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마포=윤소희 기자] "처음엔 영부인이 입을 줄은 몰랐어요. 방미 일정에서 입을 줄도 몰랐죠. 엄청난 떨림이었습니다."
지난 6월 말 첫 한·미 정상회담 차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전용기에서 내리자 많은 이들이 감탄했다. 영부인 김정숙 여사의 화사한 의상 때문이었다. 백색의 재킷에 프린팅 된 그림 '푸른숲'을 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내외와 상견례 자리서 김 여사의 패션은 모델 출신의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와 견줘도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의상 속 '푸른숲'도 화제가 됐다. 그림을 그린 주인공은 바로 정영환(47) 작가다.
뜨거운 햇볕이 따갑게 느껴질 정도로 무더운 여름날, 그를 만났다.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갤러리 벽과나사이(Sai) 문을 열고 들어가자, '푸른 세상'이 펼쳐졌다. 정 작가는 개인전 '그저 바라보기_저스트 루킹(Just Looking)'를 통해 지난 2015년부터 그려온 파란 작품들을 보여줬다. 그는 이번 개인전에 대해 "관람객들이 파란 풍경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작가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파랑'이다. 파란색의 채도를 조절해 푸른 세상을 창조해낸다. 그는 지난 2007년부터 꾸준히 파란색을 고집해왔다. 정 작가는 파란색이 주는 다양한 이미지의 스펙트럼을 그 이유로 들었다. 우람한 메타세쿼이아와 작은 향나무들이 가지런히 배열된 '푸른 숲'도 그 중 하나다.
"녹색의 자연이 파란색으로 변조될 때 생경함이 작품의 포인트예요. 파란색이 주는 상징적인 감성이 있잖아요. 성공과 신뢰 믿음, 우울, 순수, 야만적 등……. 파란색의 넓은 스펙트럼으로 관객들은 다양한 걸 느낄 수 있어요. 소담스럽기도 하고, 소소하기도 하고."
정 작가의 푸른 작품들은 산과 강, 나무, 풀 등 자연의 풍경을 담고 있다. 그가 풍경을 그리게 된 이유도 있다. 가족 때문이었다.
"아버지께서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지, 어머니께서 그를 간호한 지 15년 됐습니다. 몇 번 고비가 있었는데 우리 삼형제가 양평으로 모셨어요. 새로운 삶이라고 할까요? 삶과 들, 물을 보고. 그런 게 곁에 있으면 당신께서 힘을 받고 소생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어요. 그런 와중에 작업을 하면서 그런 느낌을 대변하게 됐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저와 같은 상황의 사람들이 위안을 받았으면 해요."
갤러리 한쪽에는 김 여사의 방미 일정을 빛나게 해준 작품 '휴식'이 있다. 지난 2015년 10월에 그려진 '휴식'은 양해일 패션 디자이너를 만나 김 여사의 품에 안겼다.
정 작가와 김 여사 사이의 특별한 인연이 있는 건 아니다. 양해일 디자이너가 정 작가의 작품으로 패션쇼를 진행했고, 이후 대선쯤에 다시 한 번 정 작가에게 컬래버레이션을 요청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정 작가는 '휴식'과 컬래버레이션될 의상이 영부인에게 갈 줄 몰랐다고 했다.
김 여사가 입을 옷이라는 걸 알게 된 건 5월 10일, 문 대통령이 당선된 다음 날이었다. 정 작가는 "영부인이 입을 거라는 연락이 와서 정말 놀랐다. 그리고 기대를 했다. 취임식 때 입는 건가 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어느 날 뉴스를 보는데 (영부인께서) 미국 비행기에서 내릴 때 입고 계시더라고요. 정말 엄청난 떨림이었습니다. 누군가 제 작품이 들어간 옷을 입었다는 자체가 좋았어요. 더군다나 영부인이라니……. 새롭게 미술이 확장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작가분들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뛸 듯이 기뻤지만 정 작가는 조심스럽기도 했다. 그는 "한편으로는 정치적으로 무관하고 예술의 한 작품일 뿐인데 달리 보는 시선이 있을까 조심스러웠다"며 "이름도 안 밝히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도 김 여사의 착복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정 작가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됐다.
"아무리 아트페어에 나가고 개인전을 해도 만나는 분들은 한정적이에요. 공간과 시간이 한정적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번 이후로 '푸른숲'이라는 작가 명칭으로 저를 연관 지어줄 수 있는 게 생겼어요. '파란색 풍경을 그리는 작가로 이런 사람이 있더라'라는 인식이요. 그리고 제 작업에 좀 더 몰입할 수 있는 힘이 생겼어요."
정 작가는 앞으로도 '푸른 그림'을 그릴 계획이다. 그는 꾸준히 풍경을 관찰하고 재구성해 푸른숲을 그린다. 직접 관찰을 통해서, 아내의 조언을 통해서, 작품을 감상해준 관객의 방명록을 통해서 영감을 얻는다.
"세 번째 개인전에서 한 소녀가 '파란방'이라고 방명록을 남겼어요. 그럴싸하더라고요. 그에 대한 콘셉트의 전시도 생각하고 있어요. 벽면 전체를 푸른 그림으로 채우는 거예요. 갤러리에 푸른 풍경이 가득차 있다면 어떨까요. 이렇게 영감을 툭 주고 가는 게 있어요. 사실 푸른 작품 말고 빨간 것도 있어요. 공개 시기는 미정이지만 언젠간 도전하려고 합니다."
정 작가의 개인전 '그저 바라보기_저스트 루킹(Just Looking)'은 다음 달 5일까지 벽과나사이 갤러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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