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강일홍 기자] 79년 코미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故 이주일(본명 정주일)은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등 숱한 유행어를 만들었다. 당시 꽤 잘나가던 코미디계 '핸섬보이MC' 이상해(본명 최영근)의 소개로 TBC '토요일이다 전원출발'을 연출하고 있던 고 김경태 PD에 의해 발탁됐다. 그는 이 단 한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60년대 샛별악극단 사회자로 시작한 그의 예인생활은 넘치는 끼와 유머감각에도 불구하고 못생긴 외모 때문에 오래도록 팍팍한 삶이었다. 수지큐(Susie Q) 음악에 맞춰 특유의 엉덩이를 흔들며 뒤뚱뒤뚱 걷는 '오리춤'으로 방송 인기를 장악했다.
사실 코미디 유행어의 원조가 된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는 그의 진심어린 속마음이었다고 한다. 코미디언 이상해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주일 씨는) 멋진 외모를 가진 배우들이나 나오는 TV에 자신같은 얼굴로 시청자들을 만난다는 걸 늘 죄송하게 생각했어요. 그게 가능한지도 의심스러워했고요. 당시는 콩트가 아닌 스탠딩 코미디였기 때문에 사회자와 주고받으며 즉흥 애드리브를 많이 했거든요. 무대에서 느닷없이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고 멘트를 날렸는데 그게 빵 터진 겁니다. 그냥 외모만 바라봐도 웃음이 절로 터지는 그에게 시청자들이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열광한 거죠."
이주일은 일단 멍석이 깔리자 자신만의 시대를 활짝 열어간다. 이후 MBC '웃으면 복이와요'로 무대를 옮겨 타고난 익살과 유머를 선보이며 전성기를 맞았다. 단번에 20년 무명 설움을 벗으며 인기와 부를 거머쥔 것인데, 당시까지 '비실비실' 배삼룡, '땅딸이' 이기동, '살살이' 서영춘 등이 주도하던 코미디계 인기는 이주일이 등장하며 새롭게 재편됐다. 1982년 연예인축구단 단장, 1988년 한국코미디연구회 창립 회장, 연예인협회 연기분과 명예위원장 등을 지냈고, 1984년 대통령 표창, 1986년 MBC연기대상 코미디 부문 최우수상 수상 등 끝없는 대중인기를 바탕으로 국회의원(14대)까지 지낸다.
◆ 故 이주일 사후 유가족 빈손, 공원묘지서 유골과 묘비도 사라져 충격
하지만 알 수 없는 게 인생사다. 그는 코미디언 출신으로는 남부럽지 않을 만큼 많은 돈을 모았지만,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무일푼 미스터리를 남겼다. 유족에게 남긴 재산이 없다는 사실은 동료 선후배들 사이에 큰 충격을 안겼다. 1992년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이주일은 44억 원의 재산을 공개했다. 이는 그가 소유한 재산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연희동 건물과 호텔, 분당 노른자위 땅, 강남 아파트와 상가건물, 서귀포 별장지 등 수백원의 재산을 보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에서 인기몰이가 시작된 이후 그는 밤무대를 뛰면서 가마니 자루에 돈을 쓸어담을 만큼 돈방석에 앉았다.
그런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코미디계 후배인 엄용수는 "이주일 선생님이 국회의원 출마를 앞두고 자신의 알짜 땅을 믿을만한 인척에게 차명으로 돌려놓았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돌아가신 뒤 유족이 이 땅을 되찾으려고 소송을 했지만 패소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차명으로 옮겨놓을 당시만 해도 담보 공증 등 그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용인하는 분위기였지만, 금융실명제가 되고 차명 보유 자체가 불법이 되면서 유족 상속으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주일의 자산은 그렇게 공중분해 됐다. 물론 그가 생전 또는 사후에 재산이 환원됐다는 얘기는 들어본 일이 없다.
안타까운 일은 또 있다. 사후 편히 쉴 곳조차 없이 떠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2002년 8월29일 1000여명의 연예인들 오열하는 가운데 묻혔던 춘천 경춘공원에는 이제 유골조차 사라지고 없다. 묘비마저 뽑힌 채 버려졌다는 소식은 1년에 100만원 안팎인 묘지 관리비를 체납했을 만큼 유족들이 곤궁하다는 사실과 오버랩되면서 씁쓸함을 더했다. 올해 그는 세상을 떠난 지 15주기를 맞았지만, 동료나 후배들이 그를 기리고 기억할 기념비 남아있지 않다. 의원직을 떠나며 '코미디 공부 많이 했다'며 회한을 남긴 그가 사후에라도 고통없는 세상에서 편히 쉴 수 있을까. 지하에서도 인생무상을 느낄만하다.
◆ 연예계 인기는 뜬구름, 고 이주일의 생애와 자니 윤의 쓸쓸한 인행항로
고 이주일이 국내 코미디계의 대부였다면 해외에서 더 크게 명성을 날린 주인공은 바로 자니 윤(82·윤종승)이다. 자니 윤은 동양인 최초로 미국 '투나잇 쇼'에 출연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한데 최근 그의 비참하고 슬픈 노년이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자니 윤은 자신의 존재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초라한 모습으로 등장해 충격을 안겼다. LA 코리아타운에서 약 13㎞ 정도 떨어진 몬테시토 하이츠에 위치한 요양원(헌팅턴 헬스케어 센터) 휠체어에 앉은 그의 모습은 박근혜 정부에 발탁돼 지난해 6월까지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로 재직했던 인물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초췌했다.
백발이 성성한 자니 윤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세월의 흔적처럼 새겨졌고, 초점이 없는 눈빛으로 허공을 주시하고 있었다. 누구라도 생로병사의 과정을 피할 수 없는 인생사이지만, 도드라지게 빛나고 화려했던 그의 과거를 기억하는 수많은 대중의 마음은 허탈했다. 뇌출혈로 쓰러져 이혼한 전 부인이 돌보고 있지만, 병든 그는 철저히 빈손이었다. 자니 윤은 "자신이 누군지 아느냐"는 질문에 기억을 되돌리려 애를 쓰다 끝내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려졌지만 유일하게 '자니 카슨 쇼'라는 말에 미소를 지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니 카슨 쇼'는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고, 미국생활은 화려했다.
미국 시청자들은 당시 자니 카슨의 제의로 동양인 최초로 '투나잇 쇼'에 34번 출연한 자니 윤을 좋아했다. 회당 2800만원을 줄 정도로 그의 가치를 알아본 NBC 방송국은 '자니 윤 스페셜 쇼'를 신설해 진행을 맡길 만큼 믿고 신뢰했다. 평범한 해군 유학생에서 미국의 인기 방송인으로 거듭난 그의 성공 스토리는 그 자체만으로 감동이다. 이후 국내에서도 그의 인기는 폭발했다. '자니 윤 쇼'를 진행한 뒤 '주병진 쇼' '서세원 쇼' '고쇼' 등에 영향을 미친 1인토크쇼의 원조로 자리매김했다. 연예계 인기란 뜬구름이고 물거품이라지만, 자니 윤의 씁쓸한 인생항로에 故 이주일이 겹쳐보이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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