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겸손함보다 자부심으로 똘똘
[더팩트ㅣ이한림 기자] 데뷔한 지 10년도 되지 않았지만 김태리만큼 필모그래피가 알찬 배우가 있을까. 출연한 작품마다 성공가도를 달리는 대세 배우로서 누구보다 화려하고 세련된 연예계 생활을 누릴 것이라는 사적 참견이 대중들의 보편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김태리는 의외인 면이 많은 배우다. 본인도 이 부분은 인정한다. 김태리는 "의외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키가 작은 줄 알았는데 꽤 크고, 진중한 줄 아는데 보시다시피 그렇지도 않다"며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건방지게 보일 수도 있지만 큰 성공을 거둔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촬영을 마치기 전까지 데뷔한 이후로 단 한차례도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면서 "이제는 자부심을 갖고 즐기겠다"고 말한다. 솔직하면서도 당당했다. 그런 모습 때문일까. 기자의 눈에도 그의 말은 진솔함으로 와닿았다. 최동훈 감독 영화 '외계+인 1부'를 통해 천둥을 쏘는 여인 역을 맡아 스크린에 돌아온 김태리의 얘기를 직접 들어봤다.
-촬영을 마친 후 2년 만에 영화가 개봉하게 됐는데. 영화를 본 소감이 궁금하다.
세대교체라고 생각했다. 최동훈 감독님과 일했던 사람은 너무나도 슈퍼스타셨고 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사이즈였던 것 같다. 제가 제 입으로 말하긴 조금 그렇지만 그런 큰 감독님이 이런 젊은 배우들의 얼굴을 자신의 영화에서 사용하고자 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게 배역이 들어온 게 너무 행복했고 또 행복했다.
-시사회 때 영화를 보고 주변 반응은 어땠나. 영화가 친절하다는 의견도 있으나 장르 특성 상 난해하다는 시각도 있다. 또 김태리 배우가 출연했던 같은 SF 장르 영화 '승리호'와 비교도 많이 되는 것 같은데.
언론배급 시사회 때 기자님들이 보시는 관에서 함께 보고 싶었다. 너무 재밌어서 크게 웃어드리고 물을 흐려주고(?) 싶었는데 아쉬었다(웃음).
영화가 친절하다면 굉장히 친절할 수 있고 난해하다고 하면 2~3번 봐야하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난해하고 계속 궁금해하는 지점이 생기는 쪽이라면 다시 봤을 때 새로운 게 보인다. 꾸준히 다시 보게 하는 것도 영화의 매력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1부보다 2부가 무조건 재밌을 것이다. 1부는 세계관이나 인물들의 탄생비화, 구조의 설명이 필요했다. 2부는 이게 모두 연결돼서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되니 훨씬 재밌지 않을까 싶다.
'승리호' 때는 마냥 신기했다. '한국영화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이제 못 할 것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참 좋았다. SF장르는 배우에게 의존하지 않고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연기를 하면서 알쏭달쏭한 부분이 생기기도 하는데 기술이 있으면 이런 부분이 없어진다. 촬영방식도 마찬가지고 직접 기술로 시연되니깐 배우로서 명확하게 이미지를 갖고 연기할 수 있는 그런 게 생긴다. '외계+인' 이후에는 또 달라지지 않을까. 너무 좋다.
-류준열 김우빈 염정아 조우진 김의성 등 김태리와 접점이 꽤 있는 배우들과 함께 호흡을 맟췄다.
한 번이라도 같이 해본 배우와 합은 역시 다르다. 저희가 촬영을 오래 했지만 한 달은 고려시대, 한 달은 현대 이런 식으로 촬영을 했다. 그래서 피곤하지 않았고 촬영이 없을 때는 현장에 놀러가 응원해주고 만남을 많이 가졌다. 이게 감독님의 파워가 아닌가 생각한다. 다 같이 모여있을 때가 많았다.
특히 염정아 언니는 정말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워너비이자 롤모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태어난다면 저렇게 태어날 수 있을까. 너무너무 멋있는 사람이다. 자신감이나 당당함, 제가 지금 겸손함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너무 반짝반짝 느껴졌다. 촬영장에서는 모니터도 안하신다. 말하는거나 연기하는거나 너무 이면이 없는 사람같아 보인다.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다.
-겸손함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라.
예전엔 아니었는데 지금은 저도 그런 지점에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연기를 잘한다 못한다를 떠나서 나는 내가 한계지점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 끌어올려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 전에는 최선을 다했냐고 자문하면 그렇게 답하지 못했다. 이제는 일에 대한 프라이드가 생긴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내 태도에 대해서는 겸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자리에서건 두렵지가 않고 자연스러운 태도로 사람들을 대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나를 일부러 낮추거나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려 한다. 그 사람이 누구든 간에 인간 대 인간으로 충분히 나눌 수 있구나 생각한다.
-김태리가 성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지금은 어떤 기분인 지도 궁금하다.
태어나서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하고 난 직후까지 너무 오랜 시간동안 나를 낮추고 남을 배려하고 이런 세월을 살아왔다. 작품에서 파생되는 모든 것 때문에 정말 힘들었던 시기고 툭 치면 눈물이 날 시기였기도 했다. 너무 쉴틈없이 달려왔다고 해야할까. 현실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었다. 아무리 좋은 동료들과 잇어도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해 힘들지 않았나 싶다.
'승리호'를 찍고 '외계인'을 찍고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찍었는데 그 작품을 하고 나서 4~5개월 동안 쉬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이 기간 동안 만난 사람이 평생 만난 사람보다 많다. 예전에는 쉴 때 집에만 있고 잠으로 해결했는데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 사람에게 찾는 에너지가 힐링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고 말한 것 같은데 제 모든 작품 중에서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가장 소중하다. 지금껏 만나보지 못했고 기대조차 못했던 감정, 하면서 만난 인연 이런 것들을 얻었다. '외계+인' 인터뷰를 하러 와서 공교롭게도 '스물다섯 스물하나'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은데 그만큼 진심으로 소중한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외계인은 어떤 의미인가?
온전히 사랑받는 법에 대해 알게 해준 작품이지 않을까. 그 동안 사랑을 제대로 받을 줄 몰랐던 것 같다. 지금까지 잘 왔던게 중심이 잘 잡혀 있고 단단하고 포장을 많이 해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저는 사랑을 제대로 받을 줄 몰랐던 사람이었을 뿐이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너무 큰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이 제 마음을 온전하게 건드렸다. 사랑 가득한 현장이었다(웃음).
저는 제 작품을 자신 있게 세상에 떠들고 다니지 않았다. 홍보할 때야 열심히 했지만 늘 제 연기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늘 방어적인 태세로 임했는데 '외계+인'은 편집본을 보기 전부터 세상에 너무너무 소개하고 싶고 너무 자랑스럽고 행복하게 본 작품이다.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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