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철영 기자] ‘너희들이 한만큼만 하고 더 하진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손, 발, 머리, 순서 맞지?’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서 남자 주인공 김수현(이병헌)이 던진 말이다. 최근 전 국민을 분노로 몰아넣고 있는 ‘김해 여고생 살인 사건’과 ‘28사단 윤 일병 사망 사건’의 피해자 부모라면 영화 주인공처럼 가해자들을 상대로 자식에게 가한 만큼의 고통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의 부모들은 영화처럼 자식을 사망하게 한 가해자에게 복수의 칼날을 들이댈 수는 없을 것 같다. 인간이기 때문에 눈물과 분노 그리고 자식에 대한 미안함을 가슴에 안은 채 평생을 살아갈 수밖에 '상식적인'시민이기 때문이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가해자들의 엽기적인 행각은 온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다.
4일 한국일보의 단독보도로 알려진 ‘김해 여고생 살인 사건’은 그 과정이 너무나 충격적이다. 성매매를 시키는가 하면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된 시체의 얼굴에 휘발유를 부어 불을 지르는 등 인간이 이렇게 잔인한가를 보여주는 끔찍한 사건이다. 더욱이 이 사건에 10대 청소년 4명도 동참한 것으로 드러났다.
과연 이 10대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범죄의 심각성을 알고나 있었을까?
철없는 10대들이라고 치부하기엔 이번 사건은 너무나 중대해 ‘자비와 용서’가 통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달 31일 군인권센터에 의해 드러난 28사단 윤 일병 사망 사건의 가해자인 선임병들 또한 김해 여고생 살인 사건 가해자들과 다르지 않다. 윤 일병이 죽기 직전까지 폭력을 행사한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치약을 먹이고 성기에 안티푸라민을 바르고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핥아 먹게 하고 심지어 쓰러진 윤 일병이 꾀병을 부린다며 폭행한 이들이 인간이었을까?
김해 여고생 살인 사건이나 28사단 윤 일병 사망 사건의 가해자들을 보고 있자니 고대 중국의 유학자 순자(荀子)가 주창한 ‘성악설(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원래 악(惡))’이 떠올랐다.
순자가 성악설을 주창한 목적은 사람들에게 수양을 권해 도덕적 완성을 이루고자 했던 것이다. 성악설은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감성적(感性的)인 욕망에 주목하고, 그것을 방임해 두면 사회적인 혼란이 일어나기에 ‘악’이라는 것이며, 따라서 수양은 사람에게 잠재해 있는 것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가르침이나 예의에 의해 후천적으로 쌓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내용이다.
순자의 성악설에 따르면 두 사건의 가해자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감성적 욕망을 누르지 못해 ‘악행’을 저질렀다.
또 영화와 드라마, 게임 등의 폭력성이 가해자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의 폭력성이 과연 가해자들에게 영향을 주었을까(?) 의심할 수도 있다.
캐나다 심리학자 앨버트 밴듀라와 동료들(Bandura, Ross, & Ross, 1961)의 ‘보보 인형(Bobo doll)’ 실험 결과를 보면 폭력의 노출 정도가 인간의 폭력성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다. 밴류라는 보보 인형 실험을 통해 공격성이 모방으로 학습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즉, 과도한 폭력성에 노출됐다면 모방을 통해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미디어 폭력에 노출되는 것이 후의 공격성 행동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수많은 연구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된 실험이 됐다.
두 사건 가해자들의 행동은 분명 ‘악’ 그 자체였다. 그 모습에 전 국민이 분노했고 경악했다. 사건의 가해자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은 없었다. 분명 두 사건은 ‘도덕’과 ‘윤리’ 그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다양성의 ‘존중’보다 개인과 집단 이기주의가 빚은 참극으로 보아야 한다.
순자의 가르침처럼 인간의 감성적인 욕망에 주목하고, 그것을 방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간과할 경우 내 자식이 제2의 '김해 여고생 살인 사건', '28사단 윤 일병 사건'의 피해자나 가해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건팀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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