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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만 팔면 망한다" 커피 마시고 물건도 맡기고…주유소는 진화 중

  • 경제 | 2024-10-15 00:00

영업이익 하락 주유소 폐업 상승 견인
사업 다각화 및 공간 활용 전략


서울의 한 주유소가 14일 편의점, 세차장 등의 영업을 병행하고 있다. /오승혁 기자
서울의 한 주유소가 14일 편의점, 세차장 등의 영업을 병행하고 있다. /오승혁 기자

[더팩트|오승혁 기자] 올해 들어 전국에 131개 주유소가 폐업했다. 영업하면서 오염된 토양의 복원 비용을 납부할 여력이 없어, 영업을 하지 않고 방치 상태인 주유소들을 감안하면 131곳보다 많은 주유소가 폐업했을 것으로 보인다. 전국의 주유소 숫자는 지난 2010년 이후 14년 연속 감소세를 그리고 있다. 직영 주유소를 운영 중인 국내 정유사들은 충전, 세차, 식음료 판매 등 넓은 부지를 활용해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15일 석유관리원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 수는 지난달 기준 1만892개로 전년 대비 131개가 줄었다. 이런 감소세가 지속되면 연말에는 대한민국 전국의 주유소가 1만개도 안 될 가능성이 크다. 2010년에 1만3004개로 가장 많은 숫자를 기록했던 전국 주유소 수는 글로벌 경기침체 장기화에 따른 소비심리 악화와 경영난으로 인해 계속 줄고 있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주유소 점주들 사이에서 '돈이 안 된다'는 한숨 섞인 푸념이 나온 지 오래"라며, "정부의 가격 경쟁 촉진을 위한 알뜰주유소 도입과 전기차 급증 등의 악재가 주유소의 수익을 크게 낮춰 주유소 사업을 접는 이들이 계속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2022년 주유소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1.8%다. 한국주유소협회와 한국석유유통협회가 지난달 1100여 곳의 주유소를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0.1% 이상~0.5% 미만의 영업이익을 냈다는 곳의 응답률이 31.5%를 보였다. 18.5%가 적자를 냈고, 2% 이상의 영업이익을 달성한 곳은 12.8%에 불과했다.

정유사들은 이런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기존 주유소에 편의점, 카페, 패스트푸드점을 입점시키거나 세차 기기를 최신화하고 있다. 이용자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방문 빈도와 머무는 시간을 늘리면서 주유 외 매출을 통한 수익 상승을 꾀한다. 또한 주유소가 지닌 지리적 이점을 살리고 유휴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물류 허브, 광고 플랫폼, 공유 주차장 등으로 변화하는 중이다.

특히 국내 정유사 중 가장 많은 직영 주유소를 운영하는 HD현대오일뱅크가 주유소 변화에 역량을 쏟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전국 2400곳 주유소 중 500여 곳을 직영점으로 운영하고 있다. 올해 초 새 디자인을 적용해 23년만에 간판을 바꿨다. 이후 개인 짐을 보관하는 셀프 스토리지, 주유소 옥상 공간을 활용한 5G 중계기, 실시간 주차 공유 사업 등 공간임대 사업 등을 펼치며 주유소 공간을 활용한다. 또한 고객의 셀프 주유가 늘어나는 흐름에 맞춰 주유기에 광고를 송출하며 주유소를 '광고 플랫폼'으로 활용한다.

BMW코리아는 GS칼텍스의 서울역 역전 주유소가 운영되던 자리에 차징 허브 라운지를 운영하고 있다. /BMW
BMW코리아는 GS칼텍스의 서울역 역전 주유소가 운영되던 자리에 차징 허브 라운지를 운영하고 있다. /BMW

GS칼텍스는 서울역 인근에서 1970년부터 50여 년 동안 영업하고 지난 2020년 폐업한 주유소 부지에 13층 규모 상업용 복합시설 '에너지 플러스 서울로' 개발 계획을 밝히면서 주유소를 충전 허브로 변경하는 행보를 펼치고 있다. 과거 주유소가 있던 1층에는 'BMW 차징 허브 라운지'가 자리하고 있다.

캐즘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주유소를 충전 센터를 변경하는 행보를 GS칼텍스를 비롯한 국내 정유사들이 모두 검토 중이다.

SK에너지도 그룹의 부동산 전문 투자사 SK리츠와 협업해 경기도 시흥시에 자리한 SK시화산업주유소를 주유 및 전기차 충전, 연료전지 발전, 물류 등의 기능을 갖춘 복합 에너지 플랫폼으로 개발한다는 계획을 지난해 발표한 바 있다. SK리츠는 이달 초 SK에너지 주유소 6곳의 매매계액 체결을 승인했다. 수도권 3곳, 지방 3곳의 주유소를 260억원 규모로 매각해 에너지 플랫폼 전환을 위한 자금 마련에 나선다.

이외에도 GS칼텍스가 지난해 주유소를 활용한 스마트 물류 서비스를 국내 최초로 시작한 바 있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내곡주유소에 최첨단 자동화 시설을 갖춘 ‘스마트 MFC(Micro Fulfillment Center)’를 준공하고 운영 중이다. 물품 보관 및 수령을 무인으로 가능하게 해주는 스마트 MFC에서 로봇이 레일을 움직여 매일 3600개 상자를 자동 처리한다.

한 주유소 점주는 "목 좋은 자리에서 기름 팔면서 '지역 유지' '부자' 소리 듣던 것은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이 흥행했던 25년 전에 끝났다"며 "수도권은 주유소가 보통 교통량이 많은 좋은 입지에 있기 때문에 폐업하고 건물을 올리는 식의 개발이라도 가능하지만, 지방에서는 닫을 돈이 없어서 그냥 방치해두고 있는 곳이 매일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유사 차원에서 주유소 영업이익을 늘리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며 "주유소 업계의 실적이 더 악화하기 전에 이런 노력이 더 빠르고 폭 넓게 펼쳐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sh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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