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 배우가 그렇게 없나? 똑같은 사람이 역할만 바꿔 나오는 게 질려"
지난 주말, 열대야를 피하려 찾은 극장에서 커플끼리 나눈 이야기를 본의 아니게 들었다.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조진웅 등이 언급되는 걸로 봐서 아마도 '암살'을 보고 나온 듯했다. 그들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배우 이름들을 들으면서 '자주 봤던 배우긴 하네'라고 혼자 생각했다.
주초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 입구에서 영화 '협녀, 칼의 기억'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주연배우 전도연 김고은 이경영 배수빈 역시 지난 1년간 2번 이상 스크린에서 본 스타들이다. 아무 생각 없이 참석한 배우들의 면면을 살피다 주말 극장에서 만난 커플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정말로 한국엔 배우를 돌려막기 할 정도로 배우가 없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오'다. 스크린 데뷔를 꿈꾸며 준비 중인 탄탄한 신예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 한 번의 기회를 잡고자 일찍부터 자신의 프로필을 들고 오디션 투어를 다닌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우리 영화엔 '다작 배우'가 꽤 많았다. 대표적인 배우가 이경영인데 그는 '군도: 민란의 시대' '해적: 바다로 간 산적' '타짜-신의 손' '제보자' '패션왕' '허삼관' '은밀한 유혹' '협녀, 칼의 기억' '암살' '뷰티 인사이드' '조선 마술사' '치외법권'까지 총 12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유해진 또한 만만치 않다. 그는 '소수의견' '인간중독' '해적: 바다로 간 산적' '타짜: 신의 손' '극비수사' '베테랑'으로 관객들을 만났고 하정우는 '군도: 민란의 시대' '허삼관' '암살' '아가씨' '터널'까지 5편이다. 그렇다면 충무로에서 가장 귀하다는 20대 배우 김고은은? '몬스터' '차이나타운' '협녀, 칼의 기억' '성난 변호사' '계춘할망'까지 무려 5편이다.
지난해 독립영화 '한공주'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천우희가 그나마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했고 '마담뺑덕'으로 스타덤에 오른 이솜과 '인간중독'의 임지연, '쎄시봉'의 조복래 등이 가물에 단비처럼 위안을 줬다. 하지만 이들은 말 그대로 예외의 경우였기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숨 가쁘게 캐스팅되는 배우', 배우 본인에겐 꿈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검증된 배우'를 캐스팅하는 제작사나 배급사, 감독의 처지 또한 이해가 간다. '캐스팅=흥행'의 공식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화려한 캐스팅' '연기파 배우' '충무로가 검증한'이란 수식어에 호기심을 갖지 않을 관객은 없고 상업영화를 만드는 이들이기에 당연히 상업논리를 운운한다. 관객들 또한 신예보다 검증된 배우가 출연하는 작품을 더욱 선호한다.
여기서 반드시 짚어볼 대목이 있다. 자주 출연한 배우를 캐스팅했을 경우 흥행의 가능성은 그만큼 커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결과가 흥행으로 반드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만 늘 기회를 준다면 선택의 폭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한 편의 영화가 집중적으로 영화관을 점령하면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고질적인 문제가 불거진다. 또 특정 배우만을 편식하다보면 결국 '배우 독과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영화인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문제이면서도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현실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대안이라면 탄탄한 스토리와 세련된 감독의 연출, 훌륭한 연기력이 결합된 웰메이드 영화를 만드는 것이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은 탓이다.
제작자와 감독은 관객들의 길들여진 입맛에 맞추고, 관객 또한 검증된 배우를 통해 이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가끔은 새로운 맛, 신선한 맛을 느끼고 싶어도 이런 순환고리가 깨지지 않는 한 '다작배우의 씁쓸함'은 피할 길이 없다 . 극장 소비자인 관객들이 식상해지면 좋은 작품도 제대로 평가를 받기가 어렵다.
'우린 또 제2의 천우희를 만날 수 있을까?'
[더팩트ㅣ성지연 기자 amysung@tf.co.kr]
[연예팀ㅣ ssen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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