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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K-극장③] 무너진 원주 아카데미극장, 그럼에도 시위하는 이유

  • 연예 | 2023-11-22 00:00

10월 28일 강제 철거→지난 12일 시민대행진 열려
"극장은 사라지지만, 민주주의는 무너져서는 안 되죠"


원주아카데미극장은 1963년 개관 이후, 가장 오랫동안 한자리를 지키고 있던 대형 단관극장이다. /아카데미친구들, 원주=박지윤 기자
원주아카데미극장은 1963년 개관 이후, 가장 오랫동안 한자리를 지키고 있던 대형 단관극장이다. /아카데미친구들, 원주=박지윤 기자

코로나19로 인해 한 차례 얼어붙었던 한국 영화계는 관람료 인상과 OTT 플랫폼의 성장 등으로 결국 역대급 위기를 겪고 있다. 이 가운데 60년 역사를 지닌 원주 아카데미극장이 무너졌다. 하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힘을 모아 목소리를 내고 있고, 얼마 남지 않은 단관극장은 저마다의 생존 방식을 찾으며 그 자리를 지키려 한다. 이에 <더팩트>는 대형 멀티플렉스가 익숙한 세대에게는 정보를, 단관극장이 그리운 세대에게는 향수를 선사하기 위해 추억의 K-극장을 되짚어봤다.<편집자 주>

[더팩트|원주=박지윤 기자]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대형 단관극장으로 남다른 의미를 지닌 원주 아카데미극장이 무너졌다. 하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함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미 철거된 극장을 되살릴 수 없지만 이 사태가 당연하게 여겨져서도, 두 번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나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강원도 원주시 평원로에 위치한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1963년 개관 이후, 가장 오랫동안 한자리를 지키고 있던 대형 단관극장이었다. 하지만 지난 12일 <더팩트> 취재진이 해당 장소에 갔을 때는 원주 아카데미극장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원주아카데미극장이 10월 28일 철거됐다. 해당 부지에는 잔해가 쌓여 있었고, 안전을 위해 설치된 공사 가림막에는 이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의견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원주=박지윤 기자
원주아카데미극장이 10월 28일 철거됐다. 해당 부지에는 잔해가 쌓여 있었고, 안전을 위해 설치된 공사 가림막에는 이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의견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원주=박지윤 기자

원주시 중앙동과 평원동 사이에 위치한 버스정류장 앞 300평(1014㎡) 부지에는 이미 무너져 내린 원주 아카데미극장의 잔해물만 쌓여 있었다. 안전을 위해 설치된 공사 가림막에는 '건축물 철거공사 및 폐기물 처리 공사' 안내 문구와 함께 이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의견이 곳곳에 붙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바로 옆에 위치한 민속풍물시장 상인들은 공사 가림막이 익숙해진 듯, 저마다 자리를 잡고 물건을 진열해 장사하고 있었고 시민들도 자연스럽게 통행하고 있었다. 길 건너편에는 '원주시는 시정토론 여론조사 실시하라'는 문구가 담긴 배너가 있었다.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멀티플렉스에 밀려 2006년 폐업됐지만, 원주시민을 비롯해 많은 문화예술인이 공간의 부활을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2016년 원주도시재생연구회와 원주영상미디어센터가 '아카데미 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2020년 아카데미극장 보존추진위원회 '아카데미의 친구들'이 나서서 '안녕 아카데미' 행사를 열었다. 이들은 아카데미극장의 활용 방안을 고민했고 독립영화 상영과 전시회, 포럼 등을 개최하며 공간 보존을 위해 힘써왔다.

지난 12일 '극장이 무너져도 시민은 무너지지 않는다'를 주제로 '원주아카데미극장 위법철거 규탄 시민대행진'이 열렸다. /원주=박지윤 기자
지난 12일 '극장이 무너져도 시민은 무너지지 않는다'를 주제로 '원주아카데미극장 위법철거 규탄 시민대행진'이 열렸다. /원주=박지윤 기자

이후 원주시가 2020년 아카데미극장 및 주변 토지매매협약을 체결했고, 2022년 1월 매입하면서 극장 보존 쪽으로 무게가 실렸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원강수 시장이 취임한 후, 원주시의 기조가 바뀌었다. "충분한 숙의와 여론조사를 거치겠다"고 한 원 시장은 "아카데미극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야외공연장과 주차장을 조성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원주 아카데미극장 건물이 정밀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았고, 석면 지붕에 따른 인근 주민의 건강 문제와 전통시장의 활성화, 리모델링과 보수유지 비용이 높다는 이유가 이를 뒷받침했다. 이에 시민사회와 영화계가 반대의 목소리를 냈지만, 10월 28일부터 강제 철거가 진행됐고 현재 원주 아카데미극장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이에 12일 원주시 일대에서는 '극장이 무너져도 시민은 무너지지 않는다'를 주제로 '원주아카데미극장 위법철거 규탄 시민 대행진'이 열렸다. 영하로 떨어진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이날 대행진에는 약 100명의 인원이 모였다.

이들은 '민주주의 파괴자 불통시장 원강수는 물러가라' '공정과 상식 없는 위법 행정, 불통 시장 규탄한다'라는 문구가 꽂힌 형형색색의 풍선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오후 2시 원주문화원을 시작으로 원주 의료원 사거리를 지나 원주아카데미극장 앞까지 약 4시간 동안 행진하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힘을 모았다.

12일 열린 대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은
12일 열린 대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은 "철거 과정에서 합리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단순히 극장이 무너진 게 아니라 민주주의가 무너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주=박지윤 기자

이날 대행진을 함께 한 40대 남성 A 씨(원주 거주)는 <더팩트> 취재진에게 "극장이 무너졌다는 건, 민주주의가 무너졌다는 의미기도 하다"며 "극장이 무너질 때 마음도 같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내비쳤다.

A 씨에게 원주아카데미극장은 특별한 공간이었다. 영화 관람뿐 아니라 졸업식을 비롯해 여러 문화 행사가 열린 곳이었고 할아버지, 아버지와 함께 3대가 공통된 기억을 갖고 있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이에 A 씨는 "원주시에 이런 공간이 별로 없다. 후대에게 연결해 줄 수 있지 않았느냐"라며 "40년 후에 100주년이 되는 곳을 4년 임기 시장이 없애버린 것"이라고 분노했다.

그런가 하면 원주 아카데미극장에 추억이 없는 20대 여성 B 씨(서울 거주)도 이날 대행진에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B 씨는 "OTT 플랫폼이나 멀티플렉스보다 독립영화관이 더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원주까지 오게 됐다"며 "안 그래도 이런 문화가 퇴보하고 있는데 굳이 역사적인 건물까지 철거해야되나 싶다"고 대행진에 참가한 이유를 전했다.

손녀와 함께 원주 아카데미극장을 방문하고 싶었다는 50대 여성 C 씨(원주 거주)는 "철거 과정에서 합리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며 "시민의 추억과 역사가 깃든 공간을 부숴버렸다. 단순히 오래된 건물을 보존하자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의 기억 유산을 지키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미 60년의 역사가 깃든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무너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시간과 돈을 쓰며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분명했다. 철거 과정에서 합리성이 아닌 일방적인 행정력만 존재했고, 더 나아가 민주주의를 잃었다고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극장 부지는 어떻게 재탄생할까. 원주시는 버스킹과 작품 전시회 등이 가능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원주시 관계자는 "지역 문화예술인이 참여할 수 있는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원도심 상권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전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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