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스포츠 도박, 헤어나올 수 없는 중독의 늪
"돈 벌었던 기억이 계속 나 끊기 힘들다." "청소년들도 요즘 많이 한다던데."
최근 현직 프로농구 감독이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프로농구 전 모 감독은 자신의 팀이 큰 점수 차로 패배하는 쪽에 수억 원을 걸어 고의로 진 뒤 많은 배당금을 챙긴 혐의가 불거지며 다시 한번 중독성과 사행성으로 몸집을 키운 불법 스포츠 도박이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문제는 불법 스포츠 도박은 스포츠계 종사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불법 스포츠 도박은 접근성이 뛰어나 일반인뿐만 아니라 대학생, 청소년들에게도 손을 뻗치고 있다.
지난달 28일 <더팩트>는 최근 예방과 근절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지적받고 있는 불법 스포츠 도박 관련, 실제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하고 있는 사람과 그 위험성은 무엇인지 알아봤다.
◆ 청소년도 손쉽게 가입…"24시간 도박 노출"
"굉장히 심각하다" 그의 첫 마디다.
지난 6년 동안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해왔다는 이모(27) 씨는 중독성 등이 생각하는 것 보다 심각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자신은 "양반이다"라고 말한 그는 누구나 쉽게 스포츠 도박에 빠질 수 있다고 말을 이었다.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 씨의 말처럼 불법 스포츠 도박 시장의 규모는 매년 커지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불법 도박 확산 장비 국제 심포지엄'에 따르면 불법 도박 시장의 규모는 100조 원으로 이 가운데 불법 스포츠 도박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지난 2013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불법 스포츠 도박 시장의 규모는 31조 원이다. 2010년 13조 2202억 원에서 3년 새 135.4%나 증가했다.
사실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는 게 어려운 실정이다. 교묘한 홍보와 단속 회피 등 눈속임이 때문이다.
이 씨는 "회원가입에 큰 제약이 없으며, 학생 등 일정한 수입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큰돈을 만질 수 있어 불법 스포츠 도박을 시작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며 "이미 제 친구들은 거의 다 경험이 있으며, 청소년들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씨가 소개해준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접속해 가입을 시도해봤다. 가장 먼저 추천인 확인 절차를 거쳐야 했다. 미리 입수한 정보에 따라 추천인을 적고 확인을 누르니 회원 가입 창이 떴다.
문제는 '접근성'이었다. 기본적인 정보만 기재하면 누구나 쉽게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의 회원이 될 수 있었으며, 심지어 미성년자를 걸러낼 어떠한 시스템도 구축돼 있지 않아 그야말로 무방비였다. '19세 미만의 청소년은 가입을 금지합니다'라는 문구가 무색하게도 이름, 전화번호, 계좌번호, 예금주명 등에 무작위 정보를 기재하는 내내 나이를 확인하는 경우는 결코 없었다. 가입 성공까지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성인과 다르게 자기 통제력이 약한 청소년의 경우 도박 중독에 빠질 위험이 더 크다. 더구나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이용해 언제 어디서든 '베팅'을 할 수 있는 구조였다.
불법 스포츠 도박이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이유는 사행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1인당 하루 베팅액을 10만 원으로 제한하고 있는 합법 스포츠 토토는 이른바 '꾼'들에게 흥미를 끌지 못한다. 특히 '승무패'를 맞추는 단순한 '베팅 방법'에 지루함을 느낀 사람들은 불법 사이트로 몰릴 수밖에 없다.
이 씨는 "합법 스포츠 토토와 달리 시간제한이 없다. 24시간 베팅을 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중독성이 심한 거다. 사실 스포츠 도박이라고 부르기도 뭐하다. 잉글랜드 2부 리그 경기, 이런 거는 평소에 관심도 없지 않으냐. 재미로 돈을 걸고 그 팀을 응원하는 합법 스포츠 토토와 달리 '스포츠'라는 재료만 섞어 놓았을 뿐 단순 도박이나 마찬가지다"고 설명했다.
최근 불법 스포츠 도박을 끊게 됐다는 박 모(28) 씨는 이른바 '사다리 게임'(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홀수 짝수를 맞히는 게임)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다리 게임'을 '극혐'(극한의 혐오)이라고 표현하며 "'사다리 게임'은 5분마다 한 게임씩 진행돼 회전율이 정말 빠르다. 내가 이용했던 불법 사이트의 경우에는 베팅액 한도가 없는 다른 사이트와 달리 100만 원 베팅액 한도를 정해놨다. 근데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5분마다 계속 걸 수 있는데"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에는 사람들의 '사행심'을 부추길 만한 요소가 아주 많았다. '가상경기'뿐만 아니라 야구 '첫 볼넷' '첫 파울' '첫 도루' 팀 맞히기, 두 팀 합한 점수 맞히기, 핸디캡 매치, 심지어 농구는 쿼터별 승리 팀 맞히기도 있었다.
이 씨는 "베팅 방법이 너무나 많아서 처음 시작한 사람들도 빠르고 쉽게 돈을 번다. 그러다 보면 점점 베팅 금액과 시간을 과투자하게 된다. 하지만 또 쉽게 큰돈을 잃게 된다. 예전에 돈을 벌었던 기억이 있어서 도박을 계속하게 된다"며 "그다음부터 절제란 없다. '희열'과 '좌절'을 오가면서 점점 머릿속이 도박으로 가득 차게 된다"고 불법 스포츠 도박의 위험성을 설명했다.
◆ 불법 스포츠 도박, 단속 왜 어렵나?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의 구조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 위험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도박을 끊으려 마음먹은 사람들도 '추천인 포인트'가 발목을 잡았다. 추천인 포인트는 가입 당시 자신의 아이디를 추천한 회원이 도박에서 돈을 잃으면 당사자가 아닌 추천인이 일정 금액 되돌려 받는 형식으로 운영됐다. 즉 남이 돈을 잃으면 내가 돈을 버는 것. 추천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돈이 잃더라도 '포인트'가 쌓여 재기(?)를 노릴 수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따르면 불법 스포츠 도박 관련 신고는 2011년 7951건에서 2013년 4만 6527건으로 약 6배 늘었고, 지난해 경찰이 검거한 사이버 도박 4271건 가운데 불법 스포츠 도박은 2610건(61%)에 달했다. 경찰은 전국에 가입 인원 2000명이 넘는 대규모 사설 스포츠 도박 운영 업체가 최대 20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상황이 이렇지만 단속은 쉽지 않다. 불법 사이트 서버는 감시를 피하기 위해 대부분 해외에 있다. 또 사이트 주소를 자주 변경해 회원들끼리만 정보를 공유하는 등의 방법으로 단속을 피하고 있다.
사이버 경찰 관계자는 "예전에는 국내에 서버를 두는 불법 사이트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불법 도박 사이트가 해외에 있다고 보면 된다. 추적이 쉽지 않은 제3국에 서버를 설치하다 보니 아무래도 단속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최근에는 알음알음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만 정보를 공유한다. 추천인이 반드시 있어야 사이트를 열어 볼 수 있다. 추천인 아이디를 모르는 경우 확인하기 어렵다. 계속 단속을 해오다 보니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치밀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 운영이 점점 전문화되고 분업화될수록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와 함께 도박중독자들에 대한 세심한 관심과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관계자는 "청소년들까지 도박에 노출돼 있다는 점은 큰 문제다. 또 도박중독자는 대처방법, 충동조절 교육 등 치료와 상담을 받아 극복하려는 적극성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 만약 도박중독자 본인이 중독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치료를 거부할 경우, 가족들의 역할도 중요하다"며 도박중독자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rock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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