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저 ㄱ씨가 원로배우 이순재로부터 '갑질'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사태가 수습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신현준의 전 매니저 ㄴ씨가 배턴을 이어받아 비슷한 내용의 폭로전을 벌이고 있다. '미투' '빚투'에 이어 '갑투'로 번져가는 연예계의 또 다른 그림자. <더팩트>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 중인 현직 매니저들의 의견을 통해 사태를 짚어봤다. <편집자 주>
표준계약서 사용률 79.9%...관행 버리는 기획사들
[더팩트 | 유지훈 기자] 매니저 A씨는 신현준 이순재와 관련한 '갑질' 폭로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과거 업무 환경과 너무나 비슷했고 일부는 현재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두 매니저의 주장을 일부 수용했고 자신의 후배들이 A씨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다시금 곱씹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부정적인 부분만 부각되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마음도 품게 됐다.
10년 넘게 연예 업계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A씨는 "이번 사건으로 매니저만 처우가 좋지 않다는 치부가 드러난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며 "매니저 일은 대부분의 직장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꿈을 가지고 회사에 들어왔지만 사람으로 겪는 스트레스, 아직 잘 갖춰지지 않은 시스템 등 부가적인 것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순재 선생님의 매니저 ㄱ씨도 분명 같은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A씨는 한 뮤지션의 매니저로 시작해 이후 수많은 스타의 매니저로서 경력을 쌓았다. 이름이 잘 알려진 큰 연예기획사 회사에서 중간 관리자급 매니저로도 일해봤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일을 겪었다. 며칠간 제대로 눈도 붙여보지 못할 정도의 높은 업무 강도에 시달렸고 신뢰가 두터웠던 지인의 회사에서 계약서 없이 일하다가 낭패도 봤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업계 환경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는 것도 몸소 느꼈다.
"대한민국은 노동과 관련해 잣대가 엄격하다. 그래서 더 이번 사건이 부각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업계 전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처우는 개선되고 있었다. 매니저로 시작해 회사를 차린 대표님들이 많다. 스스로 불합리하다고 느낀 것을 고치기 위해 아티스트와 계약서에 관련 조항에 넣기도 한다."(매니저 A씨)
A씨를 포함한 다수 관계자가 개선됐다고 느끼는 부분은 연예인의 사생활과 매니지먼트의 모호한 경계다. 연예인이 술자리에 참석하면 매니저는 차에서 기다리고, 먼 거리 음식점의 메뉴가 먹고 싶어 매니저에게 직접 배달을 지시하는 것은 예전 말이다. A씨는 "예전에는 모두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회사에서 엄격하게 막는다. 이제는 상식 밖의 일"이라고 설명했다.
한 기획사의 전체적인 운영을 맡고 있는 본부장 B씨는 "우리의 경우 규모가 작다 보니 솔직히 말하면 추가 수당을 주면 회사 운영이 불가능하다. 대신 전날 업무가 과중 되면 그만큼의 휴식을 준다. 매니저들의 연봉은 전체적으로 오르고 있다. 그래서 요즘 신입과 경력 매니저들간의 연봉 차이가 크게 나지 않게 됐다. 업무의 과중도 이제는 매니저의 재량에 맡기는 편이다. 매니저가 행사를 따오고 관련된 일을 다 수행하면 그만큼의 인센티브를 준다"고 설명했다.
주 52시간에 하루 최대 8시간을 지키긴 어렵지만 무리한 스케줄로 인해 과중 되는 업무는 탄력 근무제를 도입해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고 있다. 매니저가 컨디션 관리를 하지 못한 채 운전하는 것은 연예인의 안전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도 있다. 이순재의 전 매니저가 받았다던 '업계 평균 수준' 월 180만 원도 이제는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이순재의 전 매니저 ㄱ씨의 사건과 관련해 현직 종사자들은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맹점을 ㄱ씨가 이순재 단 한 사람의 관리만 담당했다는 점으로 꼽았다. ㄱ씨가 당했던 부당한 대우는 기획사 소속이 아닌 별도로 한 연예인의 매니지먼트만 맡는 경우 때로 발생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순재 신현준 모두 경력이 길기 때문에 관행이 잘못된 줄도 몰랐을 것"이라는 의견도 냈다.
"보통 소속사 없이 혼자 활동하는 배우는 매니저와 1대 1로 구두 계약을 한 채 일을 한다. 이때는 차량도 매니저 개인소유인 경우가 있다. 배우는 작품 활동을 할 때만 잠깐 도움을 받는 거고 매니저의 경우 복잡한 세금문제 없이 일할 수 있다. 배우도 매니저도 모두 동의 하에 하는 거다. 보도를 보니 ㄱ씨의 경우 업무는 1대 1과 같지만 중간에 소속사가 끼어있다. 일반적인 파견직 문제와 다를 바가 없더라. 소속사는 계약서를 쓰지 않았고 4대 보험도 하지 않았다. 요즘 계약서를 안 쓰는 회사는 거의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어야 한다."(본부장 B씨)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올해 초 공개한 '2019 대중문화예술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연예 기획 사업체의 표준계약서 사용 여부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2014년 52%에서 2016년에는 72.2%로 2018년에는 79.9%까지 뛰었다. 자체 계약서와 구두계약은 2014년 14%·13.6%에서 2018년 4.6%·3.3%로 감소했다. 아직 조사되지 않은 2019년의 계약 비율을 더 높아졌을 터다.
매니지먼트 업계는 점점 관행을 버리고 점차 상식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영화 '라디오 스타'에서 브로맨스를 펼쳤던 박중훈 안성기처럼, 그리고 MBC 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유쾌한 웃음을 전달했던 출연자들처럼 매니저와 연예인은 비즈니스관계인 동시에 서로에 많은 부분을 기대는 회사 동료다. 다만 아직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20%의 기획사들 그리고 여전히 관행에 사로잡힌 몇몇 연예인들의 만행은 또 다른 '갑투' 보도로 이어질 예정이다.
[연예기획팀 | ssen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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