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빛바래진 '화합의 상징' 안타까워"
"구시대적 관습이 가져온 결과" 평가도
LG그룹 경영권 미칠 영향에 관심 쏠려
[더팩트 | 서재근 기자] "LG는 70여 년 동안 단 한 번의 경영권 분쟁 없이 계열분리를 해오고 있으며, 이번에도 아름다운 이별의 전통이 이어졌다."
'무분쟁 장자승계 원칙'을 고수해 온 LG그룹에서 지난 2021년 LX그룹의 계열분리 작업의 마침표를 찍자 경제계에서는 수십여 년 동안 가족 간 화합을 몸소 실천한 LG가(家)를 향해 존경의 시선을 보냈다. 이랬던 LG그룹이 불과 2년 만에 '가족 간 상속 다툼'이라는 아쉬운 꼬리표를 달게됐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어머니 김영식 여사와 두 여동생으로부터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당하면서다. 재계 안팎에서 소송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경영권 판도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LG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화합의 상징'이 사라졌다"며 탄식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 '75년 화합'에 패인 상처…경영권 이슈보다 아프다
14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김 여사와 구 회장의 여동생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 씨는 지난달 28일 서울서부지법에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고(故) 구본무 선대회장이 남긴 재산을 상속하는 과정과 절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니 원점에서 다시 계산기를 두드리자는 게 세 모녀의 주장이다.
LG그룹에 따르면 세 모녀는 이미 지난해 선대회장 재산을 법정 상속비율(배우자 1.5 대 자녀 1인당 1)에 따라 다시 배분해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 증명을 보내며 법정 공방을 예고했다.
이로써 LG그룹은 창업주부터 무려 4대에 걸친 승계 과정에서 지켜온 '무분쟁' 전통이 깨졌다. LG그룹은 지난 1970년 구자경 명예회장이 창업주인 부친 구인회 창업주로부터 그룹 총수 자리를 물려받은 이후 구본무 선대회장, 구광모 현 회장까지 무분쟁 장자승계 원칙을 유지해 왔다.
특히, 이 과정에서 후계자의 삼촌들이나 동업자들은 계열분리를 거쳐 독립하는 방식으로 LG가의 전통을 수용했다. 창업주의 동생 구철회 명예회장의 자손들이 계열분리한 LIG그룹과 LS그룹, 구본무 선대회장의 동생 구본준 회장이 2021년 계열분리를 통해 출범한 LX그룹, 구 씨 일가와 동업 관계였던 허 씨 일가가 계열분리해 출범한 GS그룹 등이 대표적이다. LG에 정통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세 모녀를 제외한 LG가 어른들도 이번 소송에 관해 반대 견해를 드러낸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소송 이슈가 수면에 오르자 LG그룹에서도 구 회장 중심의 상속 당위성이 '가풍'에 있음을 거듭 강조했다. 실제로 LG그룹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까지 이어온 LG 경영권 승계 룰은 4세대를 내려오면서, 경영권 관련 재산은 집안을 대표하고 경영을 책임지는 사람이, 그 외 가족들은 소정의 비율로 개인 재산을 받아왔고, 이번 상속도 마찬가지다"며 "재산분할을 요구하며 LG 전통과 경영권 흔드는 건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관계자는 "(세 모녀가) 소송을 제기하게 된 배경은 오로지 당사자만 알 수 있는 사안이지만,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 가운데 사실상 유일무이하게 부모와 자식, 형제, 자매간 화합을 지켜 온 LG그룹에서 가족 간 재산 다툼이 쟁점화된다는 점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고 말했다.
◆ "테마주인가요?" 경영권 분쟁 이슈에 널뛰는 LG 주가
LG가 경영권 분쟁은 지주사 주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로 이번 가족 간 소송이 자칫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LG 주가는 연일 상승 곡선을 그렸다.
소송 소식이 알려진 지난 10일 전 거래일 대비 6.58% 오른 8만5900원에 거래를 마친 LG의 주가는 전날(13일) 장중 9만 원을 돌파해 52주 신고가를 경신했다.
'널뛰기' 주가를 바라보는 주주들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주요 포털 종목 토론 게시판을 비롯해 여러 온라인커뮤니티 게시판 등에는 "경영권 분쟁=주가 상승", "LG도 어쩔 수 없는 밥그릇 싸움", "경영권 분쟁이 최고의 호재인 기업" 등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LG가의 '장자승계' 원칙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구 회장은 원래 구본무 선대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큰아들이다. 그러나 구본무 선대회장은 지난 1994년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게 되면서, LG그룹의 '장자 승계' 전통 잇기 위해 2004년 조카인 구 회장을 양자로 들였다.
일부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가문의 전통이 오랜 세월 안정적인 승계를 유지하는 원동력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에는 남아 선호, 장남 중시와 같은 전형적인 구시대적 관습이 결국 소송 분쟁이라는 씁쓸한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는 평가도 나온다.
◆ 시작된 재벌집 상속분쟁…LG 지분 그래프 달라질까
이번 소송전에서 LG그룹과 세 모녀 측 간 첨예한 견해차를 보이는 부분은 '구본무 선대회장 유언장의 존재 인지' 여부다. 먼저 세 모녀는 선대회장의 별도 유언장이 없다는 사실을 협의 후에야 알게 된 만큼 법정 상속비율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LG그룹은 "선대회장이 남긴 재산에 대한 상속은 고인 별세 이후 5개월 동안 가족 간 십여 차례 협의를 거쳐 법적으로 완료된 사안인데 이미 제척기간(3년)이 지난 시점에서 유언장을 이슈화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민법상 제척기간은 상속권 침해 사실을 안 날로부터 3년, 발생한 날로부터 10년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제척기간과 관련해서는 유언장 유무 인지 여부가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이 같은 경우 '상대방이 이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걸 입증하는 게 유리하다"며 "이미 15차례에 걸쳐 가족 간 협의를 통해 상속이 이뤄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소송인 측에서 유언장이 없었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고 말했다.
안팎의 관심은 소송이 LG 경영권에 미칠 영향에 쏠린다. 현재 구 회장의 ㈜LG 지분률은 지난해 말 기준 15.95%다. 세 모녀의 지분율은 김 여사 4.20%, 구연경 대표, 구연수 씨 0.72% 등 모두 7.84%로 구 회장의 절반 수준이다. 만일, 법원이 세 모녀의 손을 들어줄 경우 구 회장의 지분율은 9.7%로 축소되는 반면, 세 모녀의 지분은 14.04%로 늘어난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번 소송이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전날(13일) 보고서를 내고 "소송 이슈가 LG그룹의 경영권 분쟁 이슈로까지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다"고 밝혔다.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LG 지분은 41.7%에 달하는 만큼 세 모녀의 지분율로는 경영권을 흔들기에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likehyo85@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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