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강일홍 기자]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모든 재화(財貨) 중 영화는 대표적인 문화상품이다. 이중에서도 경험재(經驗財, Experience Goods) 테두리안에 속한다. 경험재란 경험을 하기 전에 그 가치를 평가하기 어려운 재화를 말한다. 즉 특정 재화에 대한 만족도는 타인의 평가나 평판이 아니라 그 제품을 직접 소비해 봐야만 체득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경험재에서 나타나는 문제 중 하나는 생산자(감독 또는 제작자)와 소비자(관객) 간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생산자와 달리 소비자는 완성된 제품을 구입(관람)하기 전까지는 품질에 대한 불완전한 정보밖에 소유할 수 없다. 다만 기획 제작단계부터 각종 홍보마케팅을 하는 영화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지는 않는다.
또 하나, 영화의 경우 정보의 비대칭성 못지않게 불확실성도 매우 크다. 생산자가 가지고 있는 영화의 품질에 대한 정보가 반드시 시장 수요에 정확히 반영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의 (상업적) 품질은 관객의 평가로만 측정될 뿐 아무리 양질의 인적(스타배우) 물적(제작비) 생산요소가 투입됐더라도 시장에서 좋은 반응이 나타나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
◆'택시운전사' 450만 명 vs '군함도' 800만 명, 손익분기점 '희비'
올여름 개봉된 블록버스터급 한국 영화 두 편의 엇갈린 운명이 화제다. 올해 첫 천만 관객을 돌파한 '택시 운전사'와 최다 제작비(마케팅 비용 포함 260억원)를 쓰고 손익분기점에도 이르지 못한 '군함도'가 비교 대상에 올랐다. 8월 2일 개봉된 '택시운전사'는 천만을 넘어 순항하고 있는 반면 이 보다 일주일 정도 앞서 개봉한 '군함도'는 약 655만명(8월21일 기준) 선에서 사실상 퇴장했다.
영화는 일단 고비용에, 긴 제작 기간을 요한다. 전 세계에 동시 배급하는 할리우드 경우는 영화 마케팅비가 제작비와 동급인 경우도 흔하다. 한국 영화의 제작과정에는 크게 네 단계 주체(투자-제작-배급-상영)가 존재하는데 각 주체마다 각자의 역할이 있으므로 당연히 수익도 나눠갖게 된다. 만일 네 주체가 모두 분리된 경우가 아니라면 손익분기점 계산은 조금 다를 수 있다.
약 150억 원을 제작비로 쓴 '택시운전사는 450만명 정도의 관객만 들면 수익을 내는 구조인데 이미 550만명 이상 초과 달성했다. 이에 비하면 '군함도'의 경우 이익이 나지 않더라도 제작비를 회수하려면 최소 800만명 정도의 관객이 들어야한다. 600억 이상 대박이 날 것으로 예상되는 '택시'와 650여만명에 그쳐 수 십억 적자를 보게 된 '군함도'의 굴욕이 비교되는 이유다.
◆ '택시' 송강호, 주연작-주연배우 사상 첫 '트리플 천만 배우' 등극
'군함도'는 일제강점기인 1945년 일본 군함도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의 아픈 사연을 소재로 담았다. '택시운전사'는 비상계엄이 내려졌던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현장이 무대다. 두 작품 모두 광복절을 앞두고 일주일 간격으로 개봉됐지만, 과거사를 바라보는 일본 정부에 대한 국민적 공분에도 불구하고 배경적 수혜는 오히려 '군함도'가 아닌 '택시운전사'가 받았다.
두 작품에 대한 또 하나 비교 포인트는 황정민과 송강호다. 둘 모두 연극배우 출신답게 탄탄한 연기력은 물론,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충무로 대세배우로 거듭났다. 황정민은 '국제시장'과 '베테랑'으로, 송강호는 '괴물'과 '변호인'으로 활짝 웃은 '쌍천만' 배우다. 결국 이번 작품으로 송강호가 주연작-주연배우 사상 첫 '트리플 천만 배우'에 오르며 희비가 엇갈렸다.
'군함도'와 '택시운전사'는 애초 고비용 제작을 비껴갈 수 없는 작품이다. 실제 군함도 세트장이나 브리사 택시의 공정 등에 상당한 비용을 쏟아부었다. 역사적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라도 스토리의 개연성과 공감대는 관객 몰입에 필수다. 영화가 대표적인 경험재인 점을 감안하면 입소문 또한 무시못할 옵션이다. 어쨌든 '군함도'는 울고, '택시운전사'는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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