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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하는 운명카드' 윤현승 작가 "로맨스도 도전하고 싶었는데…"

  • 감성놀이터 휴 | 2011-10-20 14:51

[더팩트 | 고민경 기자] 한 남자가 있다. 10억이 넘는 어마어마한 빚을 가진 30대 초반의 남자. 변변찮은 직업도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주유소 아르바이트뿐이다. 그런 그가 10억이라는 엄청난 빚을 갚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 그에게 정체 모를 ‘회장’이라는 사람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해온다. 고립된 저택에서 일주일 동안 그와 함께 초대 받은 사람들과 간단한 게임을 하라는 것이다. 승자에겐 주어진 상금은 최고 100억 원. 빚을 탕감할 능력이 없는 남자, 종민으로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달콤한 제안이다.

게임의 룰은 간단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카드에 적힌 ‘운명’을 따르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종민의 카드에는 아래의 운명이 적혀 있다.

‘누군가를 살해할 운명’

누군가를 살해하지 않는다면, 종민은 이 게임의 승자가 될 수 있다.



장르소설 팬들은 윤현승 작가를 한국의 조지 R.R 마틴이라 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조지 R.R 마틴. 미국에선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의 저자이다. 조지 R.R 마틴과 윤현승 작가의 스타일은 꽤나 닮았다. 탄탄한 세계관과 짜임새 있는 스토리로 판타지 소설 팬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하얀늑대들’과 ‘라크리모사’를 통해 한국의 조지 R.R 마틴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윤현승 작가가 이번엔 추리 스릴러 ‘살해하는 운명 카드’로 돌아왔다.

윤현승 작가를 만나 신작 ‘살해하는 운명 카드’와 그의 문학관에 대해 들어봤다.

-‘라크리모사’ 이후 3년만의 신작이다. 당연히 신작은 판타지 소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다. 추리 스릴러에 도전했다.

늘 도전해 보고 싶었던 분야가 추리 스릴러다. 끝없이 생각하고 계산해야 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가장 처음 관심을 가졌던 장르도 추리소설이다. 그 동안 출간했던 책들이 다 판타지 소설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럼 앞으로는 추리소설에 전념할 생각인가?

그건 아니다. 그냥, 쓰고 싶은 걸 다 써보자는 게 목표다. 로맨스에도 도전해보고 싶었는데 ‘트와일라잇’을 보고 포기했다.

-잘 써서?

그것 보다도…… 여주인공이 뱀파이어와 늑대 인간 사이에서 방황 하는 게 이해가 안 돼서 난 로맨스는 안 되겠구나 했다.

-그 부분은 나도 이해 못 했으니 걱정 말고 도전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다 보긴 했다.

캐릭터의 힘이다. 매력적인 뱀파이어와 늑대인간. 얼마나 매력적인가. 난 스토리에 비해 캐릭터가 약하다는 평을 많이 듣는 작가다. 멋지고 매력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건 아직도 힘들다.

-‘살해하는 운명 카드’의 주인공 종민 역시 매력이랑은 꽤 거리가 멀다.

30대 남자가 빚은 10억이 넘고 소심하며 하는 일은 주유소 아르바이트다. 매력이 있을 래야 있을 수가 없는 캐릭터다. 그런 종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는, 또 그에게 다른 운명도 아닌 ‘살해하는 운명 카드’를 쥐어 준 이유는 도저히 남을 죽일 것 같지 않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보통 추리소설의 주인공은 척척 사건을 해결하는 셜록 홈즈 같은 인물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캐릭터가 약하다는 지적을 받는 건가? 도저히 그런 일을 할 수 없는 인물이 돈으로 인해 이런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 있는 캐릭터는 따로 있다. 그래서 조금 아쉬운 점이 종민을 제외한 다른 인물의 이야기를 더 보고 싶다는 거다. 하지만 소설은 종민의 시선을 따라 진행된다.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아닌 전지적 작가 시점을 택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독자의 몰입을 불러올 수 있지만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게 만들기는 힘들다. 종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한 것은 독자를 사건에 집중시키기 위해서다. 게임에 참여하게 된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 역시 그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저택에서 벌어지는 게임이지 조연들의 개인사가 아니다.

-사실 운명 카드만큼 흥미로운 것이 '그' 장치이다. 나름 추리소설 본 여자인데, 마지막에야 ‘아……’ 하고 이해했다.

작가에겐 최고의 찬사다. 내가 의도했던 것이 제대로 먹혀들어갔다. 맞다. ‘그것’이 게임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열쇠이다. 스포일러가 될 테니 여기까지만 하겠다.


-한국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다. 특히 장르소설 작가는 더더욱 그렇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도서 시장이 큰 것도 아니고 불법 다운로드 파일이 너무 많이 돌아다닌다. 한국 사람들은 영화 보는 것에는 돈 아까워하지 않는데 책 사는 것에는 인색하다. 책은 소장할 수 있는 데 말이다.

-첫 작품 ‘다크문’을 포털에서 검색해보니 연관 검색어가 ‘다크문 다운’이더라. ‘하얀 늑대들’이나 ‘라크리모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 뿐 아니라 다른 작가들도 비슷한 상황일 거다. 불법 파일에도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직접 책을 타자 친 텍스트본,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디카본, 가장 최상급은 스캔본이다. 재미있는 게 블로그를 통해 공유하면서 저작권은 파일을 만든 자신에게 있다고 한다. 이상하다. 저작권은 책을 쓴 나한테 있는데(웃음).

-소장할 만한 책이 없어서라고 하는 독자들도 있다.

어느 순간부터 장르소설 붐이 생기면서 대여점 위주의 마구잡이 출판이 이뤄진 감이 있다. 하지만 굉장한 작가들도 많고 늘 애정으로 응원해주는 장르소설 팬들도 많다. 독자들과 교류하다 보면 도서관이나 대여점에서 빌려 봤다는 것을 작가들에게 미안해하는 분들도 있는데, 작가에겐 내 책을 재미있게 읽어 주었다는 것 자체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리고 작가는 안다. 불법 파일을 읽은 건지, 출판한 책을 읽은 건지.

-마지막 질문이다. 인상 깊은 추리소설이 있나? 앞으로의 작품 계획은?

존 그리샴의 ‘불법의 제왕’과 엘러리 퀸의 ‘Y의 비극’이다. 특히 ‘불법의 제왕’이 인상 깊었다. 흔히 존 그리샴을 법정 스릴러 작가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소설 역시 훌륭한 추리소설이다. 사실 난 모든 소설은 그 바탕에 ‘추리’를 깔고 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의 심리나 뒷이야기를 상상하는 것도 추리는 추리니까.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장르에 한계를 두고 소설을 쓰고 싶지 않다. 내가 해 볼 수 있는 것들에 얼마든지 도전할 생각이다. 음, 다음 작품? 지금으로선 명확하게 답을 못 하겠다. 나 역시 최대한 빨리 찾아오고 싶다.

doit0204@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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