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져진 '그물'에 걸리지 않으려면
[더팩트 | 김경민 기자] 남북분단 70여 년, 아직 한반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 자체가 문득 섬뜩해질 정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세대를 거쳐 갈수록 국가적 이념과 이데올로기 대립은 추상적인 관념이 되고, 문제의식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김기덕 감독은 영화 '그물'(감독 김기덕)을 던져 잠시 흐릿해진 시야를 냉정하게 비추고 우리 손에 들린 시한폭탄을 직시한다.
'그물'은 김기덕 감독의 22번째 신작으로, 필모그래피 중 드물게 15세 이상 관람가를 확정받은 작품이다. 김 감독도 애초에 청소년 관람가를 예상하지 못했지만 전작들과 비교해보면 폭력적인 장면은 간략하게 묘사되고 메시지도 보다 명확한 것은 사실이다.
이야기도 간단하다. 북한 어부 남철우(류승범 분)는 배가 그물에 걸려 어쩔 수 없이 홀로 남북 경계선을 넘게 된다. 철우는 남측 정부기관 소속 조사관(김영민 분)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오로지 북에 남겨진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일주일을 견딘다.
조사관은 철우를 '빨갱이' '간첩'의 틀에 무조건 쑤셔 박는다. 음모나 지략 같은 것도 없다. 그냥 억울하게 철우를 몰아세우는 양상은 또 하나의 독재를 날카롭게 묘사한다.
한국정보국은 철우에 대한 의심을 거둔 후에도 놔주지 않고 귀화를 설득한다. 하지만 철우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북으로 돌려보내 주시라요"뿐이다. 정보국은 점차 정도를 지나치고 철우에게 강제로 귀화 압박을 넣으며 정신적 폭력에 가까운 행태를 보인다. 천신만고 끝에 철우는 가까스로 남측의 그물에서 풀려나지만 가족 곁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또 다른 가시밭길을 걷는다.
철우가 발버둥 칠수록 정신이 파괴되고 결국 팔딱거릴 힘도 없이 무기력한 희생양이 되는 과정은 보는 이들 역시 음울하고 갑갑한 그물에 가둬버린다. 철우의 눈을 통해 스크린으로 전달되는 자본주의의 폐해 또한 답답하다.
특히 철우가 남측 정부기관의 귀화 작전으로 명동 한복판에 놓인 상황에서 눈을 뜨지 않는 행동은 뒤통수를 가격하는 듯한 충격을 안긴다. "보지 않아야 북측으로 돌아가 말할 것도 없다"는 철우의 말에, 그가 돌아가기를 바라는 곳의 현실 역시 희망보다는 공포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는다.
철우가 이토록 순수하고 무지한 아이처럼 그려지기 때문에 관객도 남북 관념을 떠나 철우라는 개인의 감정을 따라갈 수 있다. 또한 그가 눈을 감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은 누구, 혹은 무엇일까. 그것을 고민하다 보면 더욱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선명해진다. 그리고 철우와 같이 그물에 걸린 고기가 되지 않기 위한 의식도 되새기게 한다.
절대적 권력을 지닌 남측과 북측 정부기관, 그 가운데 철우라는 무기력한 개인은 누가 봐도 극적으로, 불균형하게 설정된 구도다. 하지만 철우의 사연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가 아닌 현실이라는 점을 자각했을 때 두려움이 엄습한다. 이미 철우의 배가 남북 경계선을 넘어갔을 때 그의 운명을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김 감독의 '그물'에 걸린 것이다.
한 올도 놓친다면 아쉬울 '그물'은 러닝타임 114분, 15세 이상 관람가, 오는 6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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