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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00역 아파트'인데 역까지 40분…'역세권' 과대 홍보 막을 수 없나

  • 경제 | 2023-06-16 00:00

역세권법, '철도역 주변 지역'으로 역세권 정의
과장·기만광고 시 광고표시법 위반 가능성 有


서울의 한 오피스텔 분양광고 포스터에 단지의 초역세권 입지로 소개하는 문구가 붙어 있다. 분양업계에서는 지하철역과 인접한 입지를 강점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최지혜 기자
서울의 한 오피스텔 분양광고 포스터에 단지의 초역세권 입지로 소개하는 문구가 붙어 있다. 분양업계에서는 지하철역과 인접한 입지를 강점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최지혜 기자

[더팩트ㅣ최지혜 기자] 분양 아파트 단지의 홍보물에는 철도역을 기준으로 입지적 장점을 내세우는 문구가 빠지지 않는다. 역세권 입지를 강조하기 위해 아파트 단지 이름에 아예 철도역을 넣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들 단지 가운데는 단지 정문에서 철도역까지 도보로 최대 50분가량 이동해야 하는 곳도 있다.

◆ √FACT체크1= 도보 40~50분, 3㎞ 넘게 떨어진 단지도 '역 인접', '역세권', '도보권' 홍보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들어서는 '서울대벤처타운역 푸르지오'에서 해당 단지명에 포함된 신림선 서울대벤처타운역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도보로 24분을 이동해야 한다. 스마트폰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검색한 단지 중앙에서 역까지의 거리는 1.5㎞다. 서울 은평구 신사동의 '새절역 두산위브트레지움'은 단지 안쪽에서 지하철 6호선 새절역까지 도보로 940m가량 떨어진 거리에 있다. 이동시간은 14분, 지하도와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신림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서울대벤처타운역 푸르지오) 인근에 거주하는 분들은 보통 역까지 이동할 때 버스를 이용한다"며 "걸어서 이동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길이 오르막인 데다 거리도 멀어 생활권 자체가 역세권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을 벗어나면 역세권의 의미는 더욱 모호해진다. 용인시 기흥구 'e편한세상용인역플랫폼시티' 109동에서 출발해 도보로 용인역(예정)이 들어설 부지(보정동1019-182)에 도착하려면 1.1㎞를 이동해야 한다. 도보 이동시간은 약 17분이다. 경기 평택시에 들어서는 '지제역 반도체밸리 제일풍경채 2블록'은 단지 중앙에서 1호선 평택지제역까지 무려 3.2㎞ 떨어진 곳에 있다. 도보로 이동할 경우 49분이 소요된다. 1호선 서정리역까지의 거리도 3.2㎞, 도보 이동 시간은 50분가량이다.

그런데도 단지를 공급하는 제일건설은 분양 보도자료를 통해 "SRT와 1호선이 지나가는 지제역이 인접해 광역교통망이 뛰어나다"라고 홍보하고 있다. 단지의 분양 관계자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평택시 내에 역이 많지 않아 해당 입지 정도면 수요자들이 역의 바운더리(범위) 내로 느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지제역과 인접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를 담아 단지명을 정했다"며 "자동차로 이동하면 5~6분대 이동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단지명에 포함하지 않더라도 철도역 도보권 입지를 강조한 분양 단지는 많다. 인천 미추홀구에 분양 예정인 '미추홀루브루숭의' 분양 홈페이지에는 1호선 제물포역을 도보 이용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단지에서 제물포역까지 거리는 1.1㎞, 도보로 18분 소요된다. 파주시 목동동에 들어서는 '운정자이시그니처' 역시 분양 홈페이지에 GTX-A 운정역(예정)과 인접함을 소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1㎞가량 떨어져 있다.

미추홀구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역세권이라는 개념은 상대적이지만 그래도 걸어서 15분 안으로 이동할 수 있으면 역세권으로 본다"며 "제물포역에서 도화역까지 걸어서 15분정도 걸리는데, 그 이상이면 어느 역의 역세권인지도 애매해지는 것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모바일 지도 앱을 통해 철도역이 포함된 아파트 단지들로부터 해당 철도역까지 도보 거리를 검색한 결과 15분 이상 소요되는 사례가 많았다. 왼쪽 위부터 △서울대벤처타운역푸르지오 △지제역반도체밸리제일풍경채2블록 △e편한세상용인역플랫폼시티 △새절역두산위브트레지움 도보 경로 검색결과. /카카오맵 화면 캡쳐
모바일 지도 앱을 통해 철도역이 포함된 아파트 단지들로부터 해당 철도역까지 도보 거리를 검색한 결과 15분 이상 소요되는 사례가 많았다. 왼쪽 위부터 △서울대벤처타운역푸르지오 △지제역반도체밸리제일풍경채2블록 △e편한세상용인역플랫폼시티 △새절역두산위브트레지움 도보 경로 검색결과. /카카오맵 화면 캡쳐

◆ √FACT체크2= 역에서 3㎞ 떨어진 '00역 아파트', 역세권 입지로 볼 수 있나

법적인 문제는 없을까. 현재로선 민간 분양 아파트를 규제할 법률은 없다. 정책에 활용되는 '역세권'의 정의에는 명확한 범위가 지정돼 있다.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제2조에서 철도역, 환승시설 등의 시설부터 1㎞ 거리 이내에 위치한 지역으로 규정한다. 이 거리 내에서 특별시장·광역시장·특별자치시장·도지사·특별자치도지사 등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그 거리를 50%의 범위에서 증감할 수 있다. 즉 지하철역 1㎞ 반경이 기준이 되지만 지역에 따라 500m내의 범위까지 조정될 수 있는 것이다.

서울시의 경우 역세권을 승강기 기준 반경 500m 이내로 정하고 있다. 법적 제한 내에서 가장 좁은 기준이다. 시가 추진 중인 각 사업에 따라 역에서 더 가까운 범위을 적용하기도 한다. 일례로 '역세권활성화사업'에서 지정하는 역세권은 지하철역의 승강기를 기준으로 반경 250m까지를 의미한다.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에는 당초 역세권을 250m로 지정했고, 지난 2020년 이를 350m까지 확대하기도 했다. 또 '장기전세주택' 사업의 경우 역에서 350m까지 '1차 역세권', 500m까지는 '2차 역세권'으로 나눠 규정하고 있다.

역세권의 범위를 지자체가 조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지역에 따라 철도역 사이의 간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하철과 경전철 등 다양한 철도역 교통망을 갖춘 수도권의 경우 역세권의 최대 범위를 적용하면 거의 모든 지역을 역세권으로 볼 수도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주택사업의 경우 일상에서 역까지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를 고려해 역세권의 기준을 차등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며 "서울 내에는 철도역이 많아 법으로 규정할 수 있는 가장 좁은 범위를 적용하고 있지만 이같은 조례가 민간에 적용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민간이 분양하는 아파트에 대해 역세권의 범위를 규정하는 법적 기준은 마련돼 있지 않다. 역세권의 개발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역세권법) 제2조는 역세권을 '철도역과 그 주변지역'으로만 정의하고 있다. 철도역 '주변'에 대한 명확한 범위는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분양 단지 이름에 특정 지하철역을 넣더라도 지자체의 승인만 받으면 법적인 문제는 없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변호사는 "단지명에 특정 역을 포함하는 것을 규제하는 법률은 없고, 큰 문제가 없다면 지자체의 승인을 받을 수 있다"며 "만일 입주민들이 요구할 경우 단지명이 바뀔 수 있으나 통상 역세권 아파트의 이미지를 원하기 때문에 변경하려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주택홍보관과 홍보물 등에서 역세권으로 홍보하고 있는 분양단지들에 대한 규정도 마땅치 않다.

미비한 규정과 이로 인한 과대광고로 소비자의 피해가 예상되는 만큼 조치가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조언도 나온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철도역은 아파트 입지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꼽힌다"며 "역세권 여부에 따라 단지의 분양가와 청약 실적도 갈릴 수 있어 사업자들은 단지명에 역을 넣거나 마치 역이 가까운 것처럼 홍보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단지의 경우 동호수 추첨으로 사실상 역세권이 아닌 아파트를 분양받은 수요자들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이같은 경우 분양계약을 수월하게 해지할 수 있도록 하거나, 동별 입지를 명확하게 하도록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분양을 실시하고 있는 아파트 단지들은 인근의 철도역을 강조하며 입지적 강점을 내세우고 있다. 왼쪽 위부터 △서울대벤처타운역푸르지오 △운정자이시그니처 △미추홀루브루숭의 △e편한세상용인역플랫폼시티 분양 홈페이지의 입지요건. /각 분양 홈페이지 화면 캡쳐
분양을 실시하고 있는 아파트 단지들은 인근의 철도역을 강조하며 입지적 강점을 내세우고 있다. 왼쪽 위부터 △서울대벤처타운역푸르지오 △운정자이시그니처 △미추홀루브루숭의 △e편한세상용인역플랫폼시티 분양 홈페이지의 입지요건. /각 분양 홈페이지 화면 캡쳐

◆ √FACT체크3= 민간분양 단지, '역세권법' 테두리 밖이지만 '표시광고법' 위반 시 제재

역세권의 범위를 민간 분양 아파트에 적용할 법률적 테두리는 없지만 소비자들의 피해가 있을 경우 광고표시에 관한 법률의 규제를 받을 수는 있다.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광고표시법) 제 2장 3조는 소비자가 잘못 알게 할 우려가 있는 표시·광고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규제 대상의 행위로는 △거짓·과장 △기만 △부당한 비교 △비방 등을 담은 표시·광고 등이 해당한다.

역세권 입지로 광고해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충분히 도보로 이동 가능하다고 예상하게 했으나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 소비자 기만이나 과장광고에 해당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공정거래위원회가 표시·광고에 대한 규제를 사전에 방지하지는 않아 소비자의 신고가 있을 경우 사후 조치하는 방식으로 제재가 이뤄진다.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의 신고 창구를 열어주는 방식으로 피해를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 기만은 상식적인 소비자가 예측하는 내용과 사실이 맞지 않을 경우를 뜻한다"며 "가령 '도보 10분대'라고 표시해 소비자가 충분히 도보로 이동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지만 실제로는 30분가량 소요된다면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광고와 표시를 사전에 점검하는 사전규제는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사후규제도 문제가 심각해 논란이 될 경우 공정위가 나서는 구조"라며 "이같은 광고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경우 이를 신고받을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추가 피해를 막는 있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wisdo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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