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권혁기 기자] 지난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가 진도 해상에서 전복됐다. 이틀 뒤 완전히 침몰했고, 탑승인원 476명 중 295명이 사망했으며 9명이 실종됐다. 9명은 여전히 세월호 안에 갇혀 있는 상태다. 영화 '터널'(감독 김성훈, 제작 어나더썬데이, 비에이엔터테인먼트)은 여러모로 세월호와 닮아 있다.
사실 '터널'은 원작 소설이 있는 작품이다. 소재원 작가의 '터널: 우리는 얼굴 없는 살인자였다'가 그것인데, 책은 2013년 4월 20일 출간됐다. 소설은 출간 전부터 영화 제작이 결정됐다. 사족이지만 소재원 작가의 소설들은 하정우 윤계상 주연 '비스티 보이즈'와 설경구와 엄지원이 호흡을 맞춘 '소원' 등이 영화화된 바 있다.
관객들과 일부 언론 등 평단은 왜 '터널'에서 세월호를 느꼈을까. 즐거운 수학여행을 꿈꾸며 제주도로 향하는 세월호에 몸을 실은 단원고 학생들, 노후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 어른들과, 자동차 영업대리점 과정으로 8대의 자동차 계약을 앞두고 들뜬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던 이정수(하정우 분) 모두 자신에게 닥칠 재난을 예상하지 못했다. 완전 침몰 이전에 단 한 명의 요구조자를 구하지 못한 사고 대책반이나, '터널'에서 "전문가와 상의해 조치를 취하세요"라고 말하는 여성 장관(김해숙 분)이나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달 서울 종로구 팔판동 카페에서 만난 김성훈(45) 감독은 "세월호 느낌을 받았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의도치 않았기에 슬픈 현실인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 감독은 "2분짜리 예고편에서 세월호를 떠올리는 그런 현실이 슬프다. 그런 의도였다면 영화를 찍지 못했을 것"이라며 "생명과 재난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것 같다. 시스템의 잘못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터널'"이라고 말했다.
"성수대교 등 안타까운 현장을 살펴보면 똑같이 인재(人災)가 있었다. 어처구니 없는 행동들과 보편적으로 한 행동들이 있었다"는 그는 "세월호를 연상하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그런 질문도 받아들여야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대통령을 떠올리는 김해숙 역할에 대해서는 "원래 남자 캐릭터를 생각했는데 나머지 배역들이 대부분 남자라 장관 역에 여성을 배치하면 적절할 것 같다는 얘기가 나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조금은 귀여운 장관을 그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시사회 이후 주변 반응은 어땠나.
나쁘지는 않았다. 덕담들을 해주셨다. '고생했어' '재미있게 봤어'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반응은 재미없게 봤다는 의미이기도 하다.(웃음) 대부분 영화 관계자라 그런 것 같다.
-원작이 있는데 부담은 없었나?
없었다. 원작자가 고쳐달라고 한 부분도 없었다. 마음껏 요리할 수 있는 재료를 소재원 작가가 준 것 같다. 소스가 좋았기 때문에 저만의 요리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 속 터널이 정말 사실처럼 느껴졌다.
터널이 가짜면 나머지 드라마가 잘 돼 있어도 사상누각(砂上樓閣)이라고 생각했다. 터널은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어떻게 무너지게 됐는지, 무너진 상태가 사실과 다르게 어설프면 드라마에 감정 이입이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질감에 힘을 썼다. 미술감독과 여러 스태프들이 공을 많이 들였다. 미술감독으로서는 멋진 디자인도 하고 싶었을텐데 우중충하고 끊임없는 분진을 그려야 했으니, 많이 고생했다.
-정말 먼지부터가 사실적이었다.
콩가루와 미숫가루에 숯가루를 섞었다. 디테일의 끝을 가보자는 생각이었다. 빛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인물 메이크업을 하듯 밝게 찍을 수 없었다. 사실감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자동차 실내등을 조금만 더 밝게 하는 수준으로 신경을 썼다. 하정우에게도 실제 상황과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공간도 실제로 돌들로 막아놨다. 나중에 CG(컴퓨터그래픽)처리할 수 있었지만 배우가 진짜라고 느끼길 바랐다. 돌들 사이사이 구멍에 카메라를 놓고 촬영을 했다. 그래서 더 실감나지 않았나 싶다.
-하정우 빼고 다들 방독면을 썼다고 들었다.
세트 자체에 먼지가 많았다. 특히 하정우가 연기할 때는 먼지를 더 뿌리고 하다보니 스태프들은 마스크를 쓰게 됐다. 하정우는 '컷' 소리가 나면 밖에 나갔다 오고 그랬다. 가급적 저는 마스크를 벗고 하정우와 얘기했다. 되게 얄미웠을거다.(웃음) 오달수 선배님이 터널에서 차량을 운전하는 부분은 실제 분진이 일어나게 했다. 원래 그냥 느낌만 찍고 내부를 CG로 처리하려고 했는데 그 분진의 느낌이 좋아 실제로 촬영했다.
-정말 하정우가 잘 연기한 것 같다.
더이상 말이 필요없는 배우다. 칙칙하고 무거울 수 있는 장면을 자체발광으로 천진난만하게 처리할 수 있는 연기자다. 피터팬까지는 아니지만 아이와 같은 순수함이 있다. 그런 하정우가 극한의 상황을 연기하면 심각함 속에 유머러스함을 넣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배두나와 오달수는 어땠나.
배두나는 인위적이지 않았다. 슬픔을 내보이는 것보다 감추려고 하지만 드러나는 연기가 쉽지 않은데, 예를 들면 술취한 연기를 할 때 술에 취하면 안된다. 사람들이 술에 취해 놓고 '안 취했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삐져나오는 알코올의 느낌같은 것을 배두나가 연기했다.. 뜨거운 마음을 갖고 있는 배우였다. 감탄했고 고마웠다. 오달수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맛이 있다. 강단이 있고 정의로운,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인물인데 오달수이기 때문에 밋밋하지 않고 뻔하지 않은 인물이 됐다. 인간적으로는 푸근하다 옆에 있으면 되게 편하고 따뜻한 배우다.
-조연뿐만 아니라 단역까지 캐스팅이 완벽했다.
터널 안에서 경적을 울리는 막내대원 조현철은 독립영화를 보다 발견한 친구다. '차이나타운'에서도 멋진 연기를 펼쳤는데 정말 자연스러운 연기를 했다. 예전에 한석규 선배가 한 인터뷰에서 그런 얘기를 하셨던 기억이 있다. '힘을 빼고 연기하는데 20년이 걸렸다'고. 힘을 빼는 게 그렇게 어려운지 몰랐다는 얘기였는데 조현철을 보면 역할이 작아서 아쉬울만큼 놀라운 친구였다.
-끝으로 세월호를 닮았는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연상될 것 같다. 아직 아픔이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할 수 있다. 시스템이 붕괴된 보편적인 재난영화이기 때문에 닮았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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