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학에 재학 중인 중국 유학생의 수가 6만 명을 넘어서면서 대학가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일부 대학 인근에는 중국 간판이 넘쳐나고, 중국 유학생만을 위한 식당, 식음료점, 환전상 등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미니 차이나타운'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학가 인근이 '중국화(中國化)'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팩트>는 중국 유학생들이 점령한 대학가의 변화와 이에 따른 명암을 취재했다. <편집자주>
[더팩트 | 김소희 기자] "최저 시급보다 1000원 덜 받는 거요? 신고하면 추방되는 거 아니에요?"
고려대학교에 재학 중인 중국인 유학생 왕준희(28·가명) 씨는 시급 5500원을 받고 서울 종로구의 한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한다. 금·토·일요일 밤 11시부터 8시간을 일하면 일당 4만9500원 정도를 받는 데, 월급으로 합산하면 60만 원 정도다.
왕 씨에게 '주휴수당'과 6470원의 최저 시급 이상의 임금을 받는 건 사치일 뿐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라 사업장의 규모와 관계 없이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근무하면 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지만, 왕 씨는 "한 번도 주휴수당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최저 시급보다 970원 적은 시급을 받아도 만족해야 했다. 왕 씨는 "한국에 거주하는 다른 유학생 친구들은 저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고 전했다.
이화여자대학교에 재학 중인 중국인 유학생 장웨이(23·여) 씨는 학비 마련을 위해 강남에 위치한 중국어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다. 장 씨는 "최저 시급도 못 받는데, 월급도 제때 주지 않아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일이 힘들어도 최저 시급도 맞춰주고, 월급이 밀리지 않는 명동 화장품 가게에서 6개월째 일하고 있다.
통계청이 12일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7'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전문대학, 4년제 대학, 대학원 등에 등록한 외국인 유학생 수는 10만4000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2월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체류 중인 중국인 유학생은 6만6614명에 달한다. 전체 유학생 수에 60%가 넘는 중국 유학생들 중 상당수가 자국보다 높은 한국 물가를 감당하기 위해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한국행'을 택하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늘어나면서 유학생 노동 착취 문제도 함께 불거지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국인 유학생은 늘고 있지만, 상당 수가 최저 시급을 받지 못하는 등 불법 근로 조건에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미숙한 한국어 실력과 노동 관련 법에 대한 지식이 없어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신고조차 하지 못한다.
고려대와 이화여대에 재학 중인 왕 씨와 장 씨는 '학생 비자'로 입국한 유학생 신분이다. 외국인 유학생은 원칙적으로 국내에서 취업이 불가능하다. 다만, 생계유지를 위한, 체류 자격에 따른 정해진 시간 만큼 근로 활동을 할 수 있다.
주 20시간이 넘는 시간을 일하고 있는 왕 씨도 '불법 근로'에 해당된다. 아르바이트를 원하는 외국인 유학생은 체류 자격에 따라 취업 가능 여부와 가능 직종이 달라지는데, 어학연수 과정과 학부 과정에 있는 외국인 유학생들은 주당 20시간 이내 근무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증 대학 재학자는 주당 25시간까지 가능하다. 석·박사 과정에 있는 유학생들은 주당 30시간으로 더 오래 근무할 수 있다.
유학(D-2), 한국어 연수(D-4-1), 외국어 연수(D-4-7) 등 학생 비자만 갖고 있다고 모두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근로 활동을 위해서는 우선 재학 중인 학교의 유학생 담당자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 특히 '시간제 취업 사전 허가'가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데, 활동허가 신청서, 시간제 취업 추천서, 고용확인서, 지도교수 추천서, 출석 또는 성적증명서 등이 필요하다. 출입국관리법 제20조는 '대한민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다른 체류자격에 해당하는 활동을 하려면 미리 법무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장 씨는 "유학생들은 대부분 사전 허가를 받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한다"며 "시간제 취업 사전 허가서를 통해 일하면 일주일에 25~30시간 밖에 일하지 못하지 않냐"고 되물었다.
시간제 취업 사전 허가를 받아도, 근로 환경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고용주들은 최저 시급을 적용한 임금을 주면서 오래 근무하지 못하는 유학생들을 꺼리기 때문에 시간제 취업 사전 허가서를 제출한 외국인 유학생은 고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특히, 2018년부터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인상되는 상황에서 '불법 근로'지만 적은 임금을 받고도 불평 없이 일하는 유학생만 아르바이트에 채용될 가능성이 높다.
유학생들의 국내 체류기간이 정해져 있다는 점을 악용한 고용주들도 있다. 임금을 제때 주지 않고 미루다가, 돈을 받지 못한 채 자국으로 돌아간 외국인 유학생 피해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중국인 유학생들은 "돈이 필요해 커뮤니티를 통해 겨우 아르바이트는 구했지만, 불법 근로가 걸리면 처벌 받을까 무서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돌아가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고용주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은 외국인 유학생도 노동청에 신고해 내국인과 똑같은 조치를 받을 수 있지만 이를 아는 유학생들이 많지 않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피해를 입은 유학생들은 자신이 일했던 사업장이 있는 관할 노동청 민원실에 접수해 조치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민원 접수를 통해 밀린 임금이나 계약 위반에 따른 피해 보상을 받는다고 해도, 강제 출국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출입국관리소 관계자는 "외국인 유학생은 허가를 받지 않고 불법취업할 경우 체류자격 유지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반드시 허가를 받아 정해진 시간 내에 취업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중 관계의 교량 역할을 할 중요한 자원인 중국인 유학생들을 지원하고 관리하는 시스템 미약으로 한류는 물론 국가 이미지 마저 실추시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13년 4월 한국무역협회가 중국인 유학생 56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중국의 지인에게 한국 유학을 권유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부정적이다'라고 답한 중국 유학생은 23.3%에 달했다.
중국인 유학생 왕 씨는 "'코리안 드림'을 꿈꿔서 한국에 왔는데 유학 생활이 끝나면 또 다시 한국에 올 마음이 생길지 모르겠다"며 "상황이 개선돼서 다음에 한국에 들어오는 중국인 유학생 친구들의 상황은 보다 나아지길 바란다"고 했다.
ks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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