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와 영화제는 발행인과 편집국 관계"
[더팩트|권혁기 기자]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
문화체육부를 문화관광부로 변경한 1996년, 정부가 문화 행정의 특징으로 내건 슬로건이다. '팔 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으로 대변되는 이는 '손이 닿는 데까지만 지원을 한다'는 의미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서 시작됐다. 대부분의 '문화 선진국'에서 시행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지난 1996년 문을 연 부산국제영화제 1회에는 31개국 169편이 상영됐다. 18만 4071명이 영화제를 즐겼다. 제4회에는 53개국 207편이 초청됐으며 중국 장이머우 감독이 내한해 핸드프린팅을 하기도 했다. 10회에는 73개국 307편이, 지난해에는 75개국 302편이 스크린에 걸리는 등 매년 70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프랑스 칸, 이탈리아 베니스, 독일 베를린 영화제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영화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부산시민을 넘어 한국인들의 자랑스러운 영화제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조직위원회인 부산시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와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국내 영화단체들이 보이콧을 선언하는 등 올해 영화제 개최 자체가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최근 김규옥 부산시 경제부시장이 서울을 찾았다. 공사가 다망했을 김 부시장이 서울을 방문한 이유는 부산국제영화제와 관련된 기자간담회를 주관하기 위해서였다. 김 부시장은 "예술적인 독립성은 확실해야 하지만 공익적 면에서는 또 다르다"고 피력했다고 한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영화에 공익이라니? 어용(御用) 영화를 만들라는 말인가?
그뿐만 아니라 부산시가 영화제에 독립성을 보장할 의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국가 재정을 지원받는 기관으로서 공익적이자 행정적인 관점이 필요하다는 얘기"라면서 언론사를 예로 들었다.
"언론사 역시 편집국과 발행인 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조직위원회는 발행인이고 집행위원회는 편집국인 거죠. 편집국이 물론 독립적이지만 행정이나 예산 면에서는 또 다른 걸 지켜야 하지 않나요? 그 차원입니다. 서병수 시장이 사퇴하니까 독립성에 대해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다이빙벨' 상영에 대해서는 조직위원장으로 의견을 피력한 거라고 봅니다."
우선 부시장의 발언 중 잘못된 부분은 부산국제영화제가 국가 재정 지원을 받지만 '기관'은 아니라는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사단법인이다. 법에 의해 법률적인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 인정받은 법인이라는 뜻이다.
부산시 부시장이 편집국과 발행인의 관계를 언급하니 묘한 기분이 든다. '편집국과 발행인'을 예로 들었으니 실제 편집국과 발행인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자면 부산일보를 거론할 수 있다. 부산일보의 최대 주주는 정수재단이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쿠데타 이후 만든 재단이다. 이후 부산일보, 부산MBC, 부일장학회 등을 흡수했다. 현 박근혜 대통령이 1995년부터 10년간 이사장을 맡은 바 있다.
정수재단은 부산일보가 정수재단의 사회환원 촉구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이정호 전 부산일보 편집국장을 해고했다. 부산고법은 이 전 국장이 부산일보 사장을 상대로 제기한 대기처분무효확인 소송에서 이 전 국장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언론의 자유, 직업관에 기초한 사명의식과 책임감의 발로라고 평가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서병수 시장은 지난 2014년 영화제 측에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과 관련해 '틀지 말 것'을 주문했다. 김 부시장이 "상영하면 정치적으로 이용된다고 우려를 해서 그런 취지로 말한 것"이라고 부연한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보지도 않은 영화에 대해 그런 평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다.
영화에 공익이란 대체 무엇일까? 미국 마이클 무어 감독은 조지 부시 대통령이 재임하던 지난 2004년 '화씨 9/11'을 연출, 개봉했다.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영화였다. 9.11 테러와 사우디 아라비아의 연계성을 무시하고 곧바로 이라크를 침공한 부시 대통령의 문제를 꼬집었다. 텍사스 석유재벌인 부시 대통령과 사우디 왕가, 빈 라덴 일가 사이의 개인적인 우정과 사업적 연계성을 보여준, 한마디로 '판도라의 상자'였다. 무어 감독은 '화씨 9/11'로 제68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으며 제57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식코' 역시 마이클 무어 감독의 수작으로 손꼽힌다. 미국 민간 의료 보험 조직인 건강관리기구(HMO)의 부조리적 폐해와 더불어 미국 의료보험 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김규옥 부시장이 말한 '공익적 영화'가 바로 마이클 무어 감독의 작품을 얘기하는 건지, 아니면 '건국대통령 이승만'과 같은 영화를 의미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영화에 '공익'이라니 참으로 시대착오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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