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동안 내려지는 판결은 얼마나 될까요? 대한민국 재판부는 원외 재판부를 포함하면 200여 개가량 됩니다. 그러니 판결은 최소 1000여 건 이상 나오겠지요. 대법원과 서울고등법원, 서울중앙지법이 몰려 있는 '법조 메카' 서울 서초동에선 하루 평균 수백 건의 판결이 나옵니다. <더팩트>는 하루 동안 내려진 판결 가운데 주목할 만한 선고를 '엄선'해 '브리핑' 형식으로 소개하는 [TF오늘의 선고]를 마련했습니다. 바쁜 생활에 놓치지 말아야 할 판결을 이 코너를 통해 만나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주>
[더팩트|서울중앙지법=김소희 기자] 법조계는 18일 고객의 개인정보를 판매한 홈플러스가 피해 소비자에게 83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 '태완이법' 시행으로 살인죄 공소시효가 폐지된 이후 범행 15년 만에 붙잡힌 '호프집 여주인 살해범' 선고, 체험활동을 하다 물에 빠져 숨진 학생에게 안전관리와 보호의무를 소홀히 한 지자체에 책임을 묻는 법원의 판결이 주목을 끌었다.
○…법원, "'1mm 글자 고지 뒤 개인정보 판매' 홈플러스 1인당 20만 원씩 배상"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1부(부장판사 김정운)는 18일 경품행사 응모자의 개인정보를 보험회사에 팔아넘겨 피해를 입었다며 김모씨 등 소비자 1067명이 홈플러스와 라이나생명보험, 신한생명보험을 상대로 낸 3억2220만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총 8365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홈플러스가 부정한 방법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동의 없이 보험회사에 판매한 행위는 불법이다"라며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는데, 사전 필터링을 위해 정보를 보험회사에 제공한 것도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또 "단순히 관리자의 과실로 인해 발생한 신용카드 개인정보 유출사건보다 위법성이나 피해자들이 받는 정신적 고통이 더 크다"라며 "이 점을 반영해 위자료 액수를 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홈플러스는 경품행사에 응모한 사람들에게 위자료 각 20만원씩 총 8365만원을 배상하라"며 "이중 동의 없이 보험사에 개인정보가 제공된 사람들에게는 라이나생명과 신한생명과 함께 각 5만원씩 총 1605만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홈플러스는 2011년 12월부터 2014년 6월까지 11회에 걸쳐 진행된 경품행사에서 고객의 개인정보 약 700만건을 불법 수집하고 한 건당 1980원씩 보험회사에 판매했다. 행사 응모권 뒷면에는 개인정보가 보험사 마케팅 목적으로 활용된다는 내용과 함께 '기재/동의 사항 일부 미기재, 미동의, 서명 누락 시 경품추첨에서 제외됩니다'라는 내용을 1㎜ 글자 크기로 '깨알' 고지했다.
한편 홈플러스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선고를 받았다가 대법원이 이를 돌려보내면서 25일 파기환송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15년 만에 붙잡힌 '호프집 여주인 살인범' 1심서 무기징역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김태업)는 18일 16년 전 '호프집 여주인 살인사건' 범인 장모(53) 씨의 강도살인 혐의 선고공판에서 검찰 구형대로 무기징역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사람의 생명을 빼앗은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질렀다"며 "범행 후 자신의 지문을 지우는 등 냉정하고 용의주도하게 증거를 인멸하고 범행을 은닉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는 치명적인 신체의 손상을 입고 영문도 모른 채 사망했고 유족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피고인은 15년 동안 침묵을 지켰고 유족에게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장 씨는 지난 2002년 12월 14일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 있는 한 호프집에서 가게 여주인 윤모 씨를 흉기로 마구 때려 살해하고 금품을 훔쳐 달아난 혐의(강도살인)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장 씨가 범행 2년 전 이 호프집을 4개월 간 운영한 적이 있어 늦은 시간엔 손님이 적고 여자 업주 혼자 있다는 사정을 잘 알아 윤 씨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장 씨는 당시 새벽 1시30분께 손님으로 가장하고 호프집에 들어가 윤 씨와 함께 술을 마셨고, 1시간 뒤 남자 종업원이 퇴근해 단둘이 남게 되자 미리 준비한 흉기로 윤 씨를 마구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윤 씨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장 씨는 당시 빚이 많고 생활비가 부족하자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은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일명 '태완이법')이 2015년 7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전모가 드러나게 됐다. 범행 당시 증거가 부족해 피의자로 특정되지 않았던 장 씨는 '태완이법' 시행과 함께 시작된 보강수사, 그 사이 발전된 수사기법 등으로 인해 덜미를 잡혔다.
경찰은 맥주병에 남은 쪽지문(조각지문)을 사건 발생 당시에는 없었던 최신기술로 분석해 장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해 지난해 그를 검거했다.
○…法 "체험활동 중 물에 빠져 숨진 학생 책임, 지자체에 있다"
광주지법 민사11부(부장판사 김상연)는 체험활동 중 물에 빠져 숨진 A(사망 당시 14세)군 유족이 안전관리와 보호 의무를 소홀히 한 책임이 있다며 전남 신안군, 광주시, 담임 교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신안군, 광주시, 학교안전공제회가 공동으로 4억4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8일 밝혔다.
광주 한 중학교 학생이던 A군은 2015년 8월 담임교사, 같은 반 학생 12명과 신안 한 해수욕장으로 체험활동을 갔다. 학생들은 교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깊은 곳에 들어갔다가 물에 빠졌는데, A군을 제외하고 모두 수영을 해 빠져나왔다. A군은 사고 2시간 뒤 인근 해안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재판부는 안전관리를 부실하게 한 신안군에 사고 일부 책임이 있다고 봤다. 당시 해당 해수욕장에는 안전요원 3명을 배치해야 했지만 2명만 배치됐다. 또 이들 안전요원은 인명구조 관련 자격증을 보유하지 않았고 수영도 하지 못한 상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재판부는 이어 담임교사가 보호·감독 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며 교사가 소속한 광주시가 대신 배상 책임이 있다고 봤다. 담임교사는 안전요원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학생들에게 얕은 곳에서 놀 것을 당부한 점 등을 고려할 때 학생들을 보호할 의무를 고의적으로 게을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책임을 묻지 않았다.
재판부는 안전장비를 갖추지 않은 채 교사 당부를 저버리고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등 A군의 과실도 있는 점을 고려해 손해배상 책임을 70%로 제한했다.
ks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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