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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나의 연예공:감] '야한 장면 촬영'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고?

  • 연예 | 2021-07-14 05:00
'미투 운동'을 촉발한 할리우드 영화계 거장 하비 와인스타인이 지난해 뉴욕 법원에서 성폭행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로스앤젤레스(미국)=AP.뉴시스
'미투 운동'을 촉발한 할리우드 영화계 거장 하비 와인스타인이 지난해 뉴욕 법원에서 성폭행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로스앤젤레스(미국)=AP.뉴시스

'할리우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국내 도입 필요한 때  

[더팩트|원세나 기자]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다. '할리우드에서 안전한 섹스 신 촬영을 돕는 여성들'이라니. 소위 말하는 '섹시한 제목'이다. 역시 '제목의 힘'인 것일까. 홀린 듯 클릭했고, 단숨에 읽어버렸다.

영국 BBC NEWS는 지난해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할리우드에서 안전한 섹스 신 촬영을 돕는 여성들'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Intimacy coordinators)'의 세계를 조명했다.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란 영화 드라마 연극 등 작품 내 성(性)을 다루는 장면의 연출을 돕는 조력자로, 포옹과 키스에서부터 신체 노출이나 성행위까지 제작진과 배우들이 민감한 장면을 구성할 수 있게 도울 뿐 아니라 이를 감독하는 일을 담당한다.

기사는 미국 메이저 방송사가 제작하는 TV 시리즈 내 성행위 장면을 감독하는 알리샤 로디스, 뉴욕 시내의 극장에서 무대 위 성행위 연기를 연출하는 첼시 페이스 등 현직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를 소개하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이제 이 일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인 직업 중 하나가 됐다"고 설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움직임은 영화계 거물 하비 와인스타인에 대한 폭로로 시작된 '미투 운동'이 시발점이 됐으며 이후 할리우드에선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현재 50여 명의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활동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최근 몇 년 사이에 미국과 영국에서는 그 수가 10배 정도 늘어났다.

기사는 또한 산업 내 자리 잡은 '권력 관계'와 촬영장 안의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일어나는 배우들, 특히 여성 배우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불합리한 처사를 꼬집고 이들의 보호와 안전을 위해 현장에서 활동 중인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들의 활약상을 자세히 소개했다. 그들은 각 현장 경험을 통해 다양한 토론과 논의를 거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으며 조직 또는 단체를 만들어 영향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라트비아에 체류 중이던 김기덕 감독은 지난해 12월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세계 3대 영화제(칸·베를린·베니스)에서 상을 휩쓴 그였지만 성 추문과 '미투' 논란 속 끝내 타지에서 숨을 거뒀다. /더팩트 DB
라트비아에 체류 중이던 김기덕 감독은 지난해 12월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세계 3대 영화제(칸·베를린·베니스)에서 상을 휩쓴 그였지만 성 추문과 '미투' 논란 속 끝내 타지에서 숨을 거뒀다. /더팩트 DB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의 입지가 다소 애매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기사는 지적하며 이러한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구조적인 변화와 함께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훈련받은 인티머시 전문가는 물론 인티머시에 대해 자각하는 배우들이 늘어나면 이 산업도 달라질 것으로 전망하며 코디네이터의 풀(pool)이 더욱 다양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숨에 읽어버린 것 치고 짧지 않은 길이의 이 기사는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며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남겼다. 자극적인 제목에 이끌려(?) 기사를 선택한 것이 조금은 민망할 정도로.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비단 기자뿐만은 아니었나 보다.

기사는 최근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 등을 통해 공유되며 보도된 지 1년여가 훨씬 지난 시점에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대부분 "정말 좋은 변화고 움직임이다"라는 반응을 보이는 네티즌들은 "국내 도입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덧붙인다.

국내에서도 '미투 운동'이 활발히 이뤄지며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추악한 면모들이 대중에게 충격을 안긴 바 있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를 공개하며 고통을 이겨내려 애썼고 뻔뻔한 얼굴로 각계각층에서 활동하던 가해자들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업계를 떠나거나 자숙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 가운데 몇몇 케이스는 끝까지 상반된 주장을 펼치며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분을 어렵게 했고, 여전히 속 시원한 결론에 닿지 못한 경우도 있다.

섣부른 판단으로 자칫 피해자와 가해자를 뒤바꿀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의 존재는 유의미하다. 또한 그에 앞서 그들의 가장 기본적인 존재 이유는 권력 앞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잠재적 피해자들에 대한 안전과 보호를 위한 것이다. 이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성적인 비행을 막으려는 최소한의 노력이다.

연출자와 배우만 알 수 있는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사전에 논의하고 철저하게 계획해서 상호협의 아래 정해진 연기가 펼쳐지는 현장은 상상만으로도 벅차다. 물론 현실은 아직 요원하다. 하루빨리 국내에서 인티머시 전문가들을 만나고 싶다.

wsena@tf.co.kr

[연예부 | ssent@tf.co.kr]

라트비아에 체류 중이던 김기덕 감독은 지난해 12월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세계 3대 영화제(칸·베를린·베니스)에서 상을 휩쓴 그였지만 성 추문과 '미투' 논란 속 끝내 타지에서 숨을 거뒀다. /더팩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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