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동안 내려지는 판결은 얼마나 될까요? 대한민국 재판부는 원외 재판부를 포함하면 200여 개가량 됩니다. 그러니 판결은 최소 1000여 건 이상 나오겠지요. 대법원과 서울고등법원, 서울중앙지법이 몰려 있는 '법조 메카' 서울 서초동에선 하루 평균 수백 건의 판결이 나옵니다. <더팩트>는 하루 동안 내려진 판결 가운데 주목할 만한 선고를 '엄선'해 '브리핑' 형식으로 소개하는 [TF오늘의 선고]를 마련했습니다. 바쁜 생활에 놓치지 말아야 할 판결을 이 코너를 통해 만나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주>
[더팩트|서울중앙지법=김소희 기자] 법조계는 22일 음주운전을 하다 경찰의 단속 직전 차에서 내려 소주를 병째 들이킨 30대 남성에 대한 선고, 40여년 전인 1970년대 '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옥살이를 했던 3명에 대한 재심,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수 년간 환자들에게 허위 장애진단서를 발급해준 병원장에 대한 1심 선고가 주목을 끌었다.
○…음주 단속하는 경찰 보고 소주 '병나발' 30대 무죄
청주지법 형사2단독 이성기 부장판사는 22일 경찰의 음주운전 단속 직전 차에서 급히 내려 소주를 병째 들이켜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기소된 A(39)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청주에 사는 A씨는 지난해 4월 1일 오전 4시 30분께 술을 마신 상태로 운전하다 20m 전방에서 음주운전 단속을 하는 경찰을 발견했다. 급히 차를 세운 그는 곧바로 옆에 있던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이어 냉장고 안에 있던 소주 1병을 꺼내 병째 들이켰다.
A씨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 경찰관 1명이 뒤쫓아와 말렸지만, A씨는 경찰관의 손을 뿌리치고 끝내 소주 반병 정도를 마셔버렸다. 10여분 뒤 측정한 A씨의 혈중 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 수치인 0.082%였다. 하지만 그가 편의점에서 마신 술 때문에 운전대를 잡았을 당시의 혈중 알코올농도가 단속 수치인 0.05% 이상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검찰은 결국 A씨가 음주운전 단속 경찰관의 정당한 직무집행을 방해했다며 그를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을 달랐다. 이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의 행위는 음주 측정이라는 구체적인 공무집행이 개시되기 전의 일"이라며 "증거 인멸 행위에 가까운 행위인데 자신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 인멸 행위는 처벌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관이 보는 앞에서 피고인이 마신 술의 양을 토대로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하면 운전 당시 그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 이상이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수사기관 조사도 있었다"고 밝혔다.
○…"유신헌법 철폐"…긴급조치 9호 위반 복역 3명 40년 만에 무죄
대전지법 제12형사부(부장판사 박창제)는 22일 박정희 정권 당시 "유신헌법은 철폐돼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청와대에 보낸 A씨 등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기소된 3명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공소사실은 그 적용법령인 긴급조치 제9호가 당초부터 위헌·무효이어서 '범죄로 되지 아니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A씨는 1975년 4월 초 대전교도소 인쇄공장에서 기결수 등에게 "대한민국 국민은 하루 벌어 하루 먹기도 힘들다. 그 이유는 정부에서 전부 착취하기 때문"이라고 말했고, 5월 30일 오후 2시께는 "박정희 대통령이 그만두고 새 영도자가 나와야만 국민이 살기가 나을 것"이라며 수차례 정부를 비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당시 유죄가 인정돼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B씨는 같은 해 9월 29일 오전 8시 30분께 노인회관 앞길에서 "이북 청년들을 동원해 청와대 습격을 하려고 했던 사람이다. 돈 보따리를 싸다가 박정희를 줘서 살게 됐다"는 등 발언을 해 기소됐고, 법원에서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C씨는 1978년 9월 16일 서울 동대문구 주거지에서 "유신헌법으로 인해 반공교육에 차질 있다"는 제목의 서신을 청와대로 보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2년 6월,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았다.
긴급조치 9호는 유신헌법 철폐와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민주화운동이 거세지자 이를 탄압하려고 1975년 5월 13일 선포됐다. 유언비어의 날조·유포, 사실의 왜곡·전파행위 등을 금지하고, 집회·시위 또는 신문·방송·통신에 의해 헌법을 부정하거나 폐지를 청원·선포하는 행위 등을 금지했다. 이런 명령이나 조치는 사법적 심사 대상이 되지 않고, 위반자는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도록 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2013년 4월 18일 1970년대 유신헌법 53조와 긴급조치 1·2·9호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청구사건에서 해당 조항은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모두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했다. 이에 검찰은 이 사건들과 관련해 2017년 10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환자에 거짓 장애진단서 발급한 혐의 병원장, 2년 6개월 실형
서울북부지법 형사9단독 양상윤 판사는 수년간 환자들에게 허위로 장애진단서 발급해준 혐의(허위 진단서 작성 및 행사, 위계공무집행방해 등)로 불구속 기소된 정형외과 전문의 송모(61) 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고 22일 밝혔다.
재판부는 "허위 장애진단서 작성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폐해가 중대하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다만 "30건의 허위 장애진단서 외에 98건의 진단서는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송 씨는 지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서울 동대문구의 한 정형외과 병원의 원장으로 근무하며 장애인 등록신청을 원하는 사람을 소개받아 허위 장애진단서를 발급한 혐의로 기소됐다.
송 씨는 스키를 타다가 넘어진 사람에게 강직 증상이 있고 운동 범위가 75% 이상 감소돼 지체장애 6급 3호에 해당한다는 등의 허위진단서를 총 30건 발급했다.
검찰에 따르면 송 씨는 약 50억 원의 채무를 부담하면서 매월 수천만 원의 이자를 내고 있어 병원에 환자를 끌어오기 위해 허위 장애진단서를 발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밖에 송 씨는 연금보험 가입 대행사를 운영하는 지인에게 "보험 2건을 들 테니 보험회사로부터 받을 수수료를 빌려달라"며 "지금 운영 중인 병원을 리모델링해 요양병원으로 개조하면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으니 그것으로 갚겠다"고 거짓말을 한 혐의(사기)로도 기소됐다.
재판부는 송 씨가 혐의를 계속 부인했고 항소심에서 다툴 여지가 있는 점을 고려해 법정 구속하지는 않았다. 검찰과 피고인 모두 항소했다.
ks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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