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블루'라는 단어가 생겨난 지도 어느덧 1년이 넘어섰다. 그 우울감을 해소할 음악을 만들던 사람들마저 '생존'을 외치다 지쳐 하나둘씩 떠나간다. 북적이던 '젊음의 거리' 홍대 일대는 어느덧 음악이 멈추고 한산해진 분위기다. <더팩트>는 이제 막 그곳을 떠났거나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위기에 처한 대중음악계의 현실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생계 위해 일용직·배달·대리운전으로
[더팩트 | 유지훈 기자] 많은 음악이 치유라는 키워드로 소비된다. 무겁게 내려앉은 분위기를 띄우고 때로는 형용하기 힘든 우울감마저 능히 떨쳐낸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전국민이 힘들어해 음악의 힘이 더 절실하다. 하지만 그 음악을 들려주던 사람들의 삶에 요즘 빨간불이 켜졌다. 코로나 여파로 그들이 땀을 흘릴 무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공연기획자 천인우 씨는 최근 새벽마다 인력사무소로 향한다. 건설현장에서의 고된 노동을 끝낸 후에도 휴식은 잠시다. 저녁 시간대 밀려든 주문 음식을 배달하고 이후에는 술을 마신 사람들을 대신해 운전대를 잡는다. 하루를 꽉 채웠음에도 그는 마음이 허하다고 한다. 공연기획사 브라소닛의 대표였던 그는 지난해 시작된 코로나19 여파에 회사를 닫았다. 일용직 건설노동, 음식 배달, 대리운전은 이제 그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법이 됐다.
"확진자가 줄어서 공연을 기획하면 갑자기 대유행이 일어나고, 그런 희망 고문이 계속됐어요. 사전 기획부터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게 공연인데 취소 통보 한 마디로 모든 게 무산됐죠. 작년에는 갑자기 취소되고 아무 돈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어요. 버티고 버티다가 최근에 회사 문을 닫았어요. 생계 때문에 이런저런 일을 알아봤는데. 그래도 한 회사의 대표였던 사람이니 어디에 들어가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브라소닛은 2014년 1월 설립돼 이듬해부터 조수미, 나윤선, 양희은, 최백호, B.M.K 등 쟁쟁한 뮤지션들의 공연을 선보였다. 또한 연주자들의 합이 중요해 꾸준한 연습이 유지돼야만 하는 재즈빅밴드의 명맥을 잇는 '브라소닛 빅밴드'의 정기 공연도 진행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공연을 할 수 없게 됐다. 적자는 계속됐고 공연을 기획할 때마다 대중의 냉대를 마주해야 했다. 함께 고생해왔던 직원 다섯 명에게 퇴직금을 쥐어주고 회사를 접는 것이 천인우 씨에게는 최선이었다.
"사람을 모으는 게 직업이었던 거죠. 빅밴드를 운영하니까 연습조차 사람을 모아야 했어요. 그런데 그 일을 하지 말라고 한다는 게 참 야속하기도 하고, 떼라도 쓰고 싶고 그랬어요. 저도 가정이 있는데 발버둥 쳤던 거 같아요. 저 같은 사람 정말 많죠. 제 주변 사람들은 업계를 완전 떠난 경우가 많아요. 공장에 들어간 친구도 있고 갑자기 열쇠 수리공을 한다는 친구도 있고. 저는 아직 미련을 버리진 못했어요. 올해 들어 제안이 와서 조금씩 공연을 준비 중이에요."
현재 대중음악계에는 수많은 천인우 씨가 있다. 그와 같은 공연 기획자부터 음향·조명 엔지니어, 장비 대여업체, 음악을 선보이는 뮤지션까지 무대를 위해 했던 일은 다르지만 현재의 삶은 대동소이하다. 적자를 감내하며 버티거나, 완전히 다른 일을 찾아 나서거나, 혹은 잠깐 업계를 떠나 당장의 생계를 유지하는 데 급급하다. 다들 업계가 정상화되길 희망하고 있지만 이미 그들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았다.
남철호 씨는 지난해 초부터 업계 동료들의 연락이 점차 뜸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해 6월 말 자신과 같이 음향기기 대여 사업체를 운영하던 A씨의 부고를 접했다. 그와 A씨는 한 공연 기획사로부터 일을 받는 경쟁자였지만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고충을 나누며 친분을 쌓았다. 일을 주던 공연 기획사의 운영이 멈춰 힘들었던 시기, A씨의 소식을 듣고 그는 충격에 휩싸였다.
"형님이 먼저 '어차피 같은 일 하는 사람이니까 친하게 지내자' 하시면서 손을 내밀었어요. 제가 일을 받으면 형님 일이 없어지는 구조라서 경쟁 관계인 제가 싫을 법도 한데 살갑게 대해주셨어요. 소식을 듣고 믿기지가 않았죠. 동료들에게 상황을 전하고 장례식장에 갔어요. 동질감이 커서 그런지 펑펑 울었어요. 들어보니까 급한 마음에 사채에 손을 대셨대요. 아직도 그 생각하면 황망하고 씁쓸하고 그래요."
많은 음향, 조명 대여업체가 빚을 떠안은 채 사업을 시작한다.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는 고가의 장비 여러 대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A씨도 마찬가지였다. 더 좋은 서비스를 위한 투자가 발목을 잡았고 '금방 좋아지겠지'라는 희망이 그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떠밀었다. 남철호 씨는 연락이 닿지 않는 수많은 동료가 A씨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다.
"이게 저희처럼 기기 대여를 하는 사람들만의 상황이 아니에요. 저희야 사업체가 있으니까 그걸 근거로 나라에서 지원금이라도 받죠. 지방 행사 무대에서 콘텐츠를 직접 보여주던 마술사, 진행자, 댄서, 가수 이런 분들은 말도 못 해요. 다들 열정을 가지고 적은 돈이라고 받아 가며 생계를 유지하던 분들이었어요. 배달하고, 청소하고, 요즘은 술도 늦게까지 못 먹으니까 대리운전 일도 예전보다 줄었대요. 하나같이 억지로 이 악물고 버티고 있는 거예요."
남철호 씨 역시 최근 코로나 여파를 버티지 못하고 회사 문을 닫았다. 모든 음향 장비를 처분했지만 지금껏 버티며 쌓은 빚은 여전히 남았다. 되려 폐업 신고를 하니 얼마 안 되던 정부 지원금까지 끊기고 말았다. 서울시장 유세 현장에 몰려 있는 인파를 보고 분노했던 지난 4월, 최근 어떤 서류에 자신의 직업을 '무직'이라고 적었던 순간 등을 이야기하며 씁쓸해했다.
"유지가 어려워서 결국 폐업한 사람들에 대한 지원은 전무해요. 그게 참 아쉽고. 유독 공연업계에만 과한 잣대를 세우는 이유도 잘 모르겠고. 그래도 상황이 좋아지면 돌아오고 싶어요. 그냥 음악이 좋고 예술이 좋고 공연이 좋아서 했던 일이에요. 이제 장비는 팔아서 없으니까 몸으로 뛰는 일이나 음향 엔지니어로 일하지 않을까요. 다들 각자 힘들게 버티고 있는데 빨리 좋아져서 현장에서 봤으면 좋겠어요. 건강한 모습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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