동 제한이 원천적으로 고용허가제라는 제도 안에 있기 때문에 성폭력을 신고하면 바로 사업장을 이동하도록 해줘야 한다. 한국 정부에서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ks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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