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 여부, 주인의 감(感)으로?'
지난달 26일 서울 봉천동 한 모텔. 성매매를 목적으로 찾은 모텔에서 A(14)양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안타까움과 동시에 드는 의문. 청소년들은 출입할 수 없는 숙박업소를 중학생인 A 양이 어떻게 들어갈 수 있었을까.
사실 모텔은 언제부턴가 청소년들이 '조건만남' 등을 통해 성매매하는 장소로 쓰이고 있다. 게다가 한창 성적 호기심이 많은 청소년은 무인텔((자판기에 숙박비를 내고 입실하는 숙박업소)을 드나드는 방법을 공유하며 호시탐탐 출입을 노리고 있다.
더불어 도심 외곽에 집중됐던 무인텔은 도심까지 파고들었다. 무인텔은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을 위해 폐쇄회로(CC)TV만으로 손님을 확인한다. 청소년들은 무인텔의 이 같은 허점을 교묘하게 노리고 있다.
또 무인텔(모텔 등 포함)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의 장소로 악용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2012년 가출 청소년 39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성매매 피해 청소년의 공간패턴 연구'에 따르면 성매매 장소는 모텔이 65.8%로 가장 많았으며 노래방(17.1%), 자동차(6.6%) 순이었다.
취재진은 최근 일어난 사건과 여성가족부의 통계에 주목했다. 도대체 얼마나 쉬운 걸까. <더팩트> 취재진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 있는 무인텔과 모텔들을 찾아 신분증 검사 여부를 확인했다. 좀 더 사실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어리고 앳된 외모의 인턴 여기자와 동행했다.
◆ '청소년 표적' 무인텔, 무방비 상태
종로 X가역 인근 모텔촌(村). 온통 숙박업소 네온사인이 빛을 뿜는다. 때마침 젊은 남녀가 다정히 우산을 쓰며 좁은 골목으로 향한다. 연인들은 대화를 나누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주변을 의식한 듯 사방을 한번 둘러보고 이내 한 모텔로 들어간다. 이들이 찾은 장소는 바로 무인텔.
이들은 무인텔이 익숙한 듯 자동결제기 앞에 서더니 능숙한 솜씨로 결제를 마쳤다. 입장부터 계산까지 불과 2분 남짓 소요됐다. 짧은 시간이다.
취재진도 직접 해보기 위해 무인결제기 앞에 섰다. 현금과 카드로 계산하는 방법과 결제 순서를 안내한 그림이 눈에 띈다. 결제기 옆에는 객실 내부와 가격을 보여주는 화면이 있다. 이를 참고한 뒤 마음에 드는 빈방을 선택하고 '대실' 또는 '숙박'을 결정하면 된다. 빈방 여부는 무인결제기안에 카드의 유무로 알 수 있다.
무인결제기에는 나름 미성년자를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 투입구가 있다. '모텔의 성질상 손님들이 신분증을 맡기고 싶을까'라는 생각에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홀로 폐쇄회로(CC)TV 화면을 보고 있는 무인텔 관계자는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신분증 안 넣으셔도 돼요."
결제기 역시 신분증을 투입하지 않아도 결제할 수 있다. (청소년으로 보일 수 있도록) 일부러 여기자는 쭈뼛쭈뼛 행동했지만, 담배를 피우러 나온 관계자는 신분증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몇 살이냐고 묻지도 않았다.
업주가 다른 업무를 보거나 부재중일 때는 미성년자 확인 자체가 불가능하다.
◆ "단속은 없다…어려 보일 때만 검사할 뿐"
계산대에 직원이 있는 경우에는 어떨까. 다른 모텔보다 외관이 고급스러운 A 모텔을 찾았다. 모텔 직원은 "대실은 3만 원이요"라고 말한다. 이미 그의 손은 일회용품 팩을 건네려 하고 있다. 여기자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당연히 신분증을 요구하거나 확인도 없다.
도대체 왜 신분증 확인을 하지 않는 걸까. 신분증 확인은 언제 하느냐고 묻자 직원은 "손님들에게 신분증을 달라고 하면 불쾌해 한다. 그 때문에 어려 보일 경우에만 요구한다"며 "오랫동안 일해서 '민짜'(미성년자)는 금방 안다"고 설명했다.
뜬금없는 질문에 의심이 들었는지 여기자를 보더니 "미성년자는 안돼"라고 말한다.
좁은 골목 어귀를 돌아 더 후미진 곳에 있는 B 모텔은 손님 받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대실 2시간에 1만 원에 줄게요"라며 다른 모텔보다 싼 가격을 제시했다. 이곳 역시 여기자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B 모텔 주인은 "솔직히 '장급'(여관·여인숙)은 잘 꾸며 놓은 모텔에 비해 손님이 적을 수밖에 없다"라면서 "어려 보여도 신분증을 보여달라 하면 손님이 싫어하잖아. 손님을 놓칠 수도 있어서 신중할 수밖에 없어"라고 퉁명스럽게 말한다.
이어 "큰 모텔 사정은 잘 몰라도 외진 모텔까지 단속하지는 않지만, 미성년자는 들여보낼 수는 없다"라고 강조하며 TV로 눈길을 돌린다.
◆ 신분증 요구, 법적 근거 없어
이날 취재진은 서울 시내 약 10여 곳의 모텔을 들렀지만, 단 한 곳도 신분증을 요구하지 않았다. 모텔 업주들이 토로하는 '성인처럼 보이는 손님에게 신분증을 요구하는 것은 불필요한 과정'이라는 데는 일정 부분 이해가 됐다. 하지만 '누가 봐도 성인' '딱 보면 안다'는 모텔 측의 미성년자 찾기 노하우에는 전혀 믿음이 가지 않았다. 미성년자의 모텔 출입은 '복불복'인 셈이다.
무인텔과 모텔 등은 청소년들의 혼숙과 탈선을 부추기고 '은밀한 장소'로 악용돼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낳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업주들의 항변이 설득력을 얻기는 부족해 보였다.
무인텔은 과거에도 미성년자 출입에 대한 지적을 받은 바 있다.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최규성 의원은 지난 2010년 '공중위생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무인텔 이용객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법률을 마련해 미성년자의 출입을 제한하고 탈선장소나 은닉처가 되는 것을 방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법안은 국회에 계류 끝에 자동폐기됐다.
미성년자가 숙박업소에 접근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법적 근거가 없어 사실상 업주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단속기관은 손님들의 사생활 침해 등을 이유로 단속하기 어렵다는 견해다. 경찰 관계자는 "객실을 하나하나 돌며 단속을 벌이는 것은 사생활 보호 측면에서 애로점이 있다"며 "순찰을 강화해 미성년자가 숙박업소를 찾는 것을 막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청소년보호법 제2는 '불특정한 사람 사이의 성적 행위가 이뤄지거나 유사한 행위가 이뤄질 우려가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업장소'를 청소년 유해업소로 규정하고 있다. 또 여성가족부는 청소년 출입고용금지 업소로 지정하고 업주와 종사자는 출입자의 나이를 확인해 청소년들이 업소에 출입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아울러 청소년을 남녀 혼숙하게 하는 등 풍기를 문란하게 하는 영업행위를 하거나 이를 목적으로 장소를 제공하는 행위에 대해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더팩트ㅣ종로=신진환 기자 yaho1017@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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